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면 제 기억 속에 하나 둘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맑고 고운 큰 눈으로 싱긋이 웃던 사람, 기다림이라는 굴레 속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꼼짝없이 제자리에 서서 머무르던 사람…. 지금쯤 당신은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잘 계시리라 믿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커다란 두 눈이 나의 눈에 선하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귀에 생생히 울리는 듯합니다. ‘용서할 수 없어.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라고 절규하듯 침대 모서리를 움켜쥐고 소리소리 지르던 당신을 저는 또렷이 기억합니다. 순간순간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놀라게 했던 당신! 그런 일들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오로지 기억 속에서만 당신을 불러낼 수 있군요.
찬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본당의 신자분이 성당 마당에서 저의 손을 잡으시고는 이웃에 도움을 주어야 할 사람이 있는데 그 방법을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같이 가서 보자고 하시기에 얼떨결에 그 분의 손에 이끌려 간 곳은 시장 안의 허름한 집이었습니다. 대문을 들어서서 마루의 문을 여는 순간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방문을 여는 동시에 방 한 구석의 한 여인을 바라보는 순간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제 눈에 보이는 것은 퀭한 커다란 눈과 앙상한 뼈에 초점을 잃어버린 커다란 눈망울로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무의식 속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이었고, 심장이 멎어버린 듯한 그녀의 모습이 제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가까이 가서 그녀의 손을 잡으니 내 손이 따뜻하다면서 누구냐고 물어보는데 말소리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요구르트 병이 가득하여 물어보니 밥을 먹을 수 없어서 요구르트로 하루하루 견딘 시간이 2개월 가까이 되었다고 했고, 그 말에 또 한 번 가슴이 아파서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어찌 이런 일이…! 이 시간을 저희와 함께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요구르트로 2개월 가까이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모습이 어쩜 그리 한 많은 여인으로 보였던지 제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겨우 참고 인사를 나누면서 도와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병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으로 끼니를 해결하고자 해도 움직일 수 없어 요구르트 배달 오는 것만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니 얼마나 뼈저리게 사람이 그리웠을까요. 그 자리에서 된장찌개와 밥이 먹고 싶다는 말을 듣고 함께한 자매님에게 시장을 봐 달라고 부탁을 한 후, 바로 음식을 드릴 수 없어 휠체어를 빌려 자매님과 함께 병원으로 환자 상태를 보러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보호자를 찾으시기에 “보호자는 없고 자원봉사 하는 사람밖에 없다.”고 말씀드리자 “그럼 자원봉사자들께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돌봐주라.”는 말씀과 더불어 “이젠 더 이상 손쓸 여지가 없이 온 몸에 암이 퍼진듯하니 큰 병원으로 가보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자매님과 저는 가슴이 ‘쿵!’하고 무너지는 듯 무어라 말을 하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환자가 해 달라는 것을 그냥 원 없이 해 주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보호자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지만 환자에게는 물어 볼 수가 없었습니다. 보호자가 몇 달째 환자를 방치해두고 집을 나가버린 상황이란 것을 이웃 주민에게 확인을 하였기에 일단 보리밥과 된장찌개를 끓여 차려 드리고 집으로 돌아 올 수밖에 없는 저의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습니다. 오랫동안 밥이라고는 제대로 입에 넣지 못한 분이 어제 차려 드린 밥과 된장찌개를 드시고 혹시 돌아가시기라도 했으면 어쩌나 하고 밤새 잠을 설치다가 해가 뜨기 무섭게 달려가니 해맑은 웃음으로 “고마워요, 감사해요!”라고 말하면서 “아침에 한 수저 먹으려는데 더 이상 밥이 안 넘어가네요.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 모습이 애처로워 차마 눈을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어쩜 한 사람의 인생이 이런가 싶어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느님께 ‘주님! 무엇 때문에 이 자리에 저를 보내셨습니까? 왜 이 사람은 이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까?’라고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보기에도 무척 착하고 선한 사람…. 이웃 주민들에게 환자 분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실제상황에 저는 가슴에서부터 뜨거운 눈물이 올라오는 것을 꾹꾹 눌러야만 했습니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고 저로서는 도무지 답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마저 발걸음을 하지 않는다면 저 여인은 돌보는 사람, 찾아오는 사람하나 없이 혼자서 운명을 맞이하겠지.’라고 생각하니 걱정만이 앞섰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환자분 집에서 매일 함께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하나하나 준비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우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큰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환자를 모시고 병원을 찾아 갔지만 병원에서는 입원을 시켜드릴 수 없다며 난색을 드러내는 바람에 저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어 버렸습니다. 수급권자도 아닌 데다 보호자가 있는데 나타나지 않는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입원을 시켜드리고 별별 작은 에피소드를 겪고 나니 그 다음 단계로 환자에게 정신적인 안정을 취해줄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왔습니다. 가장 급선무인 병원비를 해결하자면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주민센터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만 수없이 되풀이 했습니다. 그런 중에 하루하루 기력을 잃어가는 환자의 모습을 지켜보는 제 가슴에도 멍이 깊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통증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곁에서 손만 잡아 줄 수밖에 없는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요? 보호자는 단 한 번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고 연락은 커녕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 병원 측에서 병원비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제가 병원비 책임보증을 서는 조건으로 주민센터에 기초수급을 요청했으나, 그 역시 절차상의 문제로 여전히 난색을 드러내는 바람에 제가 받은 상처는 이루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비상수급권자로 승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속이 상해 밤잠을 못 이루면서도 어떻게 하면 이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환자의 마음을 알아내어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결론짓고 어떻게 하면 환자의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을까, 마음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알아야 했기에 이런저런 말도 붙여가면서 장난도 걸어 보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야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한 남편에 대한 증오를 용서로 바꿔야 이승을 편안하게 떠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녀가 보고 싶어 하는 자녀를 만나게 해 주어야 한다는 숙제가 생겼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말 하지만 그 당시에는 다급한 시간 속에 제가 느끼는 중압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멀리 살고 있는 전 남편의 딸과 통화가 되어 올 수 있으면 빨리 와 주기를 부탁하여 환자 곁으로 데려다 줄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엄마를 못 본 딸은 엄마를 보자마자 아무 소리도 못했습니다. 제가 “엄마.”라고 한 번 불러 보라고 하니 딸이 엄마 손을 꼬옥 잡고 “엄마!”하고 큰소리로 부르는 소리에 불현듯 눈을 크게 뜨는 바람에 지척에 있던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모습에 환자의 딸도 거기에 모인 호스피스 회원들과 기도 봉사자들도 온통 울음을 터트리는 바람에 입원실은 한순간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환자의 딸에게서 그동안의 사연을 다 듣고 나니 이 여인이 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큰 두 눈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마치 눈을 뜰 기력조차 없다는 듯이 그만 힘없이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저는 이제 조심스럽게 남편을 용서해주기를 권했습니다. 그 순간, 그 여인은 그것만은 안 된다고, 숨을 헐떡이며 절규했습니다. 입을 떼기조차 힘들어 하면서도 말입니다. 달래고 달래서 그 마음을 용서로 바꾸려고 해 보았지만 역부족을 느껴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잘려고 할 때면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와 환자의 임종이 임박한 것 같다고 하여 병원으로 달려가기를 수차례…. 그러던 어느 날 환자에게서 “그 사람을 꼭 용서해주어야 하느냐?”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꼭 용서해주어야 한다. 이 세상 소풍 끝나기 전에 꼭 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 편하게 좋은 곳에 간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하기 싫다며 눈물을 보이더니 한숨 자고 나서 “진짜 꼭 해주어야 하느냐?”고 다시 물어 오기에 “정말 그렇게 하기 싫으냐?”고 내가 반문을 하자 “봉사자가 하라면 해야지, 좋은 데 가려면 해야지.”하면서 힘없는 몸으로 재혼해서 떠나간 전 남편을 떠올리며 마지막 혼신을 다해 “여보! 용서할게. 그리고 사랑해. 사랑해.” 두 번 세 번 소리 지르고는 힘에 겨워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모습에 저는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환자는 늘 저보고 참 성질 모질고 밉다면서도 제가 잠시만 자리를 비우거나 안 보이면 찾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밤이고 낮이고 늘 그의 곁에 있어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 날에 저는 며칠째 잠을 재대로 못자서 입원실 다른 침대에 잠시 누워 있는데 다른 봉사자분이 환자가 저를 부른다는 소리에 달려갔더니 그녀는 힘겹게 손짓하며 제 손을 꼭 잡고 서로 눈을 마주보았습니다. ‘이제는 정말 떠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편안히 잘 가세요. 이승 근심 걱정 다 버리고 이제는 떠나가세요.”라고 하면서 안아주고는 그녀의 손을 꼬옥 잡고 바라보자 그녀는 몇 번의 숨을 가쁘게 몰아쉬더니 몇 마디 마지막 인사를 한 후 두 눈을 뜬 채 숨을 거두었습니다. 저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고 말았습니다. 한 많은 이 세상에서 무슨 미련이 그리 많은지 손으로 두 눈을 감겨 주어야 했습니다.
환자는 세상 떠날 준비를 할 때 ‘마리아’라는 세례명으로 하느님 나라로 올라갔습니다. 화장터로 향하는 장례버스를 바라보면서 한 줌의 재로 뿌려지는 한 많고 애절한 한 여인의 죽음 앞에서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환자의 딸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연신 “고맙습니다. 언젠가 다시 찾아뵙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자원봉사자들을 이렇게 직접 만나 엄마를 돌봐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자기도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꼭 봉사하며 살겠다면서 서로 인사를 나눈 후 헤어졌습니다.
모든 것을 다 보내고 나서 뒤돌아보니 그 여인을 만난 후 저는 5개월 동안 환자대신 세상과의 싸움을 무서울 정도로 치러야 했습니다. 하나하나 해결은 보이지 않고 하는 일마다 부딪히는 일들로 인해 힘들 때가 간혹 있었지만 그래도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고 힘들었던 그 시간들이 길고도 짧게 느껴져 제 마음이 아파옵니다. 떠나가 버린 그 여인을 보면서 참 많이 아파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그 여인이 제게 주고 간 선물인 것 같습니다. 기도 중에 주님께서 ‘군중 속에서 중심이 되어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말씀은 저를 통해 이루어내신 사랑입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저는 그 여인에 대한 기억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힘들었던 만큼 보고 싶은 맘도 더 큰가 봅니다. 세상이라는 바다 위에 버려진 한 척의 배가 풍랑을 맞아 망망대해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안전한 부두로 배가 들어오도록 불 밝혀주는 역할이 바로 저희 신앙인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치매어르신을 통해 사랑을 배웠고, 행려자를 통해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정신과 덕목을 배웠으며, 암환자를 통해서 건강한 사랑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인내와 겸손을 배웠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인 사랑을, 가슴으로 오롯이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주님의 사랑이 아닐까요. 힘들고 지쳐가는 시간이 제게 또다시 다가오면 군중 속에 주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사람으로 헤쳐 나갈 것입니다. 저는 이 사랑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두렵지 않습니다. 부끄럽지도 않습니다. 그 모습이 바로 언젠가 제 자신이 될 수 있기에 말입니다.
저는 마더 테레사 수녀님 말씀 중에 “나는 수많은 사람을 위한 봉사를 한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을 위해서 봉사를 합니다.”라는 이 말씀에 참으로 공감합니다. 단 한 사람에게 봉사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내적 아름다움을 쌓는 사람이 되고자 최선을 다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늘 제 기도 속에는 오늘도 주님께서 주신 지혜와 건강을 세상 군중 속에서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 제게 지혜와 판단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러나 제 뜻이 아닌 주님의 뜻에 따릅니다. 저는 오로지 주님의 도구입니다. 이 모든 일 들은 제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저를 도구로 사용하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언제나 주님께서 군중 속에서 저를 부르시면 제가 ‘예!’라고 기꺼이 대답을 하면서 주님과 함께 봉사를 하겠습니다. 아멘!” 끝으로 제가 좋아하는 성경구절로 이 글을 마치려 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마태 5,43-47)
* 7월 호에는 공동우수상 수상자인 이나오까 아끼 씨의 작품이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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