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이 달의 말씀살이 - 소공동체를 위하여
이 달의 말씀살이
- 소공동체를 위하여


교구 성서사도직과 황은모, 이수환, 조재근, 김동진, 이동철 신부

 

 

· 소공동체 복음나누기 자료제공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053) 250-3082, cafe. daum.net/biap

 

 

9월 1일, 연중 제22주일, 루카 14,1.7-14.

1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7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8“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9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10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 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11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12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4장 1절, 7절~14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1절)

- 초대받은 이들의 모습은 어떠한지 살펴봅시다.(7절)

- 예수님께서는 초대를 받거든 어느 자리에 앉으라고 하십니까?(10절)

- 예수님을 초대한 이에게 하신 말씀을 들어봅시다. 어떤 이들을 초대해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13-14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정, 반·구역, 단체 등)를 위해 할 수 있는 선행을 생각하고 실천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1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연중 제22주일 복음묵상 : 황은모(요한)|반야월성당 보좌신부

본당에서 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거나 회식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게 식사를 하기 위해 정해진 장소에 도착하면 식사를 하기 전에 자리를 정해야 하는 시간이 생깁니다. 저는 신부이다 보니 으레 자리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신자분들 경우에는 ‘내가 여기에 앉겠다, 나는 저리로 가겠다.’하면서 자리 때문에 서로 의견이 분분(?)해지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 말씀처럼 윗자리에 앉고 싶어서 그렇게 자리를 두고 이리저리 옮겨 가시는 신자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윗자리가 불편해서 구석진 자리로 가려는 분들, 아니면 어색하고 불편한 사람을 피해서 자기랑 친한 사람들이 앉아 있는 자리로 옮겨 가려는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실 모든 사람들이 윗자리를 차지하려고 욕심을 내는 것은 아닙니다. 윗자리를 욕심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자리를 욕심낼 뿐이지요. 쉽게 말해서 식사 자리뿐만 아니라 어떤 공동체든지 함께 모이게 되면 공동체 안에서의 지위나 나이, 또 서로 간의 관계에 따라 마땅히 지키고 있어야 할 자리들이 있는데, 그렇게 자신이 좋든지 싫든지 마땅히 지키고 있어야 할 자리에 있기보다 자기가 원하는 자리에 가고 싶어하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오늘 예수님의 ‘낮은 자리에 앉으라.’는 말씀의 핵심은 겸손함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겸손함이 무조건 윗자리를 피하고 낮은 자리로만 내려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공동체 안에서 자신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는 것, 그리고 해야 하는 역할을 분명하게 알고 거기에 충실할 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조금 다르게 표현을 해보자면, 식탁 자리에 앉은 모든 이들을 향한 배려심과 따스한 관심이라고도 말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기 보다는 자기 생각만 하고 특정 자리를 고집부리는 욕심, 남들의 감정이나 지위, 역할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은 채 자신이 원하는 상황만을 요구하다가는 언젠가 가장 끝자리로 쫓겨날지도 모릅니다. 항상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는 배려심을 가지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충실히 지킨다면 그것이 바로 겸손함의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9월 8일, 연중 제23주일, 루카 14,25-33.

25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4장 25절-33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 많은 군중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는 경우는 어떤 때입니까?(26-27절, 33절)

-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를 계산해 보지 않고 탑을 세우려고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29-30절)

- 임금이 다른 임금과 맞설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32절)

- 예수님의 두 비유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겠습니까?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예수님 말씀대로 사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고 하나씩 버리는 노력을 하도록 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29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연중 제23주일 복음묵상 : 이수환(바오로미키)|원평성당 보좌신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분의 뒤를 따라야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우리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 의문을 가져봅시다. 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할까요? 버리지 않고서는 그분을 따를 수 없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분을 따르는 삶이 어떠하기에 버려야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예수님처럼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내어놓는 삶’입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내어 놓았습니다. 자신의 몸까지도 내어 놓았습니다. 내 것이라 생각한 모든 것을 내어 놓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건 그분처럼 내어 놓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온전히 내어 놓는 삶을 위해 (내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내 것에 매여 있다면 내어 놓지 못합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은 신이 나서 이야기하는데 다른 생각을 하면 대화의 내용을 모르게 됩니다. 내 생각에 매여 그 순간 내어 놓는 삶을 살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 내 안에 온통 가족에 대한 걱정, 내 건강 문제만을 생각하는데 어떻게 예수님처럼 내어 놓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래서 ‘버리는 것’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이웃을 받아들이기 위해 버리는 것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물론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리스도인이잖아요. 할 수 있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 내 속엔 헛된 바람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9월 15일, 연중 제24주일, 루카 15,1-32 또는 15,1-10.

1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8“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하고 말한다.

10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5장 1절-10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세리들과 죄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1절)

- (이러한 모습을 보고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2절)

-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한 마리를 잃으면 어떻게 합니까?(4절)

-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어떻게 합니까?(5절, 6절)

-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는 부인이 한 닢을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합니까?(8절)

- 그러다가 잃었던 은전을 찾은 여인은 어떻게 합니까?(9절)

- 하늘에서는 무엇 때문에 기뻐합니까?(7절, 10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 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 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에 어떤 방법이나 모습으로 응답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 실천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56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연중 제24주일 복음묵상 : 조재근(마르코)|월성성당 보좌신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셨던 요한 23세 교황님께서는 1958년 성탄절에 로마의 한 교도소를 방문하시어 죄수들을 만나셨습니다. “여러분이 내게 올 수가 없어서 내가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내가 여기 교도소로 왔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눈을 쳐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서로 가까워졌습니다. 우리의 만남이 내 마음속에 오래오래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꼭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집으로 편지를 보내실 때 교황이 여러분을 찾아왔었고 바로 다음 미사 중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부인들과 형제자매들과 가족들을 기억할 거라고 꼭 쓰셔야 합니다.”

그때 한 살인범이 눈물을 글썽이며 “교황님! 저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살아갈 의미가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교황님은 대답 대신 몸을 숙여 무릎 꿇은 그 죄수를 꼭 안아 주셨습니다. 요한 23세 교황님의 이러한 모습은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신 예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연중 제24주일 복음에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리시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눈에는 그런 예수님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고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립니다. 예수님은 투덜거리는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 말씀 속에 등장하는 양 한 마리를 잃은 목자와 은전 한 닢을 잃은 부인의 모습에서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첫째, 포기하지 않고 잃은 것을 끝까지 찾습니다. 둘째, 찾은 기쁨이 너무 큰 나머지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도 길 잃은 한 사람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를 찾았을 때에 얼마나 기뻐하실지 그 기쁨은 너무나도 큰 기쁨이기에 우리는 미처 알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습니다. 죄로 인해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기도 하지만 두 팔 벌려 안아 주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죄를 뉘우치고 다시 주님께 돌아갈 용기가 생깁니다. 주님께서는 비록 죄 많은 우리지만 몸소 찾아오시고 당신께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십니다. 두 팔 벌려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찾고 계십니다. 주님의 손을 놓고 있다면 용기를 내어 주님의 품에 안겨봅시다.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9월 22일, 연중 제 25주일, 루카 16,1-13 또는 16,10-13.

10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11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13“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6장 1절-13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부자는 집사에게서 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 합니까?(1절, 2절)

- 집사는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자기를 맞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합니까?(5-7절)

- 주인이 불의한 집사를 칭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8절)

- 재물을 올바르게 이용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 루카복음 12장 16절-21절 어리석은 부자와 약은 청지기를 비교해봅시다.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 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세상의 것을 위해 애쓰는 것만큼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서도 애쓰고 있는지 반성해보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내 삶 안에서 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를 결심하고 실천해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28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연중 제25주일 복음묵상 : 김동진(제멜로)|성정하상성당 보좌신부

세상의 일만큼 교회의 일도 열심히 합시다!

오늘 복음은 해석상의 논란이 많은 약은 집사의 비유입니다. 약은 집사의 약삭 빠른 행동을 예화로 드신 것도 의구점이 많은데, 거기에 그 약은 집사를 칭찬하는 주인의 이해 못할 행동까지…. 이 복음을 읽는 신자들은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주일 복음을 묵상하다보니 신학생 때 저녁 시간을 따로 내어 성경원문 강독 수업을 청강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한번은 교수 신부님께서 약은 청지기 비유를 원문 강독하시면서 신학생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학사님들, 약은 집사의 약삭 빠른 대처를 돈의 주인이 칭찬할 수는 없지 않나요?” 생각해보니 그러했습니다. 돈의 주인이 자신의 돈과 부채를 자기마음대로 탕감해주는 종의 행실을 따로 불러 칭찬했을 리는 만무하고, 예수님께서 그런 억지 비유를 말씀하셨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그렇게 질문을 던지시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복음을 읽는 것이 희랍어 성경원문을 읽는 즐거움 중의 하나입니다. 원문에 나오는 루카 16, 8의 희랍어 ‘키리오스’라는 단어를 ‘주인’ 대신에 ‘주님’이라고 번역하면 다른 해석이 됩니다.”

비유에서 돈과 재물의 주인이 집사를 칭찬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주님께서 칭찬하셨다고 해석을 하면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합니다. 루카 16, 8의 ‘키리오스’라는 희랍어 단어를 ‘주인’이 아닌 ‘주님’으로 해석하면, ‘세상의 사람들이 자기의 뒷날을 이렇게 재빠르게 준비하는데, 하느님의 자녀들은 더욱 더 열심히 재빠르게 하늘 나라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일에는 애를 쓰고 어떻게 하든지 잘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하느님의 일에는 소홀히 하는 모습들을 보시고 그것을 꾸짖으시려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고 보는 것이 개연성이 있는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본당마다 새로운 간부를 뽑아야 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세상일에는 애를 쓰고 잘 해보려고 노력하지만 하느님의 일에는 소홀히 하는 그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지금의 우리들도 그런 모습은 아닌지 반성해보고, 세상일에 충실한 것 이상으로 하느님 나라와 교회의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해 참여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9월 29일, 연중 제26주일, 루카 16,19-31.

19“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22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25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6장 19절-31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세상에 부자의 모습은 어떠합니까?(19절)

- 부자의 집 대문 앞에 있는 라자로의 모습은 어떠합니까?(20절, 21절)

- 가난한 이는 죽어서 어떻게 있습니까? 또 부자는 어떻게 있습니까?(22절, 23절)

- 아브라함 곁에 있는 라자로를 본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합니까?(24절)

- 부자의 부탁에 아브라함은 뭐라고 응답합니까?(25절, 26절)

- 라자로를 아버지 집으로 보내어 그의 형제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는 부자의 청에 아브라함은 뭐라고 대답합니까?(29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 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나 작은 일들 가운데 소홀하거나 그냥 지나친 경우가 없는지 생각해 보고 다시 관심과 배려의 마음을 가지도록 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6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연중 제26주일 복음묵상 : 이동철(대건안드레아)|구암성당 보좌신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가르침 중 하나에 해당합니다. 어떤 가르침인지 복음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아주 잘 사는 부자가 있습니다. 그는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그런데 그의 집 문간에 부자와는 대조되는 모습의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있습니다. 그는 종기투성이였고 배가 고파서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라도 배를 채우려 합니다. 둘은 죽습니다. 라자로는 성조 아브라함 곁에 있고 부자는 저승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부자는 라자로의 손가락을 통해 자신의 목마름을 해소하고자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죽음 이후에 맞이하는 영혼의 상태는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자 부자는 살아있는 자신의 형제들만이라도 그 고통을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라자로를 자신의 집으로 보내어 경고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부자의 형제들이 살아있는 예언자들의 말을 믿지 않으면 누가 죽었다가 살아났다 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그 부탁을 거절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두 가지 가르침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가르침은 선행에 관한 것입니다. 부자와 라자로가 살아있을 때 이야기에서 부자가 라자로에게 못해 준 것은 없습니다. 자신의 문간에 있는 라자로에게 “저리 가라!”고 하지도 않았고 그를 모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라자로의 가난에 대해 무관심했습니다. 선행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 삶도 중요하지만 선행을 베푸는 삶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저승에 있는 부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얘야, 너는 살아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두 번째 가르침은 죽음과 그 이후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죽음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찾아갑니다. 누구나 죽습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의 상태는 더 이상 변화될 수 없습니다. 물론 연옥이라는 정화의 과정이 있지만 천국과 저승이라는 상태는 더 이상 바뀌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살아있을 때 회개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어려운 이들을 도와줄 기회, 내 악습을 고치고 새 삶을 살아갈 기회 등 많은 기회들을 만납니다. 그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합니다. “세상 즐기면서 살다가 죽을 때 회개하지 뭐.” 이런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 앞에 기회가 왔을 때 실천해야 합니다. 삶 속에서 변화되지 않으면 죽음 앞에서도 변화되기 힘듭니다.

부자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선행의 기회를 찾고 실천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