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공동체 복음나누기 자료제공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053) 250-3082 cafe. daum.net/biap
10월 6일, 연중 제27주일, 루카 17,5-10.
5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7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8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7장 5절-10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본문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어디서 나누겠습니까? 각 부분의 주제를 붙여보세요.
- 사도들은 주님께 무엇을 청합니까?(5절) 그리고 주님은 그것을 주셨다고 생각합니까?
- 예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어느 만큼이라고 하십니까?(6절)
-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들에서 돌아와 식탁에서 시중을 들고나서 가져야 하는 자세는 어떤 자세입니까?(10절)
- 루카복음 12장 37절에서 깨어 기다린 종을 대하는 주인의 모습과 본문의 주인의 모습을 묵상해봅시다.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우리가 하느님께 거저 받은 은총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내가 무엇을 해서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거저 주셨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은총을 이웃과 나눌 수 있는 작은 애덕을 한 가지 결심하고 실천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61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연중 제27주일 복음묵상 : 사공병도(베드로)|동촌성당 보좌신부
우리는 오늘 복음 속 비유에서 어떤 주인과 종을 만납니다. 주인은 자신을 위해 온종일 수고하다 돌아온 종에게 그 어떠한 성의 표현도 없이 자신의 식사시중을 들게 합니다. 이렇듯 또다시 고된 일거리를 쥐어 주는 주인의 모습이 참으로 얄밉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한 것은 주인의 태도가 아니라 종의 마음입니다. 만약 우리들의 바람대로 주인이 종의 수고로움을 치하하며 나와 함께 식탁에 앉자고 했다면 과연 종은 행복했을까요? 확률적으로 본다면 ‘드디어 주인이 내 수고로움을 알아 주는구나.’하며 기뻐했을 것이 다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삶의 깊이가 깊어 갈수록, 무릇 인간이란 배부르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어 하는 간사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니 주인의 식탁에 초대된 종도 처음 한두 번은 기쁘겠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주인의 배려에 무덤덤해지고, 급기야 식사 한 끼로 자신의 수고로움을 때우려 한다며 또 다른 분노를 터트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식탁에 초대 받은 종의 마음에 행복과 평화가 가득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비록 식탁에 초대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당연한 직무임을 온전히 받아들인 종의 마음이 보다 더 평화롭지는 않을까요?
이처럼 참된 믿음이 자신 주변의 조건을 통해 더해지지 않듯이 참된 평화란 자기 주변의 나은 환경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내가 이루어 가야 할 나만의 숙제입니다. 그리고 채우기 위해 더하기 보다는 비우기 위해 덜어낼 때 마음은 더욱 굳건해져 갑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는 가르침을 통해 우리가 헛된 기대와 집착에서 벗어나 비움의 묘리를 체득하도록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이러한 비유는 종을 배려하지 않는 주인들의 실태를 고발하는 것도, 또 주인이신 하느님이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심을 밝히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평화로운 마음을 이루어 일상에서 천국을 미리 앞당겨 살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하지만 비운다는 것은 잃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생의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우리 인간에게 잃는다는 것은 불안함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기에 비운다는 것은 우리에게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있다면,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해주는 그분이 있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 불안함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 대목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입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며, 우리의 낮추인 마음을 낮추 아니 보시고, 우리의 행실대로 공의롭게 갚으실 분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세상의 쓰러질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어쩌면 오늘 비유 속 주인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이며, 종은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이실지도 모릅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빚어지는 요구는 하느님보다 우리 쪽에서 더 많이 이루어지니 말이지요. 세상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그분께서는 어떠한 불평도 없이 우리의 요구에 귀 기울여 주시고 우리에 대한 희망으로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우리의 종임을 자처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위대한 분을 따라 우리가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자기 자신을 비워 주인의 종이 아니라 종의 종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10월 13일, 연중 제28주일, 루카 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7장 11절-19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등장인물과 공간적 배경을 살펴봅시다.
- 나병환자 열 사람은 소리 높여 무어라 외칩니까?(13절)
-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이르시며, 그들이 가는 동안에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14절)
- 병이 나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의 행동을 잘 살펴봅시다.(15절, 16절)
- 그를 구원한 ‘믿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봅시다.(19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는 것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것을 찾아 한 가지씩 실천해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21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연중 제28주일 복음묵상 : 고태권(그레고리오)|동천성당 보좌신부
수능시험을 앞둔 날이 되면 우리나라에서 영험하다고 하는 곳은 사람들의 기도 소리로 웅성입니다. 우리 성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능기원미사를 드리는 날은 처음 보는 수험생과 부모님도 보입니다. 안수도 받고, 미사도 드리고, 또 성당에서 준비한 선물도 하나씩 챙겨 갑니다. 감사미사를 드리러 오라고 그렇게 이야기 하지만, 수능을 친 당일 감사미사에서 수험생과 부모를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습니다. 그래도 그중에 감사미사를 드리러 온 학생과 부모님들은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매달 한 달에 한 번 모여 고3 어머니 기도모임을 했던 가족들입니다. 필요할 때만 찾는 미숙한 사람과 어떠한 처지에도 하느님을 찾는 사람의 성숙함은 분명 삶의 방식까지 다르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10명의 나병환자를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의 경계 마을을 지나 가시면서 치유해 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10명의 환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곧바로 치유된 것이 아니라 사제를 만나러 가는 동안에 나았다고 합니다. 사제를 만나러 가는 중에 나았다는 것이 우리 인생의 신앙 여정과 맞아 떨어집니다. 하느님을 체험한다는 것은 단박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여정 중에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단박에 완성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관심보다 내가 원하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성숙한 어른의 모습이 아니라 미성숙한 아이의 모습을 보입니다.
복음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똑같이 10명의 환자가 나았다는 장면보다 9명은 어디 갔는지 모르지만 1명은 다시 예수님께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다시 돌아온 한 사람의 행동을 ‘그는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라고 자세히 묘사합니다. 다시 돌아온 그는 ‘제가 그동안 얼마나 힘든지 아셨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는데 저는 다시 돌아와 당신께 영광을 드립니다.’라고 하지 않고 자신이 체험한 것을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리는 한 사람은 예수님으로부터 자신의 병의 치유뿐만 아니라 구원까지 받습니다.
원하는 것만 받고 갔던 9명의 사람과 달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갔던 1명의 사람은 원하는 것 이상의 것을 받고 주님 곁을 떠났습니다. 필요한 것만 주신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어떤 처지에도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기원미사를 드리며 그저 필요한 것만 얻으러 오는 수험생과 부모님과 함께 어떠한 처지에서도 하느님을 찾는 수험생과 부모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올해는 감사미사를 드리러 오는 수험생과 부모님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하느님은 우리 머릿속에서 우리 계산속에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 머릿속 너머에 우리가 생각하는 계산 이상을 해 주시는 분임을 믿고 실천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저 바라는 것만 받고 길을 떠난 9명의 얌체 사람이 아닌, 감사를 드리러 온 1명의 성숙한 사람이 되시겠지요? 일어나 우리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여정을 떠납시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10월 20일, 연중 제29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마태 28,16-20.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28장 16절-20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등장인물, 공간을 살펴봅시다.
- 등장인물 중 ‘열한 제자’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 열한 제자의 행동과 마음 상태는 어떻습니까?(17절)
-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신 것은 무엇입니까?(19절, 20절)
- 언제나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어떻게 부릅니까?(마태 1,23)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 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 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우리의 삶으로 이웃에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63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연중 제29주일 복음묵상 : 김요한(세례자요한)|매호성당 보좌신부
“기도 중에 분심이 드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고해성사 중 들려온 어느 분의 고백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여러 번의 언덕을 넘게 되는데 기도 중의 분심도 그 중 하나입니다. 기도 중에 분심이 생기면 집중 할 수 없고 마음을 모으느라 힘이 듭니다. 그러다보면 지쳐서 기도하기가 꺼려지기도 합니다.
오늘은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는 전교주일입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명에 따라 오늘날도 많은 신앙인들이 복음을 전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교라는 것이 나의 뜻대로 되지 않음을 체험합니다. 기도할 때 넘는 ‘분심’이란 언덕처럼 전교할 때도 ‘의심’이란 언덕을 넘게 됩니다.
기도할 때 ‘분심’이란 언덕, 전교할 때의 ‘의심’이란 언덕을 어떻게 하면 넘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을 통해 전해진 사도들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사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마주합니다. 3년 동안 함께 지내고 십자가에 죽으신 스승 예수님이 부활하심을 그들은 마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온전한 믿음이란 어떤 기적이나 나의 의지로 이룰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예수님이 도와주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의심을 가진 그들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자 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기도의 분심도 복음을 전할 때의 의심도 예수님께 의지할 때 물리칠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막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두려워말고 복음을 전하십시오. 다만 내 능력이나 계획이 아니라 주님께 의지하십시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10월 27일, 연중 제30주일, 루카 18,9-14.
9 예수님께서는 또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8장 9절-14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들려주시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9절)
- 비유의 두 등장인물은 누구였습니까?(10절)
- 바리사이의 모습과 세리의 모습을 비교해봅시다. 둘의 위치는어떠하겠습니까?(11절, 13절)
- 바리사이가 한 일들은 어떠합니까?(11절, 12절)
- 세리의 기도는 어떠했습니까?(13절)
- 하느님 앞에 의로운 이는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14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 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내가 의롭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과연 하느님의 기준과도 같은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8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연중 제30주일 복음묵상 : 마성우(세례자요한)|경산성당 보좌신부
오늘 복음말씀에 나오는 꼿꼿한 바리사이처럼, 살다보면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을 더러 만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저도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속으로 욕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 부끄럽게도 이런 사람들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면 처음 한 해 동안은 한티순교성지에서 영성의 해를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저는 제가 굉장히 거룩한 사람인 줄로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팔공산 산중에 격리된 공간에서 빡빡한 일과에 힘들어하는 형제들이 꽤 많았었는데, 저는 그곳이 너무나 행복했고 공부도 잘 되고 기도도 잘 되고 하루하루가 주님의 은총으로 가득하다는 것이 온 마음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복음말씀의 바리사이처럼 “난 좀 특별해.” 하는 생각을 은근히 즐기면서 살았습니다.
주변을 보면 적응을 못해서 힘들어하는 형제들도 있었고, 공부가 힘들어서 괴로워하는 형제들도 많았습니다. 또 다른 형제들 앞에서 잘난 척하며 교만해 보이는 형제들도 보였지만, 정작 제 자신이 교만하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고 오히려 저는 특별한 은총을 받은 덕분에 고상하고 맘 편하게 잘 지낸다고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오늘 꼿꼿이 서서 기도하던 바리사이처럼, 형제들의 고통은 헤아리지 못하고 부족함만 골라 보려고 하면서 그런 이웃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착각 속의 우월감을 즐기던 어리석은 시절이었습니다.
이렇게 교만이라는 죄는 사람의 시선을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나 자신으로 돌려서 점점 영적으로 눈 뜬 봉사가 되어 버리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느님으로부터도 완전히 눈을 돌리게 만들고 우리 영혼을 말라죽게 만들어서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영적인 암입니다.
이 교만이라는 죄의 위력을 말하는 오늘 복음말씀의 구도는 명료합니다. 말씀에 나오는 한 사람은 교만하고 다른 한 사람은 겸손합니다. 한 사람은 계명을 지키며 반듯하게 살았지만 이웃을 판단하고 비교하며 자기를 드높이는 교만으로 죄인이 되어 버렸고, 다른 한 사람은 성전에서 고개도 못 들 정도로 죄가 많았지만 하느님 앞에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겸손함 때문에 의롭게 되어 돌아갔습니다.
악마의 최종 목적은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어 하느님께 대들게 하는 것입니다. 악마는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오늘 복음의 꼿꼿했던 바리사이처럼 우리가 순결하고 절제하고 계명을 꼬박꼬박 지키고 단식하고 십일조를 내면서 사는 것은 얼마든지 봐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암에 걸리게 할 수만 있다면 감기쯤은 얼마든지 낫게 해 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교만은 바로 영적인 암이고 마귀는 우리가 이 병에 걸려 같이 영원한 어둠속에서 고통 받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
우리가 이런 교만에서 벗어나 겸손으로 가는 첫 걸음은 바로 내 배우자나 자식, 혹은 동네 이웃이 아니라 바로 내가 교만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첫 걸음 없이는 아무도 겸손하게 될 수 없습니다. 하루 빨리, 그리고 지혜롭게 이 첫 걸음을 시작하시고, 우리의 교만함에 브레이크를 걸고 참된 겸손함으로 주님께 모든 희망을 걸고 달려가는 슬기로운 자녀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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