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유럽 서편 끝에 자리 잡고 있다. 대한민국 보다 다섯 배 정도 더 큰 면적으로 그 모양이 마치 손바닥을 펼쳐 놓은 것 같은 육각형에 가까워서 ‘헥사곤(Hexagon)’이라고도 한다. 먼 옛날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과 나폴레옹이 이탈리아를 공격하기 위해 넘어갔던 험준한 알프스 산맥이 남동쪽 아래에서 스위스, 이탈리아와 자연적인 경계를 이루며 서남쪽에서 마주치게 되는 피레네 산맥 너머로는 스페인을 지나 아프리카 대륙이 자리 잡고 있다. 남서쪽 모퉁이를 돌아 나와 이르게 되는 서쪽 해안가 한 중간에 그 유명한 포도주 산지 보르도가 바다 건너 신대륙을 바라보고 있는데 여기서 북쪽으로 더 나아가 도버 해협을 지나 동쪽으로 내려오면서 영국, 네덜란드 및 벨기에, 그리고 독일과 국경을 접하게 된다.
3면이 바다이고 땅이 비옥하여 사시사철 경치의 변화가 형형색색 아름답고, 늘 맛있는 먹거리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주변 나라들과 소식을 주고받는 데도 재빨라 여기 사는 사람들은 까다로우면서도 섬세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백여 년 전,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 음악가 주앙 알랭이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났다. 어려서부터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쓰고 무엇보다도 음악적 감수성이 남달랐으니 20대 초중반에 이르러서는 이미 작품으로 세상에 그 명성을 드러낼 정도에 이른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너무나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것. 악보를 담은 가방을 한쪽 어깨로 둘러메고 날이면 날마다 ‘부릉부릉’요란한 오토바이 소리를 내며 폭주족마냥 파리 시내를 가로지르는 그의 모습을 당시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억하고 있었다. 익살스럽고 쾌활한 이면에 폭발할 듯한 영민함으로 장래가 촉망 받는 젊은이였지만 전쟁이라는 시대적 상황은 피할 수 없었다. 이미 결혼한 세 아이의 아버지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마자 곧바로 징병되어 모터 사이클리스트로 전선에 배치된다. 오토바이를 타고 정찰을 하거나 연락을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틈틈이 품 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어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에게 애틋한 사연을 적어 보내곤 했다.
“아, 언제나 집을 나설 때는 늘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아이들을 꼭 안아 주세요.(중략) 참 좋으신 주님께서 돌보아 주시니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고, 또 우리나라도 이 어려운 시기를 넘기게 되겠지요.”
왜, 우리들은 힘들 때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가? 지나간 세월 행복했을 때 흘려버린 소중한 것들을 힘든 순간에만 깨닫는 것일까? 1940년 6월 20일, 독일 정찰대와 맞닥뜨려 서로 총알을 주고받는 가운데 주앙 알랭은 스물아홉이라는 지극히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생전에 ‘연도’라는 제목의 작품을 쓴 적이 있는데, 그 악보의 첫머리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영혼이 고통 속에서 주님의 자비를 청할 때, 너무나 힘들어서 어떻게 기도해야 될지 생각할 수조차 없을 지경이 되면 그저 북받치는 마음으로 같은 말만 미친 듯이 되풀이하게 된다. 우리가 머리로 하는 생각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지만 믿음만은 우리를 하늘나라에 이끈다.”
“기도는 원하는 것을 입으로만 비는 것이 아니야. 기도는 길 위에 놓인 것을 모두 뒤엎을 정도로 확하고 불어 닥치는 돌풍과도 같은 것이야. 일종의 강한 집념이라고! 사람들과 주님의 귀에 기도가 들리도록 해야지…. 한 음 한 음 선명하게, 네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르게 몰아쳐!”

* 약력 : 프랑스 이릿니 음악원, 리옹 가톨릭 대학 즉흥연주 교수 역임. 리옹 세례자요한 대성당 오르가니스트 역임. 프랑스 리옹 국립고등음악원 오르간 및 즉흥연주, 리옹 음악원 작곡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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