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심에 자리한 경상감영 공원. 시민들에게는 ‘중앙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비나 눈이 오지 않는 한 쉴 곳을 찾아나선 어르신들로 북적대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조선시대 때 경상감영이 있던 자리로 죄인들에 대한 재판도 이루어졌다. 지금은 문화 유적지로서의 가치도 인정받아 보존과 함께 공원으로도 꾸며져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현재 우리 교구에서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는 대구 순교자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이 곳 경삼감영으로 끌려와 심문과 고문을 받았으며, 끝내 이곳과 관덕정 등에서 순교하셨기에 신자인 우리에게는 그분들을 기억할 수 있는 소중한 장소이기도 하다.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이하여 대리구별로 행사가 마련되고 있는 가운데 3대리구(대구 남·서부 지역) 소속 본당들이 참여하고 있는 ‘대구 순교자 현장 체험 순례’에 동행해 보았다. 관덕정 순교 기념관에서 진행하고 있는‘대구 순교자 현장 체험 순례’ 프로그램은 먼 옛날 우리 신앙선조들이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경상감영으로 끌려와 고문과 심문을 받던 과정 그리고 옛 옥터인 대안성당에서의 옥 생활 재현, 이어서 관덕정에서의 순교 장면 등을 연극을 통해 신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그날그날 순례할 본당들이 경삼감영 공원에서 대안성당, 대안성당에서 관덕정으로 도보로 이동하며 순교극을 펼쳤다.
마침 경상감영 공원을 찾은 9월의 어느 날, 대덕성당 신자 80여 명이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이어서 북소리와 함께‘순교자 찬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조선시대 경상감사의 복장을 한 사람과 형리들 그리고 머리를 풀어헤친 대구 순교자 ‘김희성 프란치스코’가 등장했다. 역할을 맡은 대덕성당 신자들은 그동안 순교극 연습을 위해 6-7번 모였다고 한다. 순교자 김희성 프란치스코 역할을 맡은 임복생(석두루가) 씨는 “순교자 역할을 해봄으로써 그분들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게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사히 잘 끝났으면 좋겠습니다.”라며 각오를 내비쳤다.
곧 이어 순교극이 시작되고 경상감사가 김희성 프란치스코에게 묻는다. “천주교 신앙을 지닌 다른 사람의 이름을 말하든지, 믿지 않겠노라고 한 마디만 하면 살려주겠다.”한다. 그러나 김희성 프란치스코는 말이 없다. 결국 곤장을 수차례 맞고 옥으로 끌려간다. 신자들 모두 이들 행렬을 따라 옛 옥터인 대안성당으로 향했다. 북을 치며 신자들이 걸어서 이동하는데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대안성당에서 신앙선조들의 ‘옥 생활’ 재현이 이어졌다. 우리 신앙 선조들은 옥에 있으면서도 서로 먹을 것을 나누며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여 좋은 표양을 보였다. 심지어 배교자이자 밀고자인 ‘전지수’에게까지 주먹밥을 나누며 아량을 베푼다. 옥 생활 재현이 끝나자 옛 죄인들의 처형장인 관덕정으로 이동했다. 옛 선조들의 분장에다 북을 치며 도심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만난 시민들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천주교 대구 순교자 현장 체험 순례’라는 손팻말을 보고서 종교행사라는 것을 알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순교자들이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지켜온 믿음이기에 우리 신자들 또한 쑥스러움보다는 한 발 한 발 힘있게 내딛으며 손으로는 쉴새없이 묵주알을 만진다.
관덕정에 도착하자 순교자 김희성은 눈을 감은 채 의연하게 앉는다. 그 꿋꿋하고 단호한 모습에서 실제로 본 적도 없는 순교자들의 영상이 겹쳐지며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아마, 저런 모습이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자 눈가가 뜨거워졌다. 망나니의 칼이 목에 닿기 직전 순교자는 “예수 마리아.”를 외치고는 끝내 숨을 거두고, 순교극은 끝이 났다. 1시간 30분 정도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순교자에 대한 강의를 몇 번 듣는 것보다 더 소중한 ‘체험’을 얻은 시간이었다.
망나니와 배교자 ‘전지수’로 1인 2역을 했던 이상호(토마스) 씨에게 어떻게 이런 역할을 하게 되었냐고 묻자, “아무도 이런 역할을 안 맡을려고 하니까 제가 했지요.”라며 웃는다. 이런 것이 바로 작은 순교가 아닐까? 관덕정에서의 순교극을 끝으로 현장 체험은 끝이 나고 이어서 소성당에서 영남교회사 연구소 마백락(클레멘스) 부소장의 ‘김희성 프란치스코’의 삶과 영성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다. 강의 후에는 미사도 봉헌하였다.
대덕성당 신자 구영순(힐티갈다) 씨는 “많이 슬프네요. 하느님을 지극히 믿어서 목숨까지 바친 순교자들을 정말로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라며 체험 소감을 밝혔다. 윤자경(베로니카) 씨 또한 “순교자들 덕분에 우리는 너무 편하고 좋은 조건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며 소감을 이야기했다.
흥미로운 연극을 하나 본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순례하며 보았던 순교극. 이렇게 순교극까지 해보는 것은 말 그대로 ‘체험’을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순교자들의 깨어있는 정신과 숭고한 믿음에 고개숙이고, 몸소 체험한 감정들을 기억하여 나의 나약한 신앙을 되돌아보고 다짐하기 위함일 터.
교구 설정 100주년을 준비하는 우리 교구민들은 비단 9월 순교자 성월뿐만 아니라 꾸준히 우리 지역 신앙선조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삶과 영성에 관심을 갖고 기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 우리 지역에도 본받고 존경해야 할 많은 신앙선조들이 있음에 감사드리며, 시복시성 추진대상으로 선정된 대구 순교자들이 성인으로 칭송되기를 우리 모두는 바라고 또 기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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