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반복되는 것 같지만 새해가 되면 저마다 또 새롭게 생각할 거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나라에서는 최고 통치권자가 연두교서를 발표하듯, 각 교구의 교구장은 사목교서를 발표한다. 우리 교회달력(전례력)으로는 대림 첫 주일이 새해의 시작이니만큼 우리 교구에서도 2013년 12월 1일자로 교구 내 모든 본당에 교구장의 새해 사목교서가 발표되었다. 그 내용인즉 “전례와 선교의 활성화”라는 큰 제목 하에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매진합시다.’이다. 이렇게 정한 까닭은 2차에 걸쳐 교구 공의회를 실시하면서 그 의제가 된 내용 중에 새 시대에 버금가는 복음화를 위한 결의를 실현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교회 안에서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는 “복음화”라는 말뜻부터 많은 반성을 거쳐야 한다. “무엇이 복음이냐?”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무엇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이제민 신부, 마산교구)라는 책에서 잘 서술하고 있다. 간략하게는 마르코 복음서의 시작인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마르 1,1)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복음’을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말씀들이 복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복음이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행동지침으로 삼고 그분께서 몸소 보여주신 행동들을 닮아가려고 하는 것이 “복음화”인 것이다. 우리가 복음화의 삶을 산다는 것은 내 삶의 비중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두고 산다는 말이다. 그런데 “새 복음화”라는 말은 그 첫 복음이, 그리고 그에 대한 복음화가 잘못되어서 다시 새로운 복음과 복음화를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새로운 사태, 즉 급변하는 세상에서 선교와 복음화의 노력을 일깨우고 쇄신하는 수단의 의미로 새 복음화라고 일컫는 것이다.
또 하나, 이러한 새 복음화와는 별개의 주제인 듯한 “전례의 활성화”라는 표현에도 많은 연구와 설명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전례라는 말 대신 주로 “성사(聖事, sacramentum)”라는 표현을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성경에 대한 비중도 성사 못지않게 강조되고 있는 데다, 말씀과 행위로 이루어진 주님의 계시를 신자생활로 드러내는 행위들 중 교회공동체가 공인한 의식(儀式)들을 통칭하여 “전례(Liturgia)”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전례”라는 서양말의 어원인 희랍어 레이투르기아(leitourgia)라는 말은 백성(laos)이라는 말과 일(ergon)이라는 말의 합성어로, 그 낱말이 나타내는 의미는 여러 가지이다. 우선 백성을 위한 공적봉사(2코린 9,12 참조)라는 뜻과 직무수행, 그리고 주님께 대한 공적인 예배(사도 13,2 참조)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
이렇듯 여러 이유들로 신자생활에서는 그 어느 것보다 미사전례를 가장 중요시하여야 하며 자주 미사에 참례하여야 한다. 특히 모든 주일과 대축일에는 의무적으로 참례할 것을 권고하는데, 의무적이라고 해서 최소한의 계명 준수로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내적필요성을 깨닫고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함을 의미한다. 주님의 날에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부활의 영광) 없이 우리는 살 수가 없고, 주님이 계시지 않는 삶은 그 자체로 공허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사목교서의 “전례의 활성화”란 그리스도교인의 삶의 원동력이 되는 전례를 부각시키면서 더욱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로 주님과 함께하는 삶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요즘은 많은 본당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는 뜻으로 각종 악기와 노래, 춤 등이 미사전례에 동원되고 있다. 저마다 표현의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무엇보다 전례는 ‘그리스도의 신비와 참 교회’의 진정한 본질을 생활로 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겠다.(전례헌장 2항 참조) 이를 위해 전례거행은 ① 정확하게(exacte) ② 합당하고 품위 있게(digne) ③ 아름답게(pulchre) ④ 참되게(vere)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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