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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②
나는 행복합니다


김남수(안젤라)|수성성당, 경북대학교병원 봉사자

얼마 전 대구시내 병원의 봉사자 250명과 대구대교구 병원사목부장이신 이태우(프란치스코) 신부님을 비롯한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함께 충북 음성에 있는 꽃동네를 다녀왔다.

희뿌연 안개 속으로 한참 달리다 보니 어느새 따스한 햇살사이로 울긋불긋 물들어있는 가을 풍광이 차창을 통해 나에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계곡의 단풍잎들은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억새들은 바람소리에 장단 맞춰 춤추고, 풍요로운 들녘에 잘 익은 벼들이 수확을 기다리며 한가로웠다. 두메산골에 둥지를 튼 꽃동네는 굽어진 산허리에 커다란 건물들이 우뚝우뚝 서 있고 고개 넘어 멀리 바라보이는 곳에 장애인들의 숙소가 거대한 대학 캠퍼스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한 신부님의 힘으로 이렇게 거대한 꽃동네를 이루어 가정과 사회에서 버림 받은 이와 장애인, 수녀님과 직원을 합쳐 모두 4,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힘만이 아닌 하느님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7년 전 거지 할아버지가 동냥을 해서 자기보다 못한 걸인에게 밥을 먹이는 것을 본 오웅진 신부님이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하느님의 은총임을 깨달아’ 의지 할 곳 없고 얻어 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이들을 위해 주머닛돈 1천 3백만 원을 몽땅 털어 시멘트를 사서 벽돌을 찍고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집을 지어 18명의 걸인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나는 행복합니다’ 라는 장애인 배영희 씨의 시를 영상으로 보게 되었다. 그녀의 해맑은 미소를 보고, 가시에 찔린 듯한 아픔이 가슴속까지 스며들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 왔다.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까워 중증 장애라 수녀님이 대필한 애절한 그녀의 시를 적어 본다.

 

“나는 행복합니다. / 나는 행복합니다. / 아무 것도 가진 것 없고 / 아무 것도 아는 것 없고 / 건강조차 없는 작은 몸이지만 / 나는 행복합니다. / 세상에서 지을 수 있는 죄악 / 피해 갈 수 있도록 이 몸 묶어 주시고 / 외롭지 않도록 당신 느낌 주시니 / 말 할 수 있고 / 들을 수 있고 / 생각 할 수 있는 / 세 가지 남은 것은 / 천상을 위해서만 쓰여질 것입니다. / 그래도 소담스레 / 웃을 수 있는 여유는 / 그런 사랑에 쓰여진 때문입니다. / 나는 행복합니다. / 나는 행복합니다.”

 

그가 중학교를 졸업 할 무렵 몸이 좋지 않아서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쉬는 동안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나른한 증세가 더 심해졌다고 한다. 국방색이 좋아 군인이 되고 싶었고 몸이 불편해 간호사가 되고 싶은 소박한 꿈을 가진 소녀는 아름다운 꿈을 키워가는 친구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이 졸업 할 무렵 겨우 야간 고등학교에 입학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해야 하는 고달픈 삶이 지속 되다 보니 피곤이 밀려오긴 했지만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어느 날 눈앞에 짙은 안개가 드리운 것처럼 갑자기 희미해지더니 세상의 모든 풍경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허물어져 가는 자신의 삶 앞에서 허망하기도 하고, 불안하고 억울해서 얼마나 속울음을 울었을까. 갑자기 찾아온 결핵성 뇌막염으로 실명, 전신 마비로 인한 절망과 좌절의 늪에서 헤매다가 마음의 눈을 뜨게 된 것은 자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무엇을 본다는 것은 눈으로 보이는 허상을 보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바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엄청난 시련을 이길 수 있었던 힘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처절했던 고통을 생각하며 진한 삶의 무게를 감내 할 수 있었으리라. 더 이상 죄 짓지 않도록 몸 묶어 주심에 감사하며 ‘무거운 짐 진 자 나에게 오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았을까. 걸어 다닐 수도 없고 기어 다닐 수조차 없는 상황에 처한 자신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꽃동네로 들어오면서 건강 할 때 느끼지 못했던 위안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고, 살아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고 한다. 참으로 의연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가지 않았는가. 말 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생각 할 수 있는 세 가지 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고 조용히 외치는 그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사랑으로 보듬어 주고 싶었다. 전신마비의 그를 위해 다리가 뒤틀린 채 깡충깡충 뛰어 다니는 친구와 뇌성마비의 친구가 떠 먹여주는 밥으로 서른여섯 해의 고귀한 삶을 이어 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보답으로 그녀는 아름다운 자신의 시를 읽어 주곤 했다고 한다. 부족한 부분을 배려와 사랑으로 채워 나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행복을 보았다. 내 눈으로 볼 수 있고, 내 손으로 밥 먹을 수 있고, 자신의 발로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가진 것 많은 나는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해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병원에서 환우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내가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픈 그들을 통해 그들과 함께 치유 받고 감사함을 느끼며 내 영혼이 맑아질 수 있도록 자신을 담금질해서 행복하고 아름답고 보람된 삶을 갈무리하고 싶은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행복한 삶이란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며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 내 십자가가 제일 가벼워서 아주 행복한 사람이라고 최면을 걸면서 살고 있다. 그러면서 오늘도 ‘나는 진정 행복합니다.’라고 되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