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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하느님 나라를 가르쳐 주신 분들


박정애(스콜라스티카)|수필가, 사동성당

 따르릉 전화가 온다. 우려했던 아니시아 형님의 전화다. 다리와 허리가 아파 아들이 근무하는 대전 병원에 입원한 후 두 번째 받는 전화다. 회계를 맡으시며 출석률이 거의 100%인 형님이 “단장, 나 레지오 회합에 못 나갈 것 같다.”고 하신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는 기분이 이럴 때를 말하는 것인가?

우리 ‘주님의 종’ 쁘레시디움은 2년도 못되어 세 분의 단원을 하늘나라로 보내 드렸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바라던 천당으로 꼭 가셨으리라 믿지만 인간적으로 맺은 정은 남은 자의 슬픔이었다. 대부분 단원이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의 연령대이다. 전입을 오시거나 세례를 받은 어르신들이 레지오의 입단 뜻을 밝히면 우리 팀으로 소개해주신다.

가신 분들은 연세가 있으신 만큼 자연사로 병원생활을 하시다가 가시곤 했다. 세 분 모두 병문안 갈 때마다 “얼른 나아서 꼭 레지오 참석할게.”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이다. 치매를 앓으신 분은 모든 정신을 놓으셔서 누구도 알아보시지 못하면서도 ‘기도 1등 부대’라는 명성을 지키려는 듯 묵주기도 시늉을 하셔서 하느님의 딸임을 온몸으로 보여주셨다.

‘주님의 종’, 어떤 팀인가? 아들 곁으로 이사 온 직후 단장을 맡아 달라는 꾸리아 단장님의 부탁을 단번에 거절했다. 좀 신중히 생각해서 비슷한 연배에 비슷한 수준을 갖춘 단원끼리 놀러도 가고 취미생활도 함께 하며 새로운 사람들과 좀 즐길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성당에서 찾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방금 이사 온 나를 노인들과 함께 하라니 부아가 났다.

처음 주회에 나가던 날 내 손을 덥석 잡으면서 “우리 늙은이와 함께 해 봅시다.”라며 금방 나타나지 않던 새로운 단장을 보고 간부 할 사람이 없어 해체하려고 했는데 와 주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로 반기는 단원들의 진정어린 모습에 조금은 누그러졌고, 서기도 차출되어 방금 왔지만 곧 대구로 이사를 갈 것 같다고 귀띔을 해 주어 주회를 이끌기가 좀 힘들겠다고 느꼈다.

2년 후 나는 갑자기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 가신 분을 비롯해 한 분도 빠짐없이 병문안을 오셨다. “단장이 늙은이들을 두고 와 이카노? 어서 나아야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병자기도와 묵주기도를 바치는 분들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냉담 중인 남편도 감명을 받았다. 이렇게 애절한 기도를 언제 받아보았던가? 지난 일이 부끄러웠다. 누구에게 기도를 청하지도 않았고 정성을 다해 남을 위해 기도한 적도 없었던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 교우들이 많이 와서 정성어린 기도를 해주는 모습을 지켜 본 같은 병실의 환우들이 부러워했다. 하느님은 나를 붙잡아 주셨다. 나를 살려 달라고 졸라대는 단원들의 간곡한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심을 나는 안다.

“단장이 나아야 우리가 하느님 품에 갈 때 레지오 장도 주선해 주지.” 말이 씨가 된다더니 나의 건강은 회복 중이고 세 분은 원하시던 레지오 장으로 마지막을 보내드렸다. 나에게 신앙의 힘이 뭔가를 가르쳐 주신 분들, 냉담 중이었던 남편까지도 하느님을 확실히 알게 하신 분들, 자식같이 동생같이 나의 건강을 염려해 백방으로 노력해 주신 분들이 내 곁을 떠나셨다. “형님, 지금은 안 됩니다. 입원하기 전까지 나를 위한 기도와 나에게 쏟은 정성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시간적 여유를 저에게 좀 주십시오. 오늘따라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 약력 : 2006년 1월 수필과 비평사로 등단, 대구문협 회원 대구 수필가협회 회원, 대구가톨릭문인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