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지는 볼리비아 임마쿨라타 콘셉시온 마을에서 선교 중인 예수성심시녀회 김 헬레나 수녀님이 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님께 보내온 편지글로, 지난 호에 이어 계속 소개해 드립니다. - 편집자 주(註)
전 세계가 이상기온이라고 하는데 저희가 살고 있는 이곳 볼리비아의 깊은 오지 마을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건기철인 요즘 며칠째 비가 내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습니다.
오늘은 저희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정글 속으로 97㎞나 떨어져 있는 마카나테공동체의 축제날입니다.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일용할 양식을 챙기는데 하늘에선 비가 점점 세차게 내립니다. 심란한 마음으로 준비를 갖추어 대문을 나서니, 언제부터 와서 기다렸는지 축제가 있는 공동체 주변 마을 사람들이 소금이나 기름 등의 생필품을 구하러 나왔다가 들어가는 차량을 이용하여 돌아갈 속셈으로 많은 보따리들과 함께 컴컴한 어둠 속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서 있었습니다. 비는 쏟아지는데 날씨는 차고, 자동차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나라에는 보통 가정마다 6~7명의 자녀들을 낳아 기르다 보니 어디를 가나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소는 참으로 귀합니다. 저희가 살고 있는 교구만 해도 면적은 우리나라 남한 크기만 한데 본당은 17개, 이 나라 출신 사제 7명에 선교사는 13명입니다. 그러니 1년에 유일하게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축제일은 그들에게 가장 큰 잔칫날입니다. 공동으로 소를 잡아 고기를 마음껏 먹고, 치차(옥수수 가루를 끓여 발효시킨 음료로 우리나라의 막걸리와 비슷함)를 마시고 취하여 흥을 내는 이날에 초대를 받았으니 함께 축하를 나누기 위해 길을 나설 수밖에 없지만 오늘같이 궂은 날씨에 트럭 뒤 짐칸에 몸을 실어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잠시 망설여졌습니다. 급기야 먼 길에 트럭 의자에 한 명이라도 더 앉아서 갈 수 있도록 저희가 집에 남겠다고 신부님께 양해를 구하니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 정글로 들어가는 것도 큰 모험인데, 어떻게 저 혼자 가라고 하시는지요.”하시며 우리가 함께 동행해주기를 고집하셨습니다.

보통 이곳은 1월부터 3월까지 계속되는 우기에 강이 범람하여 정글공동체로 들어가는 길들이 늪으로 변하기에 아예 떠날 엄두를 못 냅니다. 그러나 올해는 건기에도 계속 비가 와서 땅이 무를 때로 물러, 지난 달 방문길에는 구덩이 속에서 몇 번이나 진흙을 뒤집어쓰며 빠져나오기 위해 애쓰던 자동차도 이젠 힘이 들었는지 중간에 이내 멈추어 섰습니다. 어떻게 구조요청을 할까 생각하다가 약 2㎞쯤 걸어가면 언덕에 높은 바위가 있고 그 위에서 핸드폰 사용이 가능하다고 하여 흔히 길에서 많이 만나게 되는 짐승들(여우, 호치, 원숭이, 보아뱀, 얀따 등)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숲길을 걸어 가 애써보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포기하고 돌아오는 길에 다행히 사람을 만나 함께 다시 바위 위에 올라서서 두 팔을 힘껏 뻗어 올리고 한참의 노력 끝에 간신히 마을에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도 잠깐, 우리는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리는 몇 시간동안 달려드는 온갖 벌레들을 쫓기 위해 온 몸을 흔들어 춤을 추어야만 했습니다.
집안에 모아둔 비닐을 모두 찾아내어 대충 구멍을 뚫어 비옷(?)을 만들어 입혀주고, 미안한 마음으로 트럭 뒤 짐칸에 오르는 그들을 바라보며 자동차는 출발하였습니다. 큰 도로를 벗어나 좁다란 길로 들어서자 물구덩이뿐만 아니라 세찬 바람을 이기지 못한 나무들이 쓰러져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준비한 도끼와 큰 칼(machete)을 휘두르며 하나를 치우니, 또다른 나무가 다시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12개를 치우고 97㎞의 거리를 6시간 만에 가까스로 도착하니, 그들은 대단한 기쁨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목청을 높여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의 언어(치키타니어 : 저희들이 살고 있는 곳의 부족어)로 음률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우리를 환대하는 덕분에 저희 또한 지나온 길에 대한 어려움을 잊고 그들과 함께 우리 주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꿈 너머 꿈”인 정글공동체 장애인들을 위한 쉼터 건립이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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