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의 힘으로 신앙을 키워 온, 세계에 유래없는 우리나라에 조선교구설정으로 교계제도 안에 지금처럼 편안하게 하느님을 믿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준 파리외방전교회. 이방인을 본 적도 없는 동방의 미지의 나라에 선교사의 길을 나선다는 것은 곧 순교의 길이었다. 그러나 순교와 박해만 기다리는 이름도 모르는 이 나라 평신도들의 하느님을 향한 열정을 전해 듣고 태국교구장이라는 안정된 직책도 거절한 채, 모두가 사양한 선교의 길을 자청한 브뤼기에르 주교의 교회사랑 열정이 있었기에 이 나라 조선교구가 탄생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주교님은 꿈에도 밟고 싶고 보고 싶던 열정의 이 나라 신자들은 만나보지도 못하고 병중에 선종하시고 말았다.
그분이 택한 선교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에 조선교구가 탄생할 수 있었고, 이름도 모르는 나라로 순교의 길을 떠나는 외방선교회 선교사의 부모에게는 하느님 앞에 자식을 기꺼이 순교의 길로 떠나보낼 수 있었던 굳건한 신앙이 있었기에 오늘날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하느님을 경배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준 파리외방전교회, 이제는 우리 한국외방선교회의 선교 사제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빚을 갚기 위해 파푸아뉴기니 등지로 하느님을 알리기 위해 파견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방인의 나라에서 선교하고 사목하다
선종하고 묻히신다. 이 땅에서 편하게 살다가 내 나라 내 땅에 묻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와 달리 낯선 나라 아무 친지도 없는 그곳에서 선종하고 묻히신다.
선교사로 사목하시다가 귀국하신 신부님들로부터 미사강론 때 들은 말씀이 기억난다. 습도가 높은 대만 선교지에서 수돗물이 잘 나오지 않아 씻는 것조차 힘들어 고생하다가 한국에 들어와서 본원의 새 건물 수도꼭지에서 시원스레 나오는 물줄기를 보고 새삼 놀랍고 좋았는데, 이 모든 것이 후원회원분들의 덕분이라 여겨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하셨다. 사소한 일에도 평신도들의 작은 정성을 기억해주시는 신부님 말씀에 사제와 신자 간에 권위보다는 정이 더 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또 하나는 파푸아뉴기니에서 선교하신 신부님의 일화이다. 근무지인 교구청에서 회의를 마치고 나면 가끔 신부님들은 교구청 옆 슈퍼마켓에 들러 장을 보곤 하신단다. 그 날도 우리나라 신부님은 한국 라면을 두 상자 사서 수레에 실었는데 곁에 계시던 볼리비아 신부님은 값이 싼 반면 맛이 없는 베트남 라면을 사시더란다. 그래서 왜 맛없는 라면을 사시느냐고 물으니, 선교후원금이 적기 때문에 한국 라면을 살 여유가 안 된다고 하시더란다. 그 말을 듣고는 우리 신부님이 얼른 한국 라면 한 상자를 건네 드렸다고 했다.
그 말씀을 들으며 ‘그래, 가끔은 결과가 곧바로 보이지 않는 신앙의 길이 답답하고 기운 빠지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조금씩 봉헌하는 신앙의 삶을 산다면 그런 결과도 가져오는구나.’ 싶어서 작은 정성이라도 더 봉헌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우리가 여기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그 은혜를 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이 대신 한다는 마음에 이 땅에서 편히 사는 내 삶이 미안하기까지 했다. 앞으로 한국외방선교후원회 미사에 더 자주 참례하고 작은 것 하나라도 더 봉헌하려고 애써야겠다. 우리가 지나치게 나의 삶, 나의 울타리만 챙기고 살면서 선교사목을 위한 후원을 소홀히 한다면 그만큼 신부님들이 선교지에서 힘들게 지내실 것이라는 생각에 성심껏 봉헌하고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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