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젊은 여자가 저수지에 빠져 죽었다던데, 누구지? 이 아래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는데….” 회원들과 산행을 다녀오는 길에 우연히 인근 주민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동네 주민의 일이라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돌아가신 분이 4년 전부터 우리 센터를 이용한 회원(이하 이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선생님은 불과 4일 전에도 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간 회원인데 ‘자살’이라니… 나는 두 다리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 선생님과의 인연은 2010년 7월, 내가 담당한 회원들을 만나기 위해 가정방문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어둡고 작은 방에 혼자 앉아 있던 이 선생님은 왜소한 체격에 초점을 잃어버린 눈으로 가늘고 작은 목소리에 단답형으로 대답하며 빈껍데기만 남아있는 것 같았다. 이 선생님의 남편과 딸은 마음이 여리고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중복장애(정신지체 2급과 정신장애 3급)를 가진 이 선생님의 음주와 자기관리가 되지 않는 상황에 많이 지친 모습이었다. 세 식구는 같은 공간에 있을 뿐 가족으로서 최소한의 관계마저 단절된 상태였다. 나는 이 선생님의 회복과 재활을 위해 외부와의 교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한글교육을 제안했고 이 선생님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렇게 센터를 방문하여 주 1회 한글교육과 정기적인 상담이 이루어졌다. 상담이 진행될수록 이 선생님의 표현력은 점점 풍부해져서 “난 여기 올 때가 제일 좋아요.”, “오늘은 기분이 안 좋아요.”, “선생님, 고마워요.” 라고 말하며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가족간의 관계증진을 위해 남편과 딸의 상담도 같이 진행하면서 서로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그녀의 외로움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선생님은 마음의 문을 닫기 시작하면 며칠씩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럴수록 환청과 환시가 심해져서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어 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어 입원을 권유했지만 입원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던 이 선생님은 망설였고, 남편도 본인이 원치 않으면 강제로 입원을 시킬 수 없다고 했다.
자신만의 공간으로 들어가버린 이 선생님이 더 이상 센터를 방문하지 않아 가정방문으로 만남을 이어가던 어느 날, 수척해진 얼굴과 멍한 표정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이 선생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가족들에게 센터 내방과 입원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설명했고, 그러던 중 자살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모두 잠든 새벽, 이 선생님은 저수지에서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그곳은 평소 나와 함께 산책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길인데….
이 선생님의 자살은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죄책감과 무관심에 대한 후회를, 내게는 담당자로서의 책임과 감정의 공허함을 감당해야 하는 숙제를 남겼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구미알코올상담센터에서는 역할의 한계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느끼며 매순간 중독으로 힘든 싸움을 하고 계신 회원들이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다.
* 이 글은 이 선생님 가족의 동의 아래 작성되었습니다.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 힘겨운 상황에서도 협조해주심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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