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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정 선생의 교실이야기 2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이유정(데레사)|계산성당, 대구가톨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무학고등학교

 

흔히 여름은 제대로 덥고 겨울은 제대로 추워야 제 맛이라고들 말합니다. 특히 여름날의 따가운 햇살아래 과일은 그 맛이 깊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 안에는 365일 한결같이 여름날의 뜨거운 열기를 무색하게 만드는 곳이 있습니다. 2,000여 명이 넘는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따뜻한 식사를 위해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찜통 같은 급식소 조리대 앞에서 연신 흐르는 땀조차 닦을 사이 없이 분주히 움직이시는 조리사 아주머니들의 매일은 항상 무더운 여름입니다.

오전 11시경 우연히 급식소를 찾은 저는 열심히 식사준비를 하시는 조리사 아주머니들을 뵈었습니다. 그날따라 학생들이 좋아하는 튀김요리를 준비하느라 조리대 안은 온통 뿌옇게 김이 서려 있었습니다. 여름이라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데, 주방의 조리대에서 뿜어내는 열기와 수증기 속에서 분주한 아주머니들을 보면서 저는 문득 우리 아이들이 이 분들의 노고를 알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후 점심을 먹으러 온 아이들이 식당 안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고, 순식간에 밥을 먹은 학생들은 또 금방 썰물이 빠져나가 듯 다 사라졌습니다. 남은 것이라곤 한 통 가득한 음식물 쓰레기와 너저분한 식탁들이었습니다. 쉴 새도 없이 바로 바닥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시는 그분들을 뵈면서 괜히 미안함이 솟구친 저는 “아휴, 이렇게 힘드셔서 어떡해요?”라며 감사와 위로의 마음으로 한 마디를 건넸습니다. 그때 오래 전부터 학교 급식소에서 근무하시던 조리사 한 분께서 무심한 듯 한 마디를 던지셨습니다. “원, 선생님도 별말씀을! 우리 아들도 이 밥 먹고 잘 자라 서울로 대학도 가고 직장도 구했는데요. 우리 아들이라 생각하고 일해요.” 그날 저는 우리가 이 분들의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매일을 살아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숙사가 있는 우리 학교 아침은 참 일찍 시작합니다. 아침 6시부터 사감선생님들은 학생들을 기상시키고 학생들의 밥을 준비하시는 식당 아주머니들은 새벽부터 분주합니다. 열 명이 넘는 교사들은 6시 40분경이면 학교에 등교해 기숙사 아이들을 깨우고 식사를 제대로 하도록 돕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보다 더 일찍 학교 안의 곳곳을 누비시는 분이 계십니다. 야간 경비 및 학교 관리를 맡고 계신 이 분은 6시 이전에 일어나셔서 교내 각 층의 현관문을 여십니다. 연이어 매점이 없는 우리 학생들에게 유일한 간식을 제공하는 자판기에 음료와 빵을 채워 넣기 위해 그 이른 시간에 3층까지 계단을 분주히 오르내리십니다. 자판기 옆에 둔 쓰레기 분리수거까지 손수하시며 단 하루도 시간을 어기신 적이 없으십니다. 수시로 교실에 두고 온 물건을 가지러 오는 학생들 때문에 잠시도 편히 쉬기 힘드실 텐데도 당신의 업무라고 하시며 그 수고로움을 감수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과연 그 수고와 사랑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요?

칼릴 지브란이 그 연인 메리 헤겔스와 주고 받은 편지나 메모를 모아 엮은 책에 아래와 같은 아주 짧은 글이 있습니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그 뒤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위대함에 견주어 보면!”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고이 접어 글로 승화시킨 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 글을 볼 때마다 저는 “사랑”의 힘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간절함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자신의 가슴 안에 공유하는 드러내지 못하는 “사랑”의 애틋함을 떠올립니다.

 저는 우리 학교의 일상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학생들을 참 많이 사랑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귀한 공기가 있어 숨 쉴 수 있음을 간과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기에 우린 그냥 무심히 지나쳐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 교사들도, 학생들도 이런 사랑에 그리 감사하는 마음없이 매일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매일같이 반복되는 보이지 않는 사랑들이 모여 우리 학생들이 보다 더 건강하게, 즐겁게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오늘 하루 수업시간마다 학생들에게 보이지 않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지도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소중한 사랑에 감사할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 되자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올해 3월 3일은 주일이었습니다. 개학 하루 전날이기도 한 이날, 우리 학교 교직원 20여 명은 아침부터 학교에 비상 출근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기숙사 청소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겨울 방학부터 더 나은 기숙사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학교에선 기숙사 화장실과 샤워실을 새로 리모델링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공사는 기간 내 끝났지만 청소가 그때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른 아침 이런 학교 상황을 전해들은 선생님들은 자신의 주일을 반납하고 하나 둘 학교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20여 명의 우리 학교 교직원들은 하루 종일 건물 곳곳에 쌓인 공사로 인한 먼지와 기타 불필요한 가구 등을 치웠습니다. 오후가 되어 모두들 지친 표정이 역력했지만 숙소로 들어오는 학생들을 보며 모두들 다행이란 안도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모두들 단 하나의 마음으로! 그건 “사랑”이 갖고 있는 위대함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며 참사랑의 모습을 노래했던 청마 유치환님의 <행복>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동안 제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얼마만큼 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그 순간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시며 매달려 계신 우리 예수님이 제게 잔잔한 미소를 보내십니다. “너도 나처럼 사랑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