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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정 선생의 교실이야기 2
말구유와 세족례


이유정(데레사)|계산성당, 대구가톨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무학고등학교

 

저에게 한 해의 끝은 늘 아쉬움만 가득합니다. 이런 느낌이 싫어 정말 열심히 살아보지만 마지막 달 앞에 서면 저는 늘 속수무책입니다. 올 일 년의 끝자락에 선 저는 역시나 미숙함, 후회, 안타까움 등을 그물로 건져 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12월은 또 하나의 행복한 보물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바로 희망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거룩한 탄생인 성탄이 있습니다. 그래서 칼바람의 추위가 있는 12월이 또 그렇게 포근하게 다가오나 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포근한 이야기 하나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 10월 말, 우리학교 특색 사업 중의 하나인 부자캠프가 대구가톨릭대학교 소속 청통수련원에서 열렸습니다. 올해 10회를 맞이하는 이 프로그램은 참가하셨던 부모님들과 학생들 덕분에 어느 정도 입소문이 나 있습니다. 서른 명 가까운 선생님들이 프로그램 진행에 참가할 정도로 우리 학교의 자랑거리입니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자신의 내면을 잘 드러내지 못합니다. 표현이 서툰 아버지와 아들은 그래서 날이 갈수록 점점 서먹서먹해집니다. 아침 일찍 출근해 늦은 저녁까지 일을 해야 하는 아버지와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학교에 있는 아들은 “내 탓이오.”라는 그 좋은 말을 두고 점점 서로에게 “자신을 이해 못한다.”라고 투덜대기만 합니다. 이들에게 함께 살을 부비고 심장을 맞대는 1박 2일의 귀한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부자캠프의 핵심입니다. 가슴을 울리는 교장 선생님의 특강, 서로의 생각 들여다보기, 부자목욕, 미니올림픽, 촛불의식과 편지쓰기 등 여러 활동들을 통해 서로에게 조금 더 마음 열기를 시도해봅니다. 그중 압권은 바로 파견미사 중 행해지는 세족례입니다. 먼저 나이든 아버지가 아들의 발을 씻깁니다. 연이어 그 아들이 아버지의 발 씻기는 세족례는 서로에게 가장 낮은 모습으로 내려앉음이 가져다주는 귀한 선물을 부자 모두에게 안겨주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세족례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식 중 유독 제 시선을 잡아당기는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지난 밤, 몇 시간 전에 목욕했던 발인데도 마흔 넘어 얻은 아들의 발을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열심히 씻기시던 그 아버님의 눈가에 맺힌 눈물 때문인지 그 희끗희끗한 흰 머리가 한층 더 희게만 느껴졌습니다. 아버지께 귀하게 닦임을 받은 아들이 이제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들 역시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지 연신 눈물을 훔치며 낡고 늙고 주름진 투박한 아버지의 발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들의 모습을 의자에 앉아 내려다보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시는 아버지의 눈에서 쏟아지는 온화하며 따사로운 빛을 보며 저는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은 바로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발을 닦아준 아들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안은 아버지는 그 옛날 강보에 싸인 아들에게 마음 놓고 했던 입맞춤을 망설임 없이 열일곱의 아들에게 하셨습니다. 그 때 이 아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아마 요즘 대부분의 고등학생 아들을 떠올린다면 그 다음 장면은 굳이 제가 표현하지 않아도 무척이나 마음 상하는 장면이겠지요. 하지만 사랑 가득한 아버지의 입맞춤을 받은 이 아들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 목을 꽉 끌어 안았습니다. 아버지 역시 아들을 있는 힘껏 끌어안고 한참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마음을 찍는 사진기가 있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행복한 가슴을 한번 보기라도 했으면….

잠시 잊고 지냈던, 조금은 외면했던 소중한 감정을 다시 갖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인사하시던 그 아버님을 뵈며 갑자기 돌아가신 제 아버지께 저는 그렇게 해 드린 기억이 없다는 생각이 세차게 제 가슴팍을 치며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회를 좋아하는 자식들을 위해 아직 아침이 어둠을 채 밀어내지도 못한 그 새벽에 수산시장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셔서 살아있는 싱싱한 오징어를 사 오셔서 손수 회를 뜨신 후에야 잠든 자식들을 깨우셨던 제 아버지도 무척이나 제 사랑이 간절하셨을 것입니다. 이젠 알았지만 해 드릴 수 없는 현실을 깨달았을 때 밀려오는 그 회한의 감정이 저를 어찌나 흔들어 놓는지 잠깐 동안 숨도 쉴 수 없었습니다. “있을 때 잘 하지….” 얼마나 그 말이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지,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사랑밭에서 자랐기에 지금의 제 마음이, 제 삶이 이렇게 만들어졌음을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성탄이 가까웠는데 어찌 세족례 이야기냐고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많으시죠? 근데 전 이 세족례 때의 예수님이나 성탄에 오시는 아기 예수님이나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은 똑같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체의 가장 아래에 위치에 그 육중한 무게를 견디며 더러운 길바닥의 먼지들과 함께한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위해 바닥에 내려앉으신 예수님도, 하느님의 외아들이란 고귀한 신분이면서도 넓은 땅 한구석 외진 마구간 구유 속에 첫 자리를 펴신 아기 예수님도 바로 “사랑함”에서 시작한 낮춤을 실천하신 것입니다. 인간세상으로 내려오신, 우리 때문에 더 낮아지셔야만 했던 예수님의 사랑이 바로 세족례와 말구유에서의 탄생이란 생각이 들어 모두 더 낮아지는 연습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낮춤으로 드러납니다. 또 “사랑을 먹고 자란 아이, 사랑을 실천하며 산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폭력으로 연일 매스컴의 이슈가 되는 우리나라 학교 안에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아이, 사랑 가득한 학생들이 많다면 굳이 지금처럼 쏟아지는 폭력 예방 캠페인이나 교육 프로그램들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바로 모든 가정 안에서 생명을 시작합니다. 예수님처럼 무릎 꿇고, 아기 예수님처럼 낮추어 내 아이를 바라보고 사랑한다면 그 아이도 자라 자기 주변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지 않을까요? 이런 아이들이 하나씩, 둘씩 늘어난다면 학생들을 공포와 벼랑 끝으로 몰고가는 학교 폭력은 그 힘을 잃어버릴 거라 힘주어 말하고 싶습니다.

이제 또다시 떠오르는 태양을 곧 맞게 됩니다. 올해보다 조금은 더 아름답고, 더 소박하며, 더 행복한 학교 이야기가 많은 2014년을 소망하며, 이 모든 것의 출발인 세상의 모든 가정이 가장 낮은 이로 오신 아기 예수님과 구원의 신비를 이 땅에 있도록 자신들을 희생한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의 성가정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반 아이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학교 엄마는 너희들 사랑 속에서 행복한 일 년을 보냈단다. 정말 고맙다. 얼마 전 보낸 문자 내용처럼 올 한 해 내가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가 모두가 너희들이었다는 거 잊지마. 사랑한다~♥ 무학고 1학년 1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