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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정 선생의 교실이야기 2
행복학교


이유정(데레사)|계산성당, 대구가톨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무학고등학교

 그렇게 강렬한 힘으로 우리를 제압하던 여름도 어쩔 수 없이 청량한 공기를 머금은 부드러운 가을 앞에서 꼬리를 감추던 10월의 어느 좋은 날! 인터넷을 켠 순간 제 눈을 끌어당기는 기사 하나를 발견하고 클릭을 했습니다. 눈물의 졸업식이 아니라 ‘눈물의 입학식’이란 이 글은 사진 한 장과 함께였습니다. 대구 교육청에서 마련해 준 “내일학교(전국 첫 중학 문해학교, 중학 인정학교)” 입학식에서 행복과 그동안의 한(恨)이 녹아 그 할머니들의 눈에 눈물을 만들었습니다. 늦깎이 공부지만 이제 이 분들에겐 아침에 등교할 수 있는 학교가 생긴 것입니다.

학생들이면 대부분이 공감하는 그 지긋지긋한 시험도, 숙제도 아마 이 분들에겐 정말 경험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분들이 다니는 학교가 바로 “행복학교” 일 거란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우리들의 부모님 세대들의 대부분은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공부’에 대한 심한 갈증을 갖고 있습니다. 가방 들고 학교에 가는 몇몇의 친구들을 나물 소쿠리를 끼고 먼발치에서 발돋움하며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그들에게 ‘학교’는 꿈속에서나 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일흔,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내일”이란 희망을 가지나 봅니다.

 요즘 학교나 교육은 연일 매스컴을 뜨겁게 달굽니다.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이 부각되고, 많은 이들로부터 질타도 받습니다. 이 와중에도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일산에서 행복학교 박람회를 열었습니다. 2년 전에도 뽑혔던 우리 학교는 이번에도 행복학교에 선정되어 박람회에 참가했습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정 속에서 교장, 교감 선생님과 10여 명이 넘는 교사들이 따로 시간을 내어 여러 차례 회의를 하고, 늦은 밤 자료를 정리하며 숨 가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저는 우리학교에서 하고 있는 여러 행사들을 소개하는 리플릿을 만드는 일을 맡았습니다. “꿈, 끼, 깡, 꾀, 끈, 꼴”이 여섯 마당의 활동을 정리하는 동안 저는 계속 제 자신에게 이런 반문을 했습니다. ‘정말 우리 학생들이 행복할까?’

그래서 하루는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물어봤습니다. “행복하니?” 학생들은 물 만난 고기떼 마냥 그동안 자신들이 갖고 있는 불만들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한 녀석이 던진 “두발 정리 짜증나는데요.”라는 말이 시발점이 되어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듯 마음속에 갖고 있던 볼멘소리들을 내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야간자율학습은 왜 자율이 아니라 다 해야 해요?”, “학교 보충수업 말고 다른 거 하러 학원가면 왜 안 되는 거죠?”, “숙제 그만 내요. 아! 정말 짜증나.”, “기숙사 아침자습 하지 마요. 정말 힘들어 죽겠어.” 등등.

결국 저는 큰소리로 아이들 입을 막았습니다. 수업을 끝내고 교무실로 돌아온 저는 솔직히 속도 상하고 화도 났습니다. 사실 우리학교는 교사들보다 학생들을 위해 많은 학교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교사들에겐 정말 빡빡한 학교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새벽 6시 30분쯤이면 여러 명의 교사들이 기숙사 아침자습을 위해 등교합니다. 학교 식당에서 학생과 같이 매일 밥을 먹어가며, 아침 기숙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교사들의 노고는 이 녀석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걸까? 사교육을 없애겠다고, 공교육을 살리겠다고 학생이 교사와 공부할 과목을 선택하는 선택형 방과 후 수업 때문에 ‘폐강’이라는 상처를 경험하는 교사들의 아픔은 저 아이들은 왜 모르지? 등등의 의문으로 제 속을 갉아내던 저는 도저히 그대로의 마음으로는 작업을 진행할 수가 없어 그날 하루는 쉬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의 폭풍우를 우리 주님은 아시기라도 하셨는지 늦은 밤 제 전화기에 한 남자를 연결시켜줬습니다. 지금은 외국인 계열 회사에 취업해 저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며, 너무 오랫동안 전화를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우리 졸업생은 마치 제가 묻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은 우리 학교 학생인 것이 자랑스럽고, 다시 3학년 때로 돌아가 야간자습도 해보고, 수업도 하고 싶다며 “선생님, 전 무학에 다닌 게 행운입니다. 선생님 반이 된 것도 정말 감사해요.”라며, 조만간 비싼 밥 한번 사 주러 온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늦은 밤! 저는 한참 동안 방에서 소리 내어 울어버렸습니다. 오후 내내 ‘내가 이러는 게 이 아이들에겐 도움이 되는게 맞을까?’를 반문하던 제게 이 졸업생의 한 마디는 생명수와도 같았으며, 마치 지나온 시간을 다 보상받은 듯한 위로였습니다. 마음을 진정한 저는 우리 반 학급일기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밝아오는 줄도 몰랐습니다. 며칠 전 우리 반 일기 끝자락에 “선생님의 노력이 슬퍼질 때도 많지만, 그래도 우리들이 나중에 꼭 보답하러 올 거에요. 힘내세요.”라며 저를 위로해주는 우리 반 아이의 문구를 읽고 또 읽으며, 저는 밀려드는 ‘행복’으로 제 삶이 충만해짐을 맛봤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여러 가지 활동들이 학생들에게 그리 행복하지는 않겠지요. 그렇다고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그들의 미래는 제쳐두고 현재에만 그들 소원을 들어주며 즐겁게 보낼 수는 없지요. 이 행사를 끝내며 저는 학생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교사가 참 많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교는 학생도 행복해야 하고 교사도 행복해야 하는 곳이며, 사랑이 끌어안고 가야 하는 것이 고통이라는 ‘쌍둥이’라는 시(詩)처럼 힘겨움도 행복의 한 면임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이 미래에 깨닫게 되는 행복도 중요하지만, 지금 맛볼 수 있는 행복을 위해 더 고민해야겠다는 자기반성도 해 봤습니다. 이렇게 마음 정리를 하며 밤을 지새운 후 맞는 아침 해는 더욱 맑고 환하게 제 품으로 들어왔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교사의 기도’는 “날려 보내기 위해 새들을 키웁니다.”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 시인처럼 아이들이 다 날아가 버린 텅 빈 자리에 또 다른 아이들을 채우며, 또 그렇게 열심히 살아 보렵니다. 〈아이들이 있음으로 해서 저희가 있을 수 있듯이 / 저희가 있음으로 해서 / 아이들이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게 해 주소서. / 힘차게 나는 날갯짓을 가르치고 / 세상을 올곧게 보는 눈을 갖게 하고 / 이윽고 그들이 하늘 너머 날아가고 난 뒤 /오래도록 비어있는 풍경을 바라보다 / 그 풍경을 지우고 다시 채우는 일로 / 평생을 살고 싶습니다.〉- 도종환, ‘교사의 기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