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는 7월이면 많은 아이들이 꿈을 꿉니다. 똑같은 일상의 반복 속에 찾아오는 여름방학은 학생들에게 또 다른 희망의 시간들입니다. 그러나 요즘 학교 현실은 방학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입시를 코앞에 두고 있는 고3들에게 여름방학은 더 힘든 나날입니다. 그리고 고3 담임을 오랫동안 한 제게도 여름방학은 수시를 준비해야 하는 숨가쁜 날들이기만 했습니다.
2010년 7월 어느 날! 아침 7시 30분쯤 3학년 진학지도실에서 아침으로 컵라면을 먹고 있는 저를 찾아온 남자들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다짜고짜 제 손에 들린 컵라면을 빼앗았고, 다른 한 사람은 제 손을 잡고는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두 남자에게 끌려 제가 도착한 곳은 국어 특별실이었습니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40여 명의 남자들이 제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손에 이끌러 책상에 앉은 저는 44명의 멋진 남자들이 불러주는 생일축하노래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3학년 4반 우리 반 44명의 아들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우리 세대에서는 거의 생각지도 않는 저의 양력 생일이었습니다. 당황스럽고 무안하고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어색함으로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서 있던 저는 또 다른 놀람으로 눈이 더 커졌습니다. 제 앞에 놓인 따끈하게 데워진 즉석밥과 앙증맞은 1인용 꽃 냄비 하나! 노래가 끝나자 44명이 쓴 편지를 들고 제 앞에 선 자그마하지만 다부진 우리 실장은 제게 이렇게 한 마디를 했습니다.
“선생님! 아침밥은 먹고 다니세요. 우리가 커서 샘께 받은 것 돌려 드릴 때까지 오래 사셔야죠. 알았죠?”, “우리가 아침 일찍 준비한 생일상인데 즉석밥과 미역국뿐입니다. 나중엔 더 좋은 것 해드릴게요.”, “이 밥 다 드셔야 우리 내려가요. 얼른 드십시오.”

그들이 쏟아내는 따뜻한 말을 듣고 따끈따끈 즉석밥의 흰 쌀밥과 앙증맞은 1인용 꽃 냄비 속에 있는 미역국을 먹으며 고마움과 벅찬 감동으로 제 가슴은 세찬 방망이질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과 콧물을 반찬으로 더하며 저는 그 많은 남자들 앞에서 어머니가 아닌 제 아들들이 차려 준 첫 생일음식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먹었습니다. 너무 귀하고 아까워서요. 그리고 전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이런 말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늘은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참 귀한 선물을 받은 날이다. 이 기억이 나를 더 열심히 사는 교사가 되도록 채찍질할 거야. 이후로 학생들이 어떤 상처를 주더라도 오늘의 이 감사함이 나를 더 잘 견뎌내게 할거야. 정말 고맙다. 아들들!”
예로부터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교사들이 학생들을 돌보다 보면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일이 많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라고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께선 우리 교사들에게 자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회는 몇 안 되는 교사들의 잘못으로 자신의 속이 썩어 가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살아가는 많은 교사들을 한 묶음으로 묶어 난도질하고 쓰레기 더미에 던져 버립니다.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씁쓸함과 모멸감을 느끼는 많은 교사들은 점점 자신이 교직에 처음 설 때 했던 그 귀한 맹세들을 하나 둘 접어서 뒤쪽으로 밀쳐두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자신을 들여다보며 스스로에게 또다시 속상해하면서도!
흔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을 하며 학생을 대하는 긍정적 자세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칭찬은 학생들에게만 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사도 사랑을 먹으면 그만큼 풍성해집니다. 학부모나 학생들이 자신을 신뢰하고 있음을 느끼는 교사는 최선을 다해 자신을 불태웁니다. 수업시간 수많은 눈망울들이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자신을 향하고 있을 때 교사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자신을 달굽니다. 왜냐하면 교사란 직업을 선택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적 가치나 명성보다는 ‘가르침과 돌봄’이란 소명을 더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니까요. 교사도 사랑과 믿음을 먹고 자라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요즘의 교육 현장은 교사들에게 무척 메마른 땅이라 안타깝기만 합니다.
저는 1996년 이후 17년 만에 1학년 담임이 되었습니다. 지난 ‘스승의 날’ 저는 참으로 큰 축하를 또 받았습니다. 그저 조금 큰 중학교 4학년 정도라고 생각하던 제게 이 아이들은 어른들도 잘 보여주지 못하는 따뜻한 마음을 선물로 줬습니다. 37통의 편지, 예쁜 케이크, 프린트물까지 준비해 와서 3절까지 불러 준 스승의 은혜 노래와 가요를 개사해 만든 감사송, 그리고 실장이 대표로 바치는 큰절도 제겐 과분한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저에게는 지금보다 학생들을 더 사랑하는 교사로 살아야겠다고 새삼 마음을 꼭꼭 다지게 하는 우리 실장의 말이 가장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선생님! 우리들 사랑하시는 거 잘 압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우리들보다 선생님 자신을 위해 더 많이 투자하세요. 선생님! 사랑합니다.”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저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교사임을 느끼게 한 그 말과 함께 우리 실장이 보자기에 아무렇게나 싸서 제게 내민 선물은 다름 아닌 화장품이라곤 거의 없는 제게 분홍빛 립글로스와 자외선 차단용 콤팩트였습니다. 그날 이후 전 매일 화장하는 여자가 되었습니다. 아직은 많이 어색하지만 그래도 저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예쁘게 치장하는 모습을 보고파 하는 우리 반 37명의 멋진 남자들을 위해 오늘도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합니다. 그 마음이 감사해서 말입니다. 오늘은 우리 반 아들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살면서 가장 절박한 순간이 오더라도 이 세상엔 너희들을 위해 기도하는 한 사람이 세상 어느 구석에서든 있다는 사실을 잊지마. 설령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순간이 오더라도 하늘 나라에서도 이 학교 엄마가 너희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꼭 기억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힘내라.”고요.
자정을 넘어서는 이 시간, 하늘에 떠 있는 저 달도 제 마음을 아는가봅니다. 오늘밤은 유난히 달이 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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