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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내 생애 감히 이런 날이…


정윤조(세실리아)|만촌1동성당

 사실 나는 남편과 사귀면서도 우리가 정말로 결혼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아주 틀림이 없는 사람이어서 내가 그의 사람이 되기로 결심할 당시 비신자였던 그를 세례 받게 하여 성당에서 혼인성사를 한 지 벌써 18년…. 세월의 무상함에 한 번씩은 고개가 절로 숙연해짐을 의식하곤 하지만 무엇보다 내겐 민간신앙이 강했던 시부모님의 천주교 입교를 위한 끊임없는 기도가 가장 큰 숙제였다.

평소 지병이 있으셨던 시아버님께서 병이 악화되어 몸져눕게 되신 지 반 년이 지날 무렵, 임종을 준비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한마디가 가슴을 저리게 하였다. 그 순간에도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나를 시아버님께서 부르시더니 당신의 장례를 천주교식으로 해 줄 수 있겠느냐고 어렵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렇게 해드리겠다고 대답함과 동시에 급히 신부님께 대세를 부탁드렸고 시아버님께서는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받으시고 편안히 눈을 감으셨다. 시아버님과의 약속대로 모든 장례절차를 천주교식으로 준비하여 진행하였고, 연도를 다녀가신 낯선 신자들의 감사함에 작은 마음의 동요가 있으셨던 시어머님을 설득하여 예비신자 교리반에 입교하시도록 했다.

평소 워낙 금실이 좋으셨던 두 분이라 종교가 같아야 저 세상에 가서도 시아버님을 만날 수 있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씀드렸더니 시어머님께서는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시고 흔쾌히 교리반에 등록하셨다. 나는 연이어 시아버님을 위한 백일미사를 넣었고 시어머님께서는 미사를 통해서라도 시아버님을 만나시고자 백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성당에 나가셨다. 그러면서 평소 효부로 소문나 있던 손위 동서인 형님도 시어머님을 모시고 성당에 꼬박꼬박 나가게 되었다. 시아주버님, 형님, 시누이, 시매부, 조카들까지 총 9명의 시댁 식구들을 모두 입교시키고 세례를 받기까지 돌보며, 날마다 그들을 위해 행복한 기도를 바치는 즐거운 삶의 연속이었다.

시댁 식구들이 세례 받은 후에는 이 끈을 놓지 않고 바로 각 본당의 액션단체 활동까지 연결시켜 나의 뜻대로, 아니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코자 이들을 위한 감사의 미사까지 넣었다. 현재 시어머님께서는 본당의 레지오와 노인대학 활동으로 또 다른 삶을 살고 계시며, 시아주버님과 형님은 레지오와 성경학교에 다니고 계신다. 또 시누이는 자모회, 조카는 복사단 활동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이렇게 저마다 성가정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볼 때, 내가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가장 잘한 일이 시댁 식구들에게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하여 새로운 삶을 알게 해 준 이 일이 아닌가 싶다. 이 또한 물론 하느님의 뜻이겠지만 말이다.

평생 숙원이던 시댁 식구들의 전교를 끝내고, 나는 이제 냉담 중인 친정식구들의 회두를 위해 또다시 간절한 마음으로 두 손 모아 기도할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이들 또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날이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날마다 무엇을 달라고 청하는 기복신앙의 조류에 휩쓸려가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한심해 하고 있을 즈음, 내 삶에 큰 변화가 오게 된 그날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고, 감사한 마음 또한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 안에서의 성장이야말로 가장 신비로운 은사요, 미사를 통한 치유가 가장 큰 치유임을 아직 모르는 많은 이들을 위해 나는 또다시 전교에 힘쓸 것이다.

올라가려 하기보다 내려가고, 커지려 하기보다 작아지려 하는 게 참 신앙인라고 했던가? 소리내기보다 침묵하며, 화려하기보다 단순하게 되려 함 또한 참 신앙인이라고 했던가? 풍요와 성장, 부요와 충족을 얻으려 하기보다 가난과 비움을 갈구해야 한다. 지금 우리 시대의 비극은 풍요와 성장만이 최고라는 그 뿌리 깊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유심히 묵상하다 보면 모든 흐름과 행동은 텅 빔과 모자람 때문에 가능함을 느끼게 된다. 또한 참 신앙으로 살아가고자 함은 인간을 고민하기보다 사랑함일 것이다. 과연 우리는 영혼육신의 온갖 세상 장식을 떼고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목에 걸고, 세상 풍요에 젖어들지 않게 살아 갈 수 있을까? 흐름에 압도당하지 않은 이가 많을수록 그들 때문에 세상이 조금씩 변화될 것인데….

오늘의 나는 힘들다 여겨질 때면 어김없이 춥고 초라한 마구간에서의 탄생과 매 맞으시고 못 박히신 육신의 고통을 견디며 또한 사랑하는 이로부터의 배신으로 서럽고 쓰라리셨던 그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망설이지 않고 힘에 겨워도 어깨에 짊어지고 일어서면 당신의 짐이라 여기시고 그 어떤 무게도 감지하셨던 나의 하느님! 감히 제가 뭐라고 이토록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앞으로도 저는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당신께 받은 것을 또 다른 이들에게 돌려 줄 것이며, 매 순간순간을 기도의 계단으로 활용하겠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