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신앙에세이
공세리 성지 성당을 다녀와서


박영순(엘리사벳)|수필가, 성정하상성당

 

유월의 햇살은 빛났다. 대구가톨릭문인회에서는 공세리 성지 성당으로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아침 이슬이 내리기 전 성모당에 모여 대형버스에 몸을 싣고 세 시간 반이라는 짧지 않은 여정을 시작하였다. 성지에 대한 간략한 안내는 빨리 그곳으로 가고픈 궁금함으로 마음이 앞서갔고, 하루 일정을 주님께 의탁하는 묵주기도를 올렸다.

성지에 발이 닿는 순간, 아름드리 고목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광경은 그 옛날 순교자들이 우리를 마중 나온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왔다. 성지를 향한 언덕길 옆 느티나무 고목가지들은 더 넓게 쉼 자리를 뻗쳐 주려고 애쓰는 듯 약간의 떨림으로 잎사귀들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순교자들의 숨결 같기도 한 고목의 움직임은 먼 그때의 일을 다 들려주고 있지만 무딘 나로서는 그때의 아픔을 다 헤아려내지 못한 채 아담하고 유서깊은 성당에 이르렀다. 일행은 성당을 보고 너도나도 아름답다고 감탄하며 기념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리고는 32위 순교자 현양비와 현양탑 앞에서 그분들의 순교정신을 새기며 조금이라도 그 뜻을 기리겠노라고 묵상기도를 바친 다음 성지 박물관을 둘러 보았다. 이 지역의 신앙생활을 잘 볼 수 있도록 유물과 사진 등이 정성스레 간추려져 전시되고 있었다. 유리창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빛들이 작지만 남다른 박물관의 자긍심을 높이는데 적잖은 역할을 담당해 주었다.

곧 이은 야외미사는 200~300년 된 고목 그늘 아래서 봉헌되었다. 신부님의 강론은 성지순례자 뿐만 아니라 나에게 깊은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32위 순교자 중에 밀양 박씨 3형제 이야기가 있는데 그 중 박원서 마르코 순교자가 남긴 말씀(내 평생 천주공경을 실답게 하지 못하였더니 오늘 천주께서 나를 부르셨다.)을 들려 주시며 죽음의 길을 흔쾌히 받아들인 그 뜻을 기리는 시간을 가져보길 당부하셨다. 3형제 중 현실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제일 충실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순간 하느님의 품으로 온전히 자신을 내어 주겠노라며 병인박해 때 보여준 신앙의 증거를 신자들이 본 받아, 본당에 가면 기꺼이 봉사하는 삶으로 살아 주었으면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셨다. 봉사도 다 때가 있으며 하라 할 때 해야지, 나중에는 하고 싶어도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언제 어떻게 될지는 하늘에 계신 그분만이 아시는 일이기에 우린 묵묵히 봉사하며 사는 것이라고….

얼마 전 결혼할 예비부부가 추억을 담을 결혼식을 하고파 궁리 끝에 공세리성당을 찾아왔단다. 신부님과 면담 후 결혼식 날짜를 정하고 갔는데 결혼식 일주일 전에 남자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연락이 오더니, 결혼식 대신 남자의 영혼을 위해 장례미사를 부탁하여 그 일을 그렇게 매듭지어 주었다는 슬픈 이야기도 곁들여 들려 주셨다. 우리의 삶이 우리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자신이 결혼 할 장소에서 자신의 장례미사를 치러야 했던 그 남자의 애처로운 인생이 가슴을 서늘하게 하였다. 우린 그 어떤 것도 하느님의 섭리 밖에서는 살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고 상징처럼 큰 음성으로 순례자들에게 마음의 울림을 주셨다. 봉사도 때가 있으니 이리저리 피하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기꺼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할 때와 하지 못할 때 분명히 있으며 봉사를 한 사람은 후회가 적지만 그렇지 못할 때 후회를 많이 하는 게 삶이라 하셨다.

마지막으로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성당 안에서 성체조배를 한 뒤 동굴성체조배실로 향했다. 차분히 앉아 기도드리는 순례자들의 틈에서 순교자들을 위한 감사기도를 드렸다. 십자가의 길은 못했지만 잠시 내 안의 십자가를 찾아보는 시간을 내었다. 나에게 주어진 작은 십자가도 마다하지 않고 지고 갈 것이고, 때가 되어 봉사할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힘껏 봉사할 것을 다짐해 보았다.

 * 약력 : 대구수필회원, 영남아동문학회원, 대구수필가협회회원, 가톨릭문인회원, 한국수필 등단, 한국문학예술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