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하다 문득 바라본 길가에 어느새 여름꽃 접시꽃이 활짝 피어 있다. 바쁘다는 말을 습관처럼 뱉으며 사느라고 참으로 귀한 인연들에게 소홀했던 시간들이 접시꽃을 보는 순간, ‘아차!’하고 떠올랐다. 우리가 바쁘다고 아우성치는 사이에도 자연은 나름대로 부지런히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접시꽃 닮은 친구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우리 오늘 얼굴 볼래?”, “정말이니?”
바쁜 나를 늘 해바라기 해주는 친구의 목소리가 한껏 들떠 있다. 이기심 많은 내 시간에 맞춘 만남인데도 그 친구는 벌써부터 내가 좋아하는 음악 CD를 고르고 시집(詩集)을 사기 위해 서점을 찾을 것이다. 욕심 없이 기뻐하는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밀려와 한참을 머뭇거리기만 했다. 친구와 통화를 끝내는데 연이어 전화가 울렸다. “아가다, 별 일 없죠?” 보나 수녀님의 잔잔하면서 아늑한 음성이다. 이런, 또 한 발 늦었다. 늘 이렇다. 안부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잊고 살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면 언제나 한 발 앞서 연락을 하시는 수녀님이시다. 여러 곳을 옮겨 다니시느라 인연 맺은 교우들도 많을 텐데 남편과 아이들의 소식까지 살뜰하게 챙기시는 수녀님의 정(情)에 대한 내 답은 늘 지각이었다. 아니 답을 하지 못했을 때가 더 많다.
미사 해설을 처음 맡고 긴장해서 어떻게 끝마쳤는지도 모르고 어색해 할 때 “아가다, 천상의 목소리인 줄 알았어요.”하고 칭찬해주시던 수녀님과 첫 마음을 나눈 지도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 간다. 수녀님은 이야기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먼저 읽고 계신 듯했다. 만학으로 공부를 마치고 늦은 나이에 임용고시에 합격했을 때는 누구보다 축하해 주셨고, 발령 받은 첫 학교에서 의욕만으로 맞서기에는 상황이 버거워 힘들어 할 때는 “괜찮아요?”하고 몇 번이나 물어보셨다. 그리고 한참 지난 후에 “이제 정말 괜찮은 것 같네요. 이제껏 말은 괜찮다고 하는데도 표정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편안해 보여요.” 하시며 접시꽃처럼 곱게 웃어주시던 수녀님은 전라도의 한 소도시에 있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말기 암환자들을 돌보시게 되셨을 때도 먼저 계절을 담아 이야기를 보내오셨다.
노랑, 분홍, 녹색의 A4 용지에 곱게 담긴, 회복할 수 없는 병을 안은 환자들이 누워 있는 병상 너머로 보이고 들리는 들꽃 이야기, 바람 이야기, 새 이야기는 바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늘 감사해 하시는 수녀님의 기도이고 마음이셨다. 그때도 나는 수녀님의 애틋한 마음에 답을 하지 못했다. 삶의 마지막을 보내는 분들에게 시낭송을 한 번 해주었으면 하는 부탁이셨다. 수녀님은 임종을 앞둔 분들이 밝은 마음으로 천국을 향해 갈 수 있게 자녀들의 편지, 손주들의 바이올린 연주 등을 준비하여 가족들의 사랑 속에서 아름답게 이별하는 자리를 마련하셨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도 아마 바쁘다고, 또 죽음을 앞둔 분들을 대면한다는 것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미루었을 것이다.
얼마 후 찾아뵙겠다고 연락했을 때는 수녀님이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신 후였다. 그리고도 봄꽃이 필 때면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때까지 지키지 못하고 또 몇 해가 흘렀다. 그런데 수녀님께서 또 먼저 전화를 하신 것이다. 수녀님이 계시는 곳은 대구에서 버스로 4시간 남짓이면 가는 거리다. “아가다, 요즘은 어때요? 아가다가 우리 성당에서 시낭송을 한 번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모두들 정말 좋아할 텐데….”수녀님의 아름다운 제안에 이번엔 정말 착하게 답을 할 것이다. 수녀님을 닮은 곱고 밝은 저 여름꽃 접시꽃이 다 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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