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화 모양으로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동편 위쪽 귀퉁이에는 육지가 팔을 벌려 바다를 가둔 듯한 기이한 모양의 해안선이 자리잡고 있다. 개펄에 자리잡은 바다 호수라는 뜻에서 ‘석호(潟湖)’라고 일컫는 지형, 누가 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는 힘든 환경이지만, 외적의 침입을 피해 바닷가로 내몰린 옛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소금과 물고기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일! 바닷물에 수만 개의 말뚝을 박아 집을 짓고, 백여 개의 작은 섬들을 다리로 이어서 중세 최고의 무역항 베니스의 화려한 역사를 빚어가게 된 것이다.
뭐든 내어 팔고, 말도 안 되는 흥정을 붙여 중간에서 이익을 챙기는 교묘한 상술로 악명을 떨치면서까지 사방팔방 장사판을 벌인 덕분에 베니스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드는 도시로 날로 번창하였고, 뒤이어 온갖 축제와 예술이 이러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무르익어 갔다. 그러나 물질이 풍족할수록 유혹도 많아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 아니던가? 온갖 유흥의 부작용으로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거리에 버려지는 아기들도 많아지게 되었다. 이렇게 부모 없는 아이들을 보살피고 교육시키는 시설이 당시 베니스에는 네 개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바로 ‘피에타(Pieta)’라는 고아원이다.
이 고아원은 여자 아이들만을 보육하는 시설로 엄격한 가톨릭 교회의 전통에 따라 소녀들에게 수도복을 입히고 미사와 기도로 일과를 시작하며, 읽고 쓰기와 더불어 노래와 악기 연주를 가르치는 참신한 체제로 운영되었다. 여기에 필요한 자금은 후원자들을 위한 연주회를 통해 마련했다고 하는데 연주력이 뛰어난 소녀들의 연주 솜씨는 부자들의 마음뿐만 아니라 주머니를 여는 데에도 한몫을 단단히 했던 모양이다.
1717년 어느 날, 붉은 머릿결을 지닌 ‘빨강머리 신부님’ 안토니오 비발디는 조금 피곤한 기색으로 베니스의 피에타 고아원 연주홀에 들어섰다. 어릴 적부터 앓던 기관지 천식으로 미사를 집전하기에 힘든 처지라는 것이 특별히 받아들여져, 공식적인 사제 업무를 수행하는 대신에 이 고아원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곡을 지어내 연주하는 일을 맡은 지 어느덧 십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자리를 가득 메운 온갖 화려한 복장의 후원자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이층 발코니 성가대 석에는 흰색 수도복을 입은 십대 소녀들이 가슴에 장미꽃을 꽂은 채 등장하고, 곧이어 비발디의 지휘에 따라 마치 하늘의 천사들이 노래하듯 아름다운 선율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노래 〈마니피캇〉(루카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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