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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음으로 세상보기
복음의 기쁨


박석재(가롤로)|신부, 교구 사무처장

  

우리가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세례를 받고 몇 가지 신앙생활의 규범을 지키는 것 이상의 의무를 갖게 한다. 국가의 통치를 대통령이 한다고 했을 때, 그에 못지않게 하느님의 통치를 현실 안에서 받아들이는 사람이 신앙인이다. 하느님은 우리와 소통수단이 많으신데, 열린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며 사는 사람이 곧 신앙인이다. 하느님의 뜻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하도록 소망하고 바른 방향으로 협력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본분이라 하겠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지난해를 ‘신앙의 해’로 지낸 이유도 2013년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하느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그런 교회가 되기 위해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하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전 세계 교부들의 신앙과 지혜를 한데 모은 역사적 사건이 공의회였다. 성경이 우리의 영원한 교과서라면 공의회 문헌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참고서인 셈이다. 그런데 아직도 공의회가 제시한 교회의 모습을 실현하지 못한 채 공의회 이전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부분이 많다. 한 개인이 변하기도 어려운데 공동체가 변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성령의 특별한 도우심 안에서 이루어진 이 역사적 징표를 우리가 외면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은 여전히 우리의 앞길을 비추는 등대이다.

우리 교구는 지난 몇 년간 제2차 교구 시노드를 개최하였다.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면서 교구가 나아가야 할 길을 함께 고민하였고 그 결과물을 교구장님께서는 소중하게 받아들여 교구의 지침서로 선포하셨다. 또 시노드의 결의사항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해에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모색하였고 올해부터는 교구장 사목지침으로 매년 한 가지 주제의 실천에 교구역량을 집중하기로 하였다.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을 체험하는 전례가 되도록 하자.’, ‘그렇게 얻은 힘으로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꿈꾸며 복음을 실천하고 이웃을 교회로 인도하자.’ 이것이 올해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이 모든 것이 헛된 구호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참여해서 함께 이루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교구 시노드와 교구장님의 사목지침이 교구 차원이라면 전 세계교회 차원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있다. 어렵고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쉬운 설명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시다. 교황님을 주목하자. 우리가 그분처럼 살지는 못하더라도 그분을 우리의 최고 목자로 존경하고 지지하며 함께하면 된다. 간혹 파격적인 분으로 보도되기도 하지만 그분의 말씀과 교황직 수행의 모습은 공의회의 정신 그대로이다.

 

지난해 11월 24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교황님은 당신의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을 우리에게 내놓으셨다. 교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대림 첫 주일에 교구장님이 우리에게 사목교서를 발표하시듯, 교황님은 향후 몇 년간 전 세계교회가 교황님과 함께 가야 할 길을 「복음의 기쁨」을 통해 제시하셨다. 우연히도 올해 우리 교구장님의 사목지침과 같은 주제인 ‘복음화’의 관점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담아 교황님 특유의 소탈하고 명쾌한 화법으로 말씀해 주고 계시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복음화하기 위해 존재한다.

?일회적이 아닌 지속적인 선교를 해야 하고 교회는 선교지향적인 교회로의 탈바꿈이 필요하다.

?이 쇄신의 과정에서 교회는 비록 오랜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복음의 핵심에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일부 관습을 두려워 말고 재고해야 하고 복음화의 요구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서라면 교황권의 분권화도 추진할 것이다.

?자신의 안위를 신경 쓰느라 틀 안에 갇힌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스스로를 다른 이보다 낫다고 여기며 특정한 가톨릭 양식에 완고하게 집착하는 사람들, 다른 이들을 복음화 하는 대신에 남들을 분석하고 분류만 하며, 화려한 전례와 교리 또는 교회의 특권에 너무 집착하면서 사람들의 요구에 복음이 실제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모습은 선으로 포장된 끔찍한 타락이다.

?지나친 성직주의 때문에 의사결정에서 밀려나 있는 평신도들의 책임을 증대시켜야 한다.

?강론에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훌륭한 강론은 언제나 긍정적이며 언제나 희망을 주고 신자들이 부정의 덫에 갇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복음 선포는 그 자체로 긍정을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 복음 선포는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고 언제나 대화에 열려 있고 인내와 온유, 그리고 심판하지 않는 환대를 담고 있어야 한다.

?현대세계의 도전들과 관련하여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 서 있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교회에게 가난한 이를 위한 선택은 신앙의 요구이다. 교회는 가난하고, 가난한 이를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정치는 비록 흔히 폄하되기는 하지만 여전히 숭고한 소명이고 사랑의 가장 고결한 형태이다.

?자신의 특권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가난한 이들을 침묵하게 하거나 유화시키려는 거짓화해의 시도들에 맞서 교회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드높여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교황님의 권고를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