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숨을 쉬어야 한다.”
자주 듣는 우스갯소리지만 숨을 잘 쉰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 건강해짐을 알고 있기에 더러는 숲을 찾고 더러는 산을 찾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단학, 국선도, 좌선 등을 배우러 다닙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호흡이 좋지 않다고 여겨 올바른 호흡법을 배우려는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선한 공기를 잘 마시기 위한 호흡에서 제일 중요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기능이 우수한 큰 코? 폐 기능을 활달하게 만드는 강력한 복근? 누구보다 큰 폐활량?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부차적인 것입니다. 숨을 잘 들이쉬는 데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원리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충분히 숨을 잘 내쉬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라고 다 익사하지는 않습니다. 물속에서 숨을 내 쉬는 사람은 살고, 물속에서 숨을 내 쉬지 않고 들이마시려고만 하는 사람은 죽습니다. 이 경우에는 폐 속에 맑고 새로운 공기가 들어갈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수영을 하면서 숨을 잘 쉬려면 머리가 물속에 있는 동안 폐 속에 있는 탁한 공기를 다 내뿜어야 합니다. 폐 안에 가득 찬 탁한 공기를 몸 밖으로 내뱉어야 폐 속에 신선한 공기가 들어갈 공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호흡(呼吸)이라는 단어에는 들숨(吸)과 날숨(呼)의 의미뿐 아니라 순서까지 정해져 있습니다. 날숨(呼氣)이 먼저 있고 그 다음이 들숨(吸氣)의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원하는 만큼 실컷 들이마시고 나서 생각나면 내쉬는 것(吸呼)이 아닙니다. 먼저 내쉬고 그 다음 들이마시는 것이 정상적인 호흡의 순서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물질은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재화를 자기 안에 끌어들이고 모으고 저장하고 지키기 위해서 안간힘을 씁니다. 많이 소유하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하기에 소유물이 자기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불행이라 여깁니다. 많이 소유하는 것이 곧 풍요로운 삶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진정 풍요로운 삶은 모으고 지키는(守錢奴) 데에 있지 않습니다. 들숨만 있고 날숨이 없다면 새로운 공기의 흡입이 불가능해지고 죽게 되는 것과 같이, 끌어 모으기만 하고 나눌 줄 모른다면 죽은 생명이나 다름없습니다.

은혜와 축복이 우리 삶에 절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와 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은혜를 얻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하느님의 은혜와 축복도 내 안에 갇혀 있기만 한다면 더 이상 새로운 하느님의 은혜가 들어설 공간이 없어집니다. 새롭고 더 풍부한 하느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이미 받은 하느님의 은혜를 내어놓고 나누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용돈을 나누어 줍니다. 어떤 자녀는 받은 돈을 그 자리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다 써버립니다. 다른 자녀는 쓰지 않고 열심히 모으기만 합니다. 또 다른 자녀는 자신의 필요를 위해 쓰기도 하지만 저축도 하다가 다른 형제들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여러분이 부모라면 어떤 자녀에게 더 많은 용돈을 주시겠습니까?
하느님께 내게 더 많은 은혜를 주십사고 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받은 은혜를 잘 사용하고자, 자신뿐 아니라 남을 위해 그 은혜를 내놓고 잘 사용하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내 것을 내놓은 그 빈 공간에 하느님이 주시는 새롭고 더 많은 은혜가 채워질 것입니다.
건강한 삶에는 들숨과 더불어 날숨이 교대로 이어져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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