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공동체 복음나누기 자료제공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053) 250-3082 cafe. daum.net/biap
12월 1일(대림 제1주일) : 마태 24,37-44.
37 노아 때처럼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38 홍수 이전 시대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39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40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2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4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복음 24장 37절-44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사람의 아들의 재림이 어느 때에 비유되고 있습니까?(37절-38절)
- 홍수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홍수가 닥칠 때까지 어떠하였습니까?(38절-39절)
- 사람의 아들의 재림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40절-41절) 그리고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까?
- 사람의 아들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42절-44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기다림을 생각하는 때인 대림시기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겨봅시다. 대림시기를 시작하면서 생활 가운데 특별히 의식하고 노력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정해서 실천해보도록 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88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대림 제1주일 복음묵상 : 사공병도(베드로)|동촌성당 보좌신부
교회 역사상 사람들이 세례 받는 것을 미루고 미루다가 죽기 직전에 받으려는 경향을 보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세례를 받아도 또 죄를 지을 것이고, 세례 받고 나면 하고 싶어도 해서는 안 될 일이 많아질 뿐이니 뭐 하러 일찍 세례를 받아 고생을 사서 하느냐.’는 지극히 인간적인 계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세례를 받으면 모든 죄가 한 번에 해소되니 이러한 생각은 아주 효율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존재이기에 이는 자신의 영원한 거취를 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박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의 끝과 우리 인생의 끝이 언제일지 알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 속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당신이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이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낌새도 없이 밤손님처럼 오시는 것일까요? 정말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우리가 불안해하지 않고 좀 더 편하게 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정답은 아니더라도 힌트 정도는 알려주실 만도 한데 말이지요. 혹시 우리가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이런 수많은 의문과 의혹 속에서도 우리가 결코 놓지 말아야 하는 명백한 진리는 그분이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배려 받지 못하는 듯한 불편함에도 예수님의 사랑 가득한 안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왜 몰래 오시는 것일까요?
그분이 오시는 날은 이 땅에서의 한정된 삶이 끝나고 영원의 삶이 열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그날 하느님 나라라는 기쁨과 평화의 잔치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라면 모두에게 무작정 좋을 수 있을까요?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나라(마르 10,31), 나보다 더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나와 같은 대접을 받는 나라(마태 20,15), 참된 회개만 있다면 ‘그래도 저 사람은 아니겠지.’ 했던 사람도 함께 할 수 있는 나라(루카 19,5), 바로 그런 나라가 하느님 나라인데 과연 아무나 그곳에서 주어진 기쁨과 평화를 온전히 누릴 수 있을까요? 준비를 제대로 해 오지 않은 이에게는 오히려 가시방석이지 않을까요? 그런 사람에게 하느님 나라는 지옥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당신께서 다시 오시는 날을 우리에게 감추어 두십니다. 우리들의 나약함과 간사함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또한 마치 시험을 앞두고 하루 이틀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 학생처럼 당신이 오실 날을 미리 알고 있어서 그날 즈음에 바짝 준비하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 한들 하늘나라의 기쁨과 평화를 제대로 누릴 수 없음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몰래 오심은 우리를 불안에 빠뜨려 수많은 규제의 노예가 되게 만드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차고 넘치게 하느님 나라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랑의 배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이 배려에 응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언제 오실지 모르니 일상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매순간 기도와 봉사에만 전념해야 할까요? 하지만 오늘 복음 속 예수님께서 데려가신 어떤 남자와 여자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밭을 일구고, 맷돌을 갈며, 일상의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비록 오늘 복음은 불려간 이들과 불려가지 않은 이들의 차이에 대해 말해주고 있지 않지만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일상을 얼마나 예수님의 자리로 채우고 있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예수님을 존경하는 가정에서 일어나, 예수님처럼 가진 것을 나누는 식탁에서 밥을 먹고, 예수님께 드리는 기도로 시작과 끝을 맺으며 일을 하고, 예수님과 더불어 자신의 하루를 되돌아보면서 잠자리에 드는 것! 그렇게 조금씩 내 삶의 자리에 그분의 자리를 넓혀 나간다면 불안과 긴장으로 높은 곳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매 순간을 기도와 봉사에 매진하는 것보다 예수님의 부르심에서 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다리는 그분은 우리들 위의 높은 곳에 계신 분이 아니라 이미 내려오셔서 우리 가운데 스며드신 임마누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2월 8일(대림 제2주일, 인권주일) : 마태 3,1-12.
1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2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3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4 요한은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5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6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7 그러나 요한은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9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10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11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12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복음 3장 1절-12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세례자 요한은 유다 광야에서 무엇을 선포합니까?(2절)
- 3절에서 인용한 이사야서 40장 3-5절을 찾아서 한 번 읽어봅시다.
- 요한의 모습과 그의 음식은 어떠합니까?(4절)
-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을 상대로 어떻게 합니까?(6절)
-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에게 요한은 무엇을 요구합니까?(8절)
- 회개하였다는 것은 어떻게 드러나야 한다고 가르칩니까?(10절)
- 세례자 요한 뒤에 오시는 분은 어떤 분이십니까?(11절)
-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그분은 어떻게 하십니까?(12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구체적으로 회개에 합당한 어떤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그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해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81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대림 제2주일, 인권주일 복음묵상 : 고태권(그레고리오)|동천성당 보좌신부

얼마 전,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가 요즘 태교방법 중 호주의 돌고래 초음파 태교라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너무 과하다 싶었지만 동시에 아이를 맞이하기 위해서라면 아끼는 것이 없는 부모의 마음도 이해(?)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꼭 그런 모습은 아니더라도 어느 집안이든지 새로운 식구인 어린 아이를 맞이하기 위한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세상의 달력으로는 마지막인 12월, 교회 달력으로는 새해를 맞이한 대림 제2주일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사람들을 준비시킨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준비시킨 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오늘 복음이 이야기 하듯 회개란 주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맞추는 것입니다. 땅의 나라에 신경을 썼던 우리가 다시 눈을 들어 하늘나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며, 나의 길만을 찾던 내가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특별히 바리사이와 사두가이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볼 때 강한 어조로 그들을 꾸짖으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고 이야기합니다. 회개는 단지 머리로만, 마음으로만 주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온몸이 그분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머리에만, 마음에만 회개가 있다면 그것은 생각만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는 대림 제2주일을 인권주일이며 사회교리주간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이슈가 되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 현안은 아니더라도 내가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내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이 하느님의 정의와 주권이 실현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세례자 요한이 이야기하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모습일 것입니다.
대림주간, 이제 3년차 신부인 저에게는 판공성사를 보려는 신자들로 북적이는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쌓이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판공성사를 보는 여러분들의 고백 안에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진정한 회개로 고백하는 목소리가 사제인 저의 영혼을 울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탄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주신 태교는 바로 “판공성사 - 고해성사”일 것입니다. 판공성사 준비는 잘 되어 가시는지요? 그저 그렇게 하는 고해성사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오실 때 알곡이 되어 곳간에 모아져 있는 합당한 열매를 맺으려는 결심으로 가득 찬 고해가 여러분들의 온 영혼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12월 15일(대림 제3주일, 자선주일) : 마태 11,2-11.
2그런데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5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6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7 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9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10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복음 11장 2절-11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요한은 어디에 있습니까?(2절)
- 요한은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무엇을 물어봅니까?(3절)
- 눈먼 이들, 다리저는 이들, 나병 환자들, 귀먹은 이들, 죽은 이들, 가난한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5절)
- 그렇다면 요한은 누구라고 말씀하십니까?(9절)
- 예언자라고 설명하시는 세례자 요한의 역할은 어떤 것입니까?(10절)
- 11절의 말씀은 무슨 뜻인지 곰곰이 생각해봅시다.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 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 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예수님 안에서는 보잘 것 없다고 여겨지는 작은 이라도 큰 사람임을 감사하며, 예수님 안에 머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 찾아보도록 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91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대림 제3주일, 자선주일 복음묵상 : 황은모(요한)|반야월성당 보좌신부
추운 겨울입니다. 매년 날씨가 추워지는 이맘때가 되면 생각이 나는 음식들이 있지요. 붕어빵, 군고구마, 호빵….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음식들은 겨울에 먹어야 제 맛입니다. 여름에도 군고구마나 호빵이 먹고 싶어집니까? 그렇지 않지요. 음식이든 뭐든 다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문제를 하나 내보겠습니다. 상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문제 자체가 좀 이상하게 느껴지지요? 모두들 분명 바다에서 싸우면 상어가 이기고 육지에서 싸우면 사자가 이기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실 겁니다. 무엇이든지 자신이 살아야 할 자기의 자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때와 자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것, 오늘 세례자 요한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입니다.
요한은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 맞는지 물어보게 합니다.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광야에서 선포하고 길을 닦았던 바로 그 메시아가 맞는지 확신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로 오시기로 한 메시아가 맞다면 이제 자신의 때와 사명은 끝났다는 것을 알고 기꺼이 물러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그는 광야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장터도 아니었고 호화로운 옷을 걸치고 사는 왕궁도 아니었습니다.
광야는 먹을 것도, 입을 것도, 그리고 잠자리도 변변치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꺼이 광야를 선택합니다. 바로 그 곳이 예언자의 자리이며 자신의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는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철저하게 하느님만을 의지하면서 형체도 없이 울려 퍼지는 그분의 소리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이처럼 세례자 요한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자신의 자리에서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이 메시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만큼 주목을 받았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물러날 때가 되어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아무 미련없이 그 자리를 떠나 갔습니다.
사실 이러한 모습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봅시다. 훌륭한 일을 하거나 어떤 큰 업적을 달성해서 유명해지고 좋은 평판을 얻다가 시간이 지나서 물러날 때가 되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명성이나 자리,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미련을 가지고 집착을 하다가 결국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자신에게 주어진 때와 자리에서 타오르는 불꽃처럼 모든 것을 불사르고, 그 떠나는 자리마저 아름다웠던 세례자 요한의 외침을 항상 기억하였으면 합니다.
12월 22일(대림 제4주일) : 마태 1,18-24.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복음 1장 18절-24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마리아는 누구로 말미암아 잉태하였습니까?(18절)
-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으로서 어떤 결심을 합니까?(19절)
- 요셉이 파혼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하느님께서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무엇을 설명하십니까?(20절)
- 마리아가 낳을 아들 예수를 통해 그분께서 무엇을 하시려 합니까?(21절)
- 임마누엘은 무슨 뜻입니까?(23절)
-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어떻게 합니까?(24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 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삶 안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그 말씀에 순명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해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93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대림 제4주일 복음묵상 : 김요한(세례자 요한)|매호성당 보좌신부
연말 분위기로 세상이 시끌벅적합니다. 거리에는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이 가득합니다. 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사람들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세웁니다.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집에서 파티를 계획하고 특별한 장소를 예약하기도 합니다. 저마다 크리스마스를 의미있게 보내기 위해 계획을 세웁니다.
들뜬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오늘 예수님 탄생 복음을 들었습니다. 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복음에서 예수님의 탄생 과정을 이렇게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과정 안에 우리가 깨달아야 할 성탄의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성탄이 기쁜 이유가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마리아의 잉태사실을 듣고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합니다. 세상에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을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요셉이 결심한 순간,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일 것을 명합니다. 내 마음속에 결정을 내렸을 때 우리는 그것을 바꾸기가 쉽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계획한 일, 내가 결정내린 것이 흐트러지고 실패로 돌아갈 때 쉽게 분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 내 의지를 관철시키는데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권리나 의지가 조금만 침범당하면 자신이 없어지는 양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천사의 명 때문에 자신의 결정이 번복되어도 그것에 순명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로운 사람’은 이것을 뜻합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판단 기준을 두는 사람, 이 사람은 크고 작은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앞서 마리아의 순명, 이어서 요셉의 순명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는 탄생하십니다. 성탄은 곧 순명의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성탄을 맞이하며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
나의 뜻보다 서로의 뜻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의 뜻을 가장 우선에 두는 것을 말합니다. 순명의 열매는 ‘임마누엘’의 탄생입니다. 순명하는 삶은 항상 하느님을 곁에 두는 삶입니다. 오늘 내가 나의 계획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였다면 나는 세상에 예수님을 탄생시킨 것이 됩니다.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요셉과 마리아처럼 세상에 예수님이 탄생하시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내가 계획한 것이 무너질 때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 자리에 예수님이 탄생하십니다. 받아들이기 힘든 하느님의 뜻을 내 안에 품어 안읍시다. 많은 사람들이 성탄은 왁자지껄한 파티가 아니라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예수님 탄생의 순간임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12월 29일(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 마태 2,13-15. 19-23.
13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9 헤로데가 죽자, 꿈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20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21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다.
22 그러나 아르켈라오스가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를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다가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 지방으로 떠나,
23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복음 2장 13절-15절, 19절-23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주님의 천사는 어떤 방법으로 요셉에게 말씀하십니까?(13절,19절,22절)
-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버리려고 할 때 요셉은 어떻게 합니까?(14절-15절)
- 헤로데가 죽자 요셉은 또 어떻게 합니까?(21절-23절)
- 요셉이 결국 가서 자리를 잡은 곳은 어디입니까?(23절)
-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말씀은 몇 번 나옵니까?(15절,23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 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요셉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시면서 가정을 보호하고 이끌어갑니다. 우리도 가정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그 말씀에 순명하며 또한 서로서로에게도 귀기울이며 순명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해봅시다. 매일 저녁 함께 모여 기도하며 짧게라도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결심하고 실천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13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복음묵상 : 마성우(세례자 요한)|경산성당 보좌신부
오늘 기념하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은 이 나자렛 성가정을 본 받아서 우리 각자의 가정이 성화되도록 노력하자는 날입니다. 그런데 보통 성가정이라 하면 이웃에게 화목한 가정이라는 칭찬을 듣고 온가족이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도 잘 해서 만사가 잘 풀리고 풍족한 그런 가정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말씀에 나오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보면 하느님께서 생각하시는 성가정의 모습은 우리 생각과 다른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저 풍족한 가정 안에서 별 고민 없이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 같지가 않다는 말입니다. 사실 하느님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항상 풍족하고 걱정없고 만사가 잘 풀리기만 하는 가정은 세상에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집집마다 들여다보면 다 힘든 일이 있었거나, 지금 겪고 있거나, 아니면 앞으로 다가올 예정입니다. 평생 아무 고통없이 사는 사람이 없듯이, 아무런 고통없는 가정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나자렛 성가정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보기에 그 어떤 가정들보다 불행해 보이는 가정이었습니다.
첫째, 이 가정은 경제적으로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2000년 전 나자렛은 매우 작은 마을이었고, 요셉 성인의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따라서 그 옛날 이런 작은 마을의 노동자로 가정을 꾸려가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둘째, 이 집은 부부 간의 불신과 오해가 충분히 있을 만한 가정이었습니다. 마리아가 결혼도 하기 전에 임신을 했고, 그 때문에 요셉은 남모르게 파혼까지 할 작정도 했었습니다.
셋째, 무엇보다도 자식이 십자가에 처절한 모습으로 사형을 당했고 어머니는 그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봐야 했던 가정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눈으로는 누가 봐도 고통과 시련이 많은 가정인데도 교회는 이런 가정을 성가정으로 본받자고 합니다. 물론 의롭고 인내하는 요셉과 마리아의 훌륭한 성품을 본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이분들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생겨도 오로지 하느님을 믿고 그분 앞에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낮추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요셉이나 마리아가 바리사이들처럼 스스로 윗자리에 앉기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 좋아하고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를 길게 하는 사람이었다면 이 가정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분들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자신을 낮추고 기도할 줄 알았습니다. 이러한 자세를 통해서 이분들은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를 가득히 누리면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부모들의 자녀들은 오늘 말씀의 소년 예수님처럼 나날이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지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를 받는 그런 자녀로 커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가정이란 서로 사랑하고 하느님을 섬기면서 참되게 사는 가정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셔서 복되었던 마리아와 요셉처럼 자기를 낮추고 하느님을 모시고 살면 힘든 일이 안 생기는 것이 아니라 힘든 일도 하느님의 지혜로 잘 이겨낼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점점 더 하느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원래 우리 모두는 이렇게 하느님을 닮는 만큼 행복해지도록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아무쪼록 나자렛 성가정의 믿음과 겸손과 사랑을 본받으셔서 다가오는 새해에도 하느님의 기쁨과 행복이 늘 함께하는 가정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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