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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후의 성령과 교회이해


조현권(스테파노)|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2. 성령과 새로운 교회이해

다. ‘친교’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

 

* ‘하느님의 백성’과 ‘그리스도의 몸’

교회를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몸’과 ‘하느님의 백성’은 상호 보완적인 개념들이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표현은 (구약의) ‘하느님의 옛 백성’과 (신약의) ‘하느님의 새 백성’ 사이의 특유의 차이점을 표현하고, 또 그것이 (교회라는) 종교적인 공동체의 새롭고도 결정적인 특성을 교회는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개념은 이렇게 서로 보충적으로 이해되는 개념들이지만 서로에 대해서 독립적인 개념들이기도 하다. 각 개념은 고유의 방법으로 교회 전체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 개념이 다른 개념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이해하여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교회이해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개념에 종속된 교회이해라고 한다거나, 그 반대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이해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개념에 종속된 교회이해라고 한다는 것도 다 너무 일방적인 주장이라 하겠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개념은 특히 ‘성체성사’와 관련된 개념이라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위해서도,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를 위해서도 성체성사는 똑같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교회는 언제나 성체성사를 통하여 그 자신이 새로이 건설되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체성사가 교회를 나타내는 개념들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 개념이 강조하는 것은 성체성사만으로는 분명하고 충분히 나타낼 수 없는 관점들인 것이며, 하느님 백성이라는 교회 개념도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개념만으로는 명료하게 나타낼 수 없는 교회 특유의 면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신앙체험에 따르면 하느님은 역사 안에서 늘 새로이 자신을 드러내신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의 백성과 시대를 걸쳐 함께 하신다. 이러한 관점은 신약에서도 유효한 것이며, 이제 (신약의 백성인) 교회 안에서 더 충분히 고려되어야 했다.

 

* 친교(communio, 콤무니오)

바울로는 ‘신자들의 친교’ 혹은 ‘공동체’를 뜻하는 희랍어 단어인  (코이노니아, 라틴어로는 communio, 콤무니오)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신자들의 집회를 덧붙여 그리스도교적인 보화들인 ‘믿음’과 ‘그리스도의 몸과 피’(1고린 10,16-17 참조)와 ‘성령’(2고린 13,13 참조)에 대한 공동의 참여를 표현한다. 거룩하고 보편적인(가톨릭) 교회는 4·5세기의 사도신경에서 성인들의 친교(혹은 공동체)로 나타난다. 공동체를 드러내는 이 ‘친교’ 개념은 하느님의 백성과 함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중심개념이다. 친교 개념이 갖는 특별한 의미는 그것이 교계제도에 대한 잘못된 편중을 보완하는 개념이라는 데에 있다. 교회는 친교적인 특성을 갖고 있으며, 교회의 이 친교적인 특성은 중세기 이후 다른 정의들로 인하여 배후로 물러났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다시금 새로이 공동의 교회적인 인식으로 두드러지는 것이다. 친교 개념의 구체적인 의미는 교회헌장 제2장의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제목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즉 교회는 믿음과 바람과 사랑의 공동체이고(교회헌장 8항 참조), 그리스도에 의해서 창립되고 구원의 도구로 삼아진 생명과 사랑과 진리의 친교이며(교회헌장 9항 참조), 교회적인 공동체이고(교회 15항 참조), 사제적인 공동체이다.(교회헌장 10, 11항 참조)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친교의 공동체이다. 친교 없는 공동체는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니다. 공동체는 곧 친교를 가리키는 말이고, 믿는 이들의 공동체를 교회라 할 때, 이 교회는 일차적으로 친교의 공동체임을 뜻한다. 벌써 공동체를 가리키는 희랍어와 라틴어 단어 자체가 친교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내 자신이 교회의 친교에 이바지 하고 있지 않다면, 나는 교회라는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할 수가 없다. 내가 교회의 친교를 깨는 사람이라면 교회 공동체를 깨는 사람인 것이고, 내가 교회의 친교에 나름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면 교회 공동체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친교의 사람인 것이다!

 

라. 친교의 원리가 되시는 성령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선사되어진 성령을 통하여 나누어진 신적인 ‘아가페(agape: 사랑)’가 된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친교의 원리’가 되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신자들의  마음속에 - 신자들의 공동체가 교회이므로,  곧 교회 안에 - 신적인 사랑을 부어넣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교회는 ‘거룩하게 된’ 곧 ‘성화된’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진 친교로 나타나는데, 이 친교는 그들이 (성사를 비롯한) 거룩한 것들에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지며, 여기서 성령은 그 거룩한 것들의 한없는 원천이 되신다. 아버지(성부)와 아들(성자) 사이의 사랑의 끈이신 성령은 또한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공동체의 내적인 끈이시기도 하다. 그분은 친교에로의 최종적인 동인(動因)이시고 친교의 관리자이신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르면, 성령은 친교와 봉사로 교회를 일치시키는 분이시다.(교회헌장 4항 참조)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신자가 성령 안에서 다른 이들과 친교를 이루는 것이다.”(교회헌장 13) 성령을 통하여 실현되는 하느님과 함께 하는 공동체는 교회 공동체의 기반이 된다. “믿는 이들 안에 살아 계시는 성령께서는 온 교회를 가득 채우시고 다스리시어 신자들의 저 놀라운 친교를 이루시고 모든 이를 그리스도 안에서 깊이 결합시키시어 교회 일치의 원리가 되시는 것이다.”(일치교령 2)

 

전통적인 교회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개념이 교회에 대한 오순절의 성령의 파견과는 잘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신자는 성령이 그들 안에서 활동하시기 때문에 한 공동체에 속하는 한 하느님의 백성으로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구세주를 믿는 백성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유다인과 이방인 가운데서 부르신 백성을 혈육에 따라서가 아니라 오로지 성령 안에서 하나로 모으시어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게 하셨다.”(교회헌장 9) 성령에 의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처음부터 자신을 당신의 교회 안에서 실현하신다. “성령의 재촉을 받아 교회는 그리스도를 온 세상 구원의 근원으로 세우신 하느님의 계획이 완전히 실현되도록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교회헌장 17)

 

마. 교회 공동체의 원천이고 모상인 ‘삼위일체적인 친교’

 

‘삼위일체적인 친교’라는 개념은 신적인 세 위격이 그들의 사랑을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하나의 신적인 생명을 완성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교회는 이 ‘삼위일체적인 친교’ 안에 자신의 근원을 두고 있고,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전 삼위일체가 드러나는 곳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교회 안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거하시고 활동하신다. 그리고 하느님은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세상과 친교를 맺으신다.

 

초대교회는 자신을 “성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친교”(1요한 1,3ㄴ)로 이해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르면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로 모인 백성”이다.(교회헌장 4항 참조) 교회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공동체 안에서의 인격적인 공동체로 예시되었고, 신적인 생명에의 참여 안에서 인간들의 공동체로서, 하느님과 동료 인간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로서 건설되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이고 유일한 이 백성은 모든 세대를 통하여 온 세상에 퍼져 나가, 처음에 인간 본성을 하나로 만드시고 흩어진 당신 자녀들을 마침내 하나로 모으고자 하신 하느님 뜻의 계획을(요한 11,52 참조) 성취시켜야 하는 것이다.”(교회헌장 13)

 

교회는 하느님이 시초부터 원하셨고, 이제 당신의 삼위일체적인 구속행위를 통하여 새롭게 그리고 최종적으로 성취한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는 교회를 위한 근본적인 기초가 되고 모범이 되며 목적이 되신다. 성부께서 성자와 성령을 통하여 사람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모으신다. 그러기에 교회는 삼위일체적인 활동의 터전과 열매와 모범이 되신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는 삼위일체를 드러내는 가장 분명한 ‘이콘(icon, 성화)’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당신 교회에 근거와 형태와 방향과 규범을 주신다. 교회는 하느님의 한 백성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아계시고 당신 활동으로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시는 성령, 즉 인간을 하느님 안에서의 세 위격과의 일치 혹은 친교에로 결합시키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공동체이다.

 

“성령께서는 세말 공동체에 대한 하느님의 선물로, 더욱이 세말 이스라엘 자체를 비로소 참으로 이루어 내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묘사된다.(이사 32,15; 44,43; 에제 11,19; 36,26-27; 37,14; 요엘 3,1-2)” 성령께서는 교회가 하느님과 함께 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이끄시는 분이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예수님의 현세적인 역사라는 좁은 시간적 영역을 넘어 삼위일체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통교를 실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일찍이 삼위일체의 내재적 통교를 교회적인 통교와 연결시켰다. : “성부와 성자께서는 당신들께 공통적인 것으로 우리 가운데 그리고 당신들과 함께 공동체를 세우길 원하시고, 당신들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저 선물, 즉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의 선물이신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일치에로 이끌어 가시고자 하신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과 화해하고, 그분을 통하여 기뻐하게 된다.”

 

아우구스티노는 “아마도 성령께서는 우리가 성부와 성자께도 똑같이 쓸 수 있는 이름을 당신의 이름으로 가지고 계신 듯 하다.” 라고 말하면서, 성령을 “하느님 안에서의 꼼무니오(Communio, 친교)”로 이해하였고,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의 형언할 수 없는 어떤 공동체라고 표현하였다. 

 

오랜 시간 동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후의 성령과 교회이해”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다음 호부터는 “봉사하는 교회의 조력자로서의 성령”에 대하여 알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