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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음으로 세상보기
다문화 시대


전재천(암브로시오)|제4대리구장, 주교대리 신부

  150년 전인 1863년, 배고픈 농민들이 생존을 위해 고국을 떠나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영토인 연해주로 이주한 것이 우리 민족 이민사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이민은 시대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이유로 계속 이어져 현재 우리 재외동포는 전 세계 175개국에 정착해 있고 그 수는 726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남·북한 인구를 모두 합쳐도 10명 중 1명이 고국을 떠나 타국생활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보다 이민역사가 수천 년 앞서는 유다인들이 100여개국에 나가 있고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계가 130여개국에 나가 있다고 하니 현재 우리 한민족이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가장 넓게 퍼진 민족이 되었습니다.(중앙일보 9월 30일자 참조)

이들이 고국을 떠나 모든 것이 생소한 나라에서 정착하기까지 겪어야 했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들을 직접 아니더라도 각종 매체나 매스컴을 통해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쉽게 정착한 사람들도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낯선 문화, 그리고 결코 쉽지 않은 현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흘려야 했던 눈물을 보며 우리 역시 눈물짓기도 했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봅니다. 우리나라에도 현재 많은 다문화가정과 이주노동자들이 와 있습니다. 이들은 언어와 풍습, 각종 사회제도가 생소한 우리나라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향을 떠난 외로움은 차치하더라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쉽게 무시와 차별을 당하고 불이익을 겪는 딱한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이주노동자들이 들어 온 지 적잖은 시간이 지났고 그동안 많은 점에서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인권침해 같은 사례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이들 대다수가 우리 사회 하부조직의 부품처럼 인식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다문화 사회가 되면서 초래되는 부정적인 요소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우리나라 곳곳에서 이바지하는 긍정적인 요소들이 훨씬 큰데도 여전히 다문화 사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고 그만큼 이들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도 여전합니다. 지구촌에서 가장 넓게 퍼져 사는 우리 민족이 정작 우리나라에 와 있는 이주민들에게 이렇게 폐쇄적이라면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입니까?

 

 

지금 우리는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온 인류가 한 가족을 이루는 지구촌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존엄한 존재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호소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우리 모두가 좀 더 전향적이고 열린 마음이 필요할 때입니다. 인종과 국적을 초월해서 이주민들도 우리와 똑같은 존엄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교구에서도 다문화 가정이나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사목에 많은 관심을 갖고 다문화 전담시설도 세우고 또 담당 사제들이 대구, 포항, 구미, 경주 등지에서 적극적으로 사목하고 있습니다만 참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의 열린 마음입니다. 이미 우리의 이웃으로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들에게 마음을 열고 우리의 형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건강하고 성숙한 다문화 시대를 만들어 가는데 우리 신앙인 모두가 좀 더 관심을 갖고 앞장섰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