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동체 복음나누기 자료제공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053) 250-3082 cafe. daum.net/biap
11월 3일(연중 제31주일) : 루카 19,1-10.
1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9장 1절-10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등장인물과 장소와 공간을 살펴봅시다.
- 예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1절)
- 자캐오는 어떤 사람입니까?(2절) 그는 무엇을 원하며 그것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들은 무엇입니까?(3절)
- 그는 그런 방해요소를 극복하기 위하여 어떻게 합니까?(4절)
-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간 자캐오에게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며(5절), 그 말씀을 들은 자캐오의 행동은 어떠합니까?(6절)
-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7절)
- 자캐오는 어떤 결심을 하며(8절), 예수님은 자캐오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9절,10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예수님을 만난 자캐오는 회개의 표시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다고 결심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하느님께 받은 것들 중 이웃과 나누고 싶은 것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나눔을 실천해 보도록 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518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연중 제31주일 복음묵상 : 이수환(바오로미키)|원평성당 보좌신부
자캐오는 거리를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고 했습니다. 어떤 분인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예리코의 눈먼 이(루카 18,35-48 참조)처럼 예수님을 큰 소리로 부르며 그분의 걸음을 멈추게 하려고 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고 한 것뿐입니다. 군중에 가려 잘 보이지 않자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거리를 지나시는 예수님께서 돌무화과나무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자캐오를 부릅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예수님은 자캐오가 어떤 사람인지를 압니다. 세관장이라서 사람들로부터 죄인 취급 받는 것을 압니다. 죄인 취급을 받다 보니 누구에게도 선뜻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지 못함도 예수님은 압니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요?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고만 한 자캐오의 행동이 이해가 됩니다. 누구보다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가는 적극성을 가진 인물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는 것이 아닌 그저 지나가시는 그분을 보려고만 하는 행동이 이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자캐오의 마음은 상처에 대한 두려움으로 움츠러들어 있었던 게 아닐까요? 예수님은 그 마음을 다 압니다.
자캐오의 마음을 알고서 던지는 예수님의 말씀은 따뜻합니다.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묵을 곳이 없어서 찾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연히 자캐오를 보았기 때문에 던지는 말도 아닙니다. 그 말씀은 ‘내가 너의 아픔을 헤아리고 있다.’라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고 나서 던지는 말입니다. 따뜻한 말입니다. 따뜻함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11월 10일(연중 제32주일) : 루카 20,27-38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20장 27절-38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사두가이는 무엇을 주장하는 사람들입니까?(27절)
-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어떻게 됩니까?(35절-36절)
- 하느님은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라는 말씀은 어떤 뜻인 것 같습니까?(38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하느님에 대해, 하느님 나라에 대해,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의 안목으로 우리 틀에 맞추어 생각하고 있다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해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227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 수숙혼은 혼인한 남자가 아들을 낳지 못한 채 죽게 되면, 그의 형이나 동생이 죽은 형제의 아내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아 대를 잇게 하는 제도로 죽은 형제와 아내의 재산을 보호해 주기 위한 것이다. 신명기 25,5-10에 바탕을 둔 제도이며, 오난의 이야기(창세 38,8-10), 룻과 보아즈의 혼인(룻4,10)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연중 제32주일 복음묵상 : 조재근(마르코)|월성성당 보좌신부
유다인의 격언에 ‘많은 결혼식에 가서 춤을 추면 많은 장례식에 가서 울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어느 누구나 노년이 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님을 믿습니다. 부활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믿습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희망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하느님 없이”(에페 2,12) 사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그런데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두가이파는 신앙문제에서 보수적이며 성경의 문자적 의미에 엄격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이었고, 지배세력과 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부유한 귀족층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의 부활, 영혼의 불멸성, 천사와 악마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두가이파들은 예수님께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공격합니다.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죽음 이후의 세계가 없고, 죽음이 끝이라면 어떻게 살까? 현실이 너무나도 중요해지겠죠.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재물을 아주 소중히 여기며, 재물이 곧 구원이라 믿겠지요. 하지만 부활을 믿고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신앙인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보물을 쌓기보다는 하느님 나라에 보물을 쌓으려고 애씁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죽음도 건드릴 수 없는 참된 생명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것에 대해 아직은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이 ‘알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이끌리는 참다운 희망입니다. 바로 이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 이상의 희망이 어디 있겠으며 그 이상의 축복과 기쁨과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낙엽 지는 11월, 삶과 죽음에 대해서 묵상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이 달에 교회는 위령성월을 지내며 구원의 희망을 안고 세상을 떠난 연옥영혼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시간을 보냅니다. 우리는 성인들의 통공을 믿습니다. 이미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는 성인들이 지상 교회에서 나그네 삶을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하여 전구해주고, 우리는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서로 관련되어 있고 수많은 관계를 통해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나의 구원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구원받고 그들에게도 희망의 별이 떠오르게 하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되겠지요.
11월 17일(연중 제33주일, 평신도주일) : 루카 21,5-19.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12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21장 5절-19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사람들은 성전에서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5절)
- 사람들이 성전에서 보고 있는 것들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까?(6절)
- 그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 어떤 표징들이 있다고 하십니까?(8절-12절)
- 사람들이 손을 대어 박해하는 것은 어떤 기회가 됩니까?(13절)
-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주시는 분은 누구십니까?(15절)
-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모두 맞서 일어나고 미워할 때 우리는 어떻게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19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 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 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면서 인내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해봅시다. 매일 매일 작은 인내를 구체적으로 실천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3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연중 제33주일, 평신도주일 복음묵상 : 김동진(제멜로)|성정하상성당 보좌신부
인내로써 생명과 구원을 얻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재난의 시작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 예언은 역사적으로 보면 AD 66년에 발발한 제 1차 유대-로마전쟁으로 성취됩니다. 이 전쟁의 끝인 AD 70년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불태워지고 무너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올 고난과 파국에 대해 대처하는 자세로 무엇보다 인내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인내로써 생명을 얻으라고 명하십니다. 따라서 구원을 얻기 위한 신앙인의 첫 번째 자세는 모든 고통과 파국적 상황에서도 인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 인내하는 것은 신앙인의 가장 중요한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아 견디고 인내하는 것에 대해 묵상해보니 신학생 시절 알았던 한 자매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 자매님은 제가 신학교 10년 공부하는 동안 매주 새벽미사 해설을 담당해서 봉사하셨는데, 제가 부제 때 그 자매님께 새벽미사 봉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새벽미사 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그 자매님께 제가 “자매님! 이제 10년 동안 새벽미사 봉사하셨으니 습관이 되셔서 일찍 일어나는 일 별로 힘드시지 않으시죠?”라고 묻자, 그 자매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부제님! 저 사실 10년 동안 새벽미사 봉사했는데, 10년 동안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평소에 너무 힘들지 않게 무난하게 봉사하셔서 그 말씀에 조금 놀라고 있었는데, 이어서 그 자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부제님, 제가 새벽미사 10년간 봉사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신앙생활 하면서 어떻게 내가 좋은 일만 하고 살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하기 힘들지만 희생하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봉사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고통은 이미 고통이 아닙니다.’라는 비안네 신부님의 말씀처럼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과 봉사는 이면에 내가 하기 싫고 힘듦에도 견디어 내는 인내가 밑바탕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현대의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에서 참아 견디는 것은 좋지 않다고 표현하는 경우도 많은 상황에서 인내라는 가치가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하지만 참아 견디고 인내하는 것은 이 세상이 끝이 아니라 이 세상의 고통들을 참아내고 견디어내면 하느님께서 천상복락을 주시리라는 강한 믿음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하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늘 기억하고 내 삶 속에서 오는 모든 고난들을 잘 참아 견뎌내고 승화시켜 구원과 생명을 얻는 신앙인들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11월 24일(그리스도 왕 대축일) : 루카 23,35-43.
35 백성들은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36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37 말하였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38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42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23장 35절-43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지도자들과 군사들의 행동은 어떠합니까?(35절-37절)
- 예수님의 머리 위에 붙어 있는 죄명 패에는 무어라 쓰여 있습니까?(38절)
-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들은 각각 예수님께 어떤 태도를 가집니까?(39절-42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 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주로 어떤 종류의 말들을 하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비난이나 조롱의 말보다는 축복과 감사의 말을 하도록 노력해보고 실천해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77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그리스도 왕 대축일 복음묵상 : 이동철(대건안드레아)|구암성당 보좌신부
사형수 3명이 가장 극악한 사형도구인 십자가에 매달려 있습니다. 십자가 밑에는 사형을 보러 온 사람들이 사형수들에게 조롱을 퍼붓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도 사형수들의 숨 가쁜 대화가 들려옵니다. 3명의 사형수는 서로 조롱과 꾸짖음, 청원과 응답의 대화를 나눕니다.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사형장에서 조롱은 흔히 있을 수 있다지만 사형수들 간에 청원과 응답이 오고가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은 무슨 일일까요?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선생님’이라 불리는 이는 약3년 전에 갈릴래아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유다인들이 믿는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 더러운 마귀의 영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치유했습니다. 당시 큰 죄인으로 분류되던 세리들과 창녀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율법에 근거하여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종교지도자들에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율법의 근본정신을 근거로 일침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유다인들만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생명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군중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그의 제자가 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꾸지람만 듣는 종교지도자들은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3년 동안 수시로 그를 음모에 빠뜨리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그의 놀라운 지혜 앞에 자신들의 계획을 실행하지 못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옵니다. 그의 제자 중 하나가 그를 넘겨주겠다고 종교지도자들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결국 종교지도자들은 그를 체포합니다. 그리고 온갖 거짓들로 군중들을 선동하여 그를 사형대 위에 세웁니다.
그는 세상에 패배한 것 같습니다.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대해 사람들에게 선포했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나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버렸습니다. 누구하나 그를 변호하겠다고 나서는 이도 없습니다. 그를 칭송했던 군중들도 그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도 그를 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는 저주의 외침만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그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당함을 강력히 외치지도 않았고 자신을 음모에 빠뜨린 이들을 향해 저주를 퍼붓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고통의 길을 갑니다. 피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르고 온갖 고문으로 기진맥진해 있는 처절한 상태에서도 묵묵히 그 길을 갑니다. 그는 그렇게 십자가라는 가장 극악한 사형대 위에 매달렸습니다. 점점 숨을 쉬기가 힘들어집니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해왔던 대로 그에게 자신의 영혼을 맡기는 이에게 희망과 생명을 줍니다. 그를 믿는 이에게 그는 희망이요 생명입니다.
그는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2,00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에도 그를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만나기 드뭅니다. 또한 그의 사랑은 세상 사람들의 귀감이 됩니다. 십자가 위에 달린 그의 죄명 패에는 세 가지 언어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새 생명을 얻었고 그를 믿으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를 이렇게 부릅니다. ‘그는 우리 삶의 왕이요, 세상의 왕이다’ 그를 통해 사람답게 사는 법을 깨달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그를 통해 죄를 용서받아 우리 영혼을 깨끗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그는 부활했고 그 부활은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의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도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삶과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께 맡긴 죄수와 같이 우리의 부족함을 왕이신 그리스도께 고백하고 그분께 우리의 삶을 맡기며 살아갑시다. 그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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