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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가슴에 담아온 네팔 아이


박경선(안젤라)|대곡성당, 동화작가, 칼럼리스트

 

 북유럽 6개국 문화탐방을 다녀온 뒤 곧이어 해외로 나가는 짐을 다시 쌌다. 굿네이버스(good neighbors, 한국 국적의 국제구호개발 NGO) 전문위원이라 네팔에 위치한 글로벌 시민학교에 봉사 활동을 하러 가기 위해서였다. 덴마크에서 꼭 만나고 싶었던 동화작가 안데르센과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도 만나보고 왔지만 돌아와서도 마음 깊이 자리 잡은 사람은 네팔 아이였다. 네팔 아이, 그는 네팔의 두메산골에 있는 초등학교 중 세 번째 학교에 갔을 때 만난 아이다. 우리 굿네이버스 회원들이 할 일은 교실에 페인트칠을 해주고 아이들과 운동회 등 예체능 수업을 함께 하며 결연 아동의 집을 방문하는 등의 소소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서 보니 도와주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네팔은 우리나라의 1960년대의 가난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나라였다. 결연 아동의 집을 방문해서 보니 움막 같은 흙집에 책상이나 책은 아예 없었다. 옷가지도 눈에 띄지 않고 세간도 별로 없었다. 학교는 산길을 두 시간씩 걸어가야 있고, 학교라고 해도 교재나 교구는 전혀 없고 긴 판자를 얹어놓은 책상에 세 명씩 걸터앉는 긴 의자가 전부였다. 그래도 교복을 입고 교실에 앉아있는 아이들은 행복한 편이었다.

교실에서 우리나라 딱지 만들기와 요술거울 만들기를 설명하다가 창문으로 눈만 밀어 넣고 지켜보는 아이랑 눈이 마주쳤다. 땟물이 좔좔 흐르는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까만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아이! 우리나라는 의무교육이라서 초등학교는 모두가 다니는데 저 아이는 얼마나 학교에 다니고 싶으면 창밖에서 또래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까? 교복은 얼마나 입고 싶을까? 이 자리에는 또 얼마나 앉고 싶을까? 어쩌면 밖에서 설명을 훔쳐 들으며 혼자 더 열심히 공부할지도 모른다. 그래, 수업을 끝내고 나가 저 아이를 붙잡고 스티브 잡스가 외친 “Be hungry! 배고파야 성공한다.”는 이야기로 위로를 해주자!

내 몸은 교실 안 아이들과 있었지만 마음은 온통 교실 밖의 그 한 아이에게 가 있었다. 드디어 교실 수업을 끝내고 밖으로 급히 나갔다. 하지만 아이는 벌써 가버리고 없었다. 그 아이를 찾아내어 학교에 다니도록 후원해준다면 양 한 마리를 잃었다가 찾은 기쁨이겠다. 아흔 아홉 마리를 두고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하느님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어쩌면 그 아이는 생계를 책임져야 할 형편이라서 훔쳐 듣는 공부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 어깨가 짓뭉개지도록 짐을 나르거나 망치로 돌 깨는 작업을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끝내 그 아이를 가슴에 담아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뿐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이 지구촌에는 하루 1달러로 생활하고 있는 8억 5천여 명의 어린이가 있다. 모든 종자는 흙에 떨어져 수분을 10%만 머금고 있으면 싹틀 수 있다는데, 이런 아이들을 살려줄 1%의 후원이라도 모이면 그들을 살릴 수 있는 싹틔움이 되겠다. 나아가 10%의 후원이라면 그들에게 교육 혜택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도해본다.

그리고 오늘 밤, 꿈속에서라도 그 아이를 만나면 김수환 추기경과 정채봉 작가가 나눈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사람에게 고통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몸만 자라고 마음은 자라지 않겠지요?” 그러자 추기경께서 말씀하셨다. “그래요. 고통 속에도 기쁨이 있다고 믿으며 이겨내는 것이 참 인간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