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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노래를 주님께
샤를르 구노(Charles Gounod, 1818
-1893) 오페라 〈파우스트〉


박수원(프란치스코 하비에르)|교수, 오르가니스트

 

필자는 지난 3월에 막내아들이 태어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고상하고 우아하다거나 세련된 것과는 거리가 먼 처절한 광경이었는데, 허연 태지(胎脂)에 쌓여 퉁퉁 불은 채로 양수와 범벅이 되어 쏟아져 나와 가녀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보고, 예쁜 아기 옷을 입고 통통하게 잠든 귀여운 모습 따위를 기대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우리 모두 태어날 때는 이렇게 숨만 쉬면서 살았다. 이미 그 자체로도 감사할 일이겠지만, 점차 먹고 마시는 욕망에 익숙해지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려 하고, 몸을 뒤척이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일어서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원하는 것을 손에 쥐는 기쁨을 알게 되면서 사람답게 커나가게 된다. 그런데 이 사람의 욕망이란 것은 계속 자라나기만 할 뿐, 결코 줄어드는 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 할 수 있다. 더 성공하고, 더 많은 일을 해서 이름을 날리고, 돈도 더 많이 벌고, 더 좋은 집에 살며, 더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더 오래 살고 싶은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우리들의 모습 아니던가?

 프랑스 작곡가 샤를르 구노는 욕심 많은 파우스트 박사를 주인공으로 삼아 오페라를 작곡했다. 파우스트는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싶어 했고, 한평생 그렇게 공부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다. 기력이 쇠할 정도로 나이가 들자 비로소 후회와 한탄에 사로잡힌다. “내가 헛살았구나, 수십 년 공부를 해도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이렇게 많은 것을!” 사람이 제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이 세상 모든 것을 가슴에 품을 수는 없는 일, 그 한계에 이르자 실망하고 죽으려 할 때, 홀연히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그 앞에 나타난다. 일찍이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빠져서 선악과를 삼켰던 것처럼, 고매한 파우스트 박사도 악마가 던진 달콤한 말에 조금씩 속아 넘어가게 된다.

“무엇을 원하시오? 돈, 명예, 권력 이런 것들을 가지고 싶소?”

“아니, 나는 그것들을 포함한 더 큰 것을 가지고 싶다. 젊음을 다오!”

지성미 넘치는 노학자의 소원은 뜻밖에도 젊음이었다. 그 힘과 쾌락에 취하고 싶은 욕망에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든다. 마르게리타라는 아름답고 순진한 아가씨를 만나 삶과 영혼의 밑바닥까지 휘저어 놓고, 그도 모자라 그녀의 유일한 혈육인 오빠마저도 죽여 버리는 못된 짓을 저지른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당사자인 마르게리타는 반쯤 미쳐서 자기 아이를 죽여 놓고, 감옥에 갇혀 단두대로 끌려갈 판. 파우스트는 원하던 바를 얻어 행복할 줄 알았지만 고뇌는 더욱 깊어져가고, 자기가 망쳐 놓은 마르게리타라는 여인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젊음의 쾌락을 바랐던 원래의 목표에서 벗어나 진정한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이제 그는 사랑하는 이와 도망치려는 생각만 할 뿐, 세상의 지식이나, 젊음, 쾌락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절박한 상황에서 착한 마르게리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두 손을 모은다. 

“순결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천사들이여,

저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해 주소서!

정의로운 하느님, 저를 당신께 바칩니다!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부디 저를 용서해 주소서!”

결국 마르게리타의 영혼은 구원 받는 대신에 파우스트는 아주 조용히, 앞서 자신이 약속했던 것처럼 지옥으로 끌려가면서 이 오페라는 막을 내리게 된다. 우리들은 겨우 숨 쉬며 이 세상에 태어났다. 가지고 싶은 게 많아도 다 가질 수 없고,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려놓지 못하는 것 또한 삶의 묘미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