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볼리비아 선교이야기
세례를 앞두고 떠난 아기, 케빈


서준영(요한)|신부, 볼리비아 선교사목

저희 본당은 도시와 밀림이 함께 공존한답니다. 물론 본당은 저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도시의 변두리에 있지만요, 본당에서 자동차로 5분만 나가면 밀림지역이랍니다. 그래서 저희는 도시사목과 밀림사목을 동시에 하지요. 저희 본당의 밀림 공동체는 모두 10개입니다. 원래는 11개가 있었는데 하나가 없어졌어요. 가까운 공동체는 자동차로 약 6Km 떨어진 곳에 있지만 먼 공동체는 약 80Km가 떨어져 있어요. 각 공동체마다 자기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브레챠 뜨레스 이 메디아(Brecha 3 y 1/2) 라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작년에 있었던 참 마음 아픈 일입니다. 이 공동체는 세 번째 주일 오전 10시에 미사를 드리는데, 한번은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유모차를 끌고 오셨더랬어요. 지나가면서 언뜻 보니까 그 유모차 안에는 아주 큰 아기가 누워 있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저렇게 큰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서 다니다니….’하고는 공소 안으로 들어가서 미사 준비를 했습니다.

 

미사 준비를 마치고 일찍 온 아이들이랑 장난치면서 놀다가 너무 더워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밖에는 그 아기의 엄마랑 저랑 같이 미사를 다니는 콜롬비아 수녀님(Hermana Sara Maria)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그런데 두 사람의 표정이 굉장히 어두웠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그쪽으로 걸어갔지요. 제가 다가가자 수녀님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아기가 지금 굉장히 아픈데 엄마는 지금 애가 세례를 받기를 원한다고요. 유모차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자세히 아기를 보니까 보통 애들하고 좀 달라보였어요. 억지로 눈을 뜨려고 노력을 하는데 아기의 눈은 계속 그냥 스르르 내려오기만 했어요. 그리고 아주 고통스러운지 얼굴을 자꾸 찡그렸습니다. 더 자세히 보니까 아기의 머리가 굉장히 컸어요. 어른보다 더 큰 머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기 엄마에게 아기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요.

 

아기 엄마가 저에게 그동안 있었던 아기의 사정에 대해서 설명을 해줬습니다. 자기는 이 공동체의 초등학교 교사이고, 아기의 이름은 케빈(Kebin)으로 생후 1년이 조금 넘는다고요. 그리고 태어나서 석 달째부터 아기가 젖도 잘 안 빨고 자꾸 보채기만 했다고요. 그래서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병에 걸렸다고 하더래요. 병명도 저에게 말해줬는데 너무 어려워서 잊어버렸습니다. 아주 희귀병인데 아기의 머리가 자꾸 커지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그냥 둘 수가 없어서 빚을 내어서 수술까지 시켰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대요. 이제 병원에서도 포기를 해서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왔다면서 죽기 전에 세례를 받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순간 저는 망설였습니다. 볼리비아의 관습에는 이런 게 있거든요. 대부분이 유아세례를 받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 교리를 배울 기회를 갖질 못한답니다. 물론 첫영성체 때와 견진성사 때 교리를 받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그렇듯이 제대로 된 교리를 배우지는 못하거든요. 그래서 많은 볼리비아 사람들은 왜 신앙을 가져야 하는지, 왜 성당에 나와야 하는지, 왜 기도를 해야 하는지, 성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그냥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하지요. 그래서 결혼 후 자신의 아기가 세례를 받을 때 부모들에게 교리를 배우게 합니다. 보통 한달 동안 4~8회 정도 교리를 듣게 하는데, 시골도 마찬가지에요. 이 시기가 거의 유일한 성인 재교육의 시기랍니다. 그렇지만 아기가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는 간단한 믿을 교리만 설명한 후 부모들의 교육 없이 바로 세례를 주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지금 이 아기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하는지 아니면 한달 동안 부모에게 교리를 배우도록 해야 하는지 망설이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망설이면서 아기를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아기의 엄마에게 “요즘은 젖을 잘 빠나요?”하고 물어봤어요. 아기의 엄마가 “많이 빨지는 않지만 그래도 배고프면 젖을 찾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결심했어요. 한달 동안 부모에게 교리를 배우도록 하고 다음달 미사 때 유아세례를 주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는 공소 회장(animador)을 불렀어요. 그리고 말했습니다. “케빈의 엄마에게 네 차례에 걸쳐서 교리를 가르치십시오.”

 

이곳 공소 회장님은 미국 사람입니다. 이곳에 선교사로 왔다가 볼리비아가 너무 좋아서 결혼을 하고 그냥 이곳에 눌러앉은 사람이지요. 그래서 가톨릭 교리를 제대로, 상당히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공소에서는 제가 직접 교리를 가르치지 않고 이 분이 대신 교리를 가르칩니다. 회장님이 그러겠노라고 대답을 하셨어요. 다시 한번 케빈의 엄마에게 교리를 잘 들으라고 다짐을 받고 비상세례를 주는 법을 설명해줬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임종대세’이지요. 만약 한달 안에 케빈에게 이상이 생기면 회장님을 찾지 말고 바로 비상세례를 주라고 말해줬습니다. 그리고 미사를 마치고 다음 공소로 이동을 했어요.

 

그리고 한달이 흘렀습니다. 이제 사흘 후면 다시 브레챠 뜨레스 이 메디아 공소에 들어가게 되지요. 그런데 오전에 장례 예식을 치러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어젯밤에 죽은 아기인데 오늘 오후에 매장할 계획이니 2시쯤 와서 예식을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겠노라고 대답을 하고 1시 30분쯤 집을 나섰습니다. 집을 잘 찾을 수가 없어서 좀 헤매었어요. 그러다가 결국 집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먼저 아기의 엄마와 아빠를 만나서 위로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 아기의 엄마가 왠지 좀 낯이 익었습니다. ‘어디서 봤더라? 이 집은 처음인데, 활동은 안하고 그냥 미사만 참석하는 사람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죽은 아기를 봤습니다. 볼리비아의 장례식은 서양식으로 치러지기 때문에 죽은 사람을 관에 넣고 얼굴 부분을 유리로 막아둡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죽은 사람의 마지막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해주지요. 아기의 얼굴 역시 무척 낯이 익었습니다.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보긴 본 얼굴인데….’ 그러면서 아기의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아기가 왜 죽었지요?”, “병에 걸려서 죽었어요.”, “무슨 병이었는데요?”, “……….”, “그게 어떤 병인데요?”, “머리가 커지는 병이요.”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러면서 관에 적힌 아기의 이름을 보았어요. 관에는 금박으로 ‘Kebin Monta a Vaca’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다시 아기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랬습니다. 한달 전에 브레챠 뜨레스 이 메디아 공소에서 만난 그 아기였고, 그 엄마였습니다. 그렇지만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사흘 후면 세례를 받을 수 있는데…. “혹시 브레챠 뜨레스 이 메디아의 선생님 아니십니까?”하고 물어봤습니다. 아기의 엄마는 맞다고 그랬어요. 다시 물어봤습니다. “이번 주일에 세례를 받기로 했지요?”역시 맞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어젯밤에 아기가 죽어서 오늘 아침에 시내에 있는 친척 집으로 아기를 옮겨왔다는 것입니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사흘만 더 참았더라면 세례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전에 제가 가르쳐 준 비상세례를 베풀었습니까?” 하고 다시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그 엄마의 대답은 절망적이었습니다. 한달 후에 세례를 준다는 말에 비상세례를 주는 방법을 기억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른들의 잘못된 판단과 무책임한 행동으로 세례를 받을 수 있었던 아기가 세례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날 종일 마음이 아팠고, 우울했습니다.

 

그리고 결심을 했답니다. 앞으로 다시는 세례를 원하는 아픈 아기의 엄마에게 한달 동안 교리를 받으라고 말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한 철없는 신부의 서툰 판단으로 다시는 세례를 받지 않고 저 세상으로 가는 아기가 나오도록 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