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2013년도 대학생 제주도 도보성지순례
“땅 끝에서! 천국까지!”


김영훈(프란체스코 하비에르)|월성성당

대구대교구 청년국 대학생 담당(담당 : 김덕우 안토니오 신부)에서는 교회의 청년들을 위한 신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6월 25일(화)~28일(금)까지 2013 대학생 제주도 도보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이번 도보 성지순례에는 전국의 각 대학 가톨릭 동아리 회원 및 청년들이 참가하여 3박 4일 동안 제주도 지역 문화 유적지 및 성지를 도보로 순례하였습니다. - 편집자 주(註)

 

  아직도 귀에 선명하다. 길을 가다가도 누가 대학생 제주도 도보성지순례 구호인 “땅 끝에서! 천국까지!”를 외치면 나도 모르게 따라 할 것 같은 기분. 밤에 운동을 하러 갈 때마다 구호가 적힌 수건을 챙겨 가는데 혼자 운동을 하면서도 그때 그 제주도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과 같이 있는 기분마저 든다. 3박 4일간의 짧고도 굵은 시간의 여운이 이렇게 오래 남게 될 줄 몰랐다. 사실 처음엔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다. 도보순례 자체도 처음일 뿐더러 날씨는 덥지, 비도 온다는데 짐을 싸서 어디론가 가는 것이 사실 조금 귀찮기도 했다. 대학생치고는 적지 않은 나이에 어린 동생들과 지내야 하는 것도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기대보다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별 문제 없이 제주도를 가게 되는 듯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대리구 청년체육대회에서 계주를 하다 양 무릎을 다친 것이다. 상처가 깊지는 않았지만 염증이 심해 많이 쓰려서 그 상태로 걸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가기 전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낫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약을 발랐지만 그 각오는 별 의미가 없었다. 결국 절뚝거리면서 제주도를 다녀왔고 무릎의 쓰라림은 3박 4일 내내 나를 무척 부자유스럽게 만들었다.

정말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무릎이 너무 쓰라려서 걷는데 많이 힘들었다. 그렇게 힘든 코스를 걷는 것도 아니었지만 평범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매순간내게 무릎의 고통을 동반했다. 게다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어찌나 많던지 우리 조원들과 봉사자들에게 민폐를 끼쳤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미안하다. 사실 진통제까지 먹고 있었다는 건 우리 조원들만 알고 있었다.

 

“너희는 마치 사람이 자기 아들을 단련시키듯,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단련시키신다는 것을 마음 깊이 알아 두어야 한다.”(신명기 8,5)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 의해 그 곳을 탈출하고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광야의 길을 40년 동안 걸었다. 실제로 이집트 땅에서 가나안까지는 길어도 7~8일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인데도 무려 40년이나 돌아서 갔다. 오랫동안 노예로 살았던 그 민족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단련시키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풀 한포기 나기 힘든 척박한 광야의 땅에 이스라엘 백성이 살도록 하셨다.

내가 무릎이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포기’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은 나 또한 단련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고작 무릎이 아픈 것뿐인데 겨우 이런 일에 포기를 한다면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에서도 쉽게 포기할 것 같았다. 그때는 무릎이 아니라 다른 곳이 아플 수도, 혹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걸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늘 순탄한 길이 아니라 더 험한 길을 걷게 될 수도 있을 텐데 그걸 제주도에서 아주 잠깐 체험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제주도의 둘째 날은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이신 아버지께서 4차 항암치료를 받으시는 날이었다. 그동안 늘 내가 모시고 갔는데 가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그날의 도보순례는 몸보다 마음이 더 무거웠다. 나날이 아버지의 병세는 안 좋아지시고 경제적인 형편도 좋지 않아 이래저래 현실적인 문제에서 버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또 4학년이다 보니 취업에 대한 불안감도 늘 안고 있어야 했다. 많이 지쳐있던 나는 너무 힘들어서 이제 다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제주도에서의 3박 4일은 그런 내게 다시 한 번 용기를 가져다줬다.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탓하기보다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좀 더 용기를 내보고 싶어졌다. ‘좋은 장소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좋은 추억을 쌓고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풍족해졌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제주도에 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신 월성성당 조성택(사도요한) 주임신부님과 교구 청년성서담당 구자균(다미아노) 신부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3박 4일간 미사에서 찬양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교구 청년국 대학생담당 김덕우(안토니오, 삼덕젊은이성당 부주임) 신부님께도 감사드린다. 덕분에 ‘꿀 성대’라는 별명도 얻었다. 또 늘 좋은 말씀을 해주신 대구가톨릭대학교 김종호(요셉) 신부님께도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나와 함께 했던 우리 <뒤처지지 말조> 조원들에게 너무 고맙고, 봉사자님인 동갑내기 학사님에게도 꼭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3박 4일간의 일정을 준비해주신 모든 봉사자들과 스텝들에게도 감사와 수고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