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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음으로 세상보기
우리가 지구(地球) 위에서 산다는 것


정인용(바르톨로메오)|3대리구장, 주교대리 신부

 

 예전에 ‘하느님께서는 왜 인간이 사는 이 세상을 평면으로 창조하시지 않으시고 구(球)로 창조하셨는가? 거기에는 여러 가지의 뜻이 있을 것이다.’ 라는 테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신부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워낙 오래전에 읽었던 글이어서 어디에서 읽었는지 책의 제목은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테이야르 신부님께서는 그 글에서 한 가지는 제시하셨습니다. ‘평면은 무한한 것을 생각할 수 있지만, 구(球)는 어디까지나 한정(限定)될 수밖에 없다.’고…. 그리고 ‘우리는 이 한정된 구에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앞에서 ‘여러 가지의 뜻’이라고 했는데, 저는 그 여러 가지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혼자서 아니면 여럿이서 낯선 곳으로 여행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낯선 곳에서는(나의 세계가 아닌 곳) 어느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과 아무리 문명을 등지고 사는 것 같은 열악한(과학 기술 문명적으로) 환경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행복과 기쁨의 삶이 있더라는 거였습니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지구(球) 위에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구가 완벽한 구(球)는 아닙니다만, 많은 분들이 세상을 평면적으로, 사회를 피라미드 구조적으로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위치와 처지에 불만을 갖고, 또 더 높은 자리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평면에서의 중심점은 어디까지나 한 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구에서는 그 구를 평면적으로 봤을 때 어느 곳의 점이라도 중심점이 됩니다. 또한 피라미드 구조로 된 사회 형태에서는 정점(頂點)은 한 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구의 구조 형태에서는 모든 점이 또한 정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우리 격언대로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지구라는 구(球) 위에서 살도록 하신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사실 하느님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든 사람이 더없이 소중하고 나아가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잃은 양의 비유’ 말씀에서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나서는 목자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떤 양인지는 모릅니다. 아마 무리에서 이탈할 정도면 가장 비실비실한 못난 양이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한편으로는 나보다 못하다고 무시하고 흉보는 것은 바로 주님께 그렇게 한 것으로 성립됩니다. 하느님이신 주님을 무시하고 흉보는 사람이 신자일 수는 없지요. 사랑하고 존중할 때 성립됩니다. 

하여튼 이렇게 모든 사람 각자는 이 지구 위에서 중심점이며 정점으로 자기 나름의 자신의 세계를 형성하고 살아갑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허락해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 중의 하나입니다.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는, 비록 작지만 나 중심의 세계에서 주인공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하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중심이기 때문에 나 멋대로 하고, 내가 정점이기 때문에 그 세계에서 군림하고 복종시킬까? 절대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나 자신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답은 참으로 모든 것의 중심이시며 세상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이신 예수님께로부터 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것인 이 세상을 위해 당신 자신을 낮추셨고 겸손하게 봉사하셨으며 당신을 희생하시고 내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러하셨다면 우리도 그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만이 나의 것인 세계를 내가 되찾는 길이고 또한 내가 나를 되찾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