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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정신건강
스트레스, 과연 무엇이길래….


조근호(토마스아퀴나스)|대구 가톨릭대학병원 정신과 의사

새로이 월간 <빛>의 건강 코너를 맡게 된 대구 가톨릭대 정신과에 근무하는 조근호라고 합니다. 지면으로나마 많은 교우들을 접하게 되어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요즘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 살아가는 게 왜 이리 힘든가 싶습니다. 돈벌이도 어렵고, 사회는 시끄럽고, 이혼율도 점점 증가하고, 석유 값이니 전쟁이니 하는 것도 신경 쓰이고 말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상황들이 쉽게 사그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우리를 더 한숨짓게 합니다. 아마도 이런 정신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정신 차리고 살아 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정신과 의사로서 진료 현장에 있는 저에게 원고 의뢰가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모쪼록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고대하며 집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매일매일 우리가 겪는 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진찰하다 보면, 불안하고 우울한 기분을 호소하시는 분들 가운데 가슴이 답답하시거나, 소화가 잘 안되시거나, 여기저기 아프시거나, 불면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분들에게는 가족간의 불화가 있거나, 금전적으로 손해를 입었거나, 시험을 앞두고 있거나 하는 등의 걱정거리가 있으십니다. 흔히들 이런 걱정거리, 즉 스트레스 때문에 앞서 말한 심리적 혹은 신체적 증상이 생겼다고 말씀하시면서 정신과를 방문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이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실제 정신과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원래 물리학에서 ‘외부적인 압력 혹은 물리적인 힘’ 등의 뜻으로 사용되어 오던 단어가 20세기 초반에 들어 인체에 가해지는 외부적인 사건이나 자극 혹은 자극으로 인한 반응의 의미로 도입된 것입니다. 즉 걱정거리 때문에 신체 질환이 유발된다는 기존의 생각이 스트레스라는 용어로 정립되고 과학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아직 채 100년도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 이러한 스트레스가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아직 불분명한 부분이 많습니다만, 최근 의학적인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숨겨져 있던 많은 비밀들이 조금씩 그 베일을 벗어가고 있습니다.

 

우선 드는 의문은 스트레스는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독특한 현상인가 하는 것입니다.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느냐의 문제는 학문적인 입장에서 결론을 내기 어렵지만, 동물이 스트레스를 받는지 아닌지에 대한 대답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동물을 좁은 공간에 가두어 두거나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면, 체중이 줄고 번식률이 떨어지면서 인간에서와 마찬가지로 호르몬의 변화가 유발됩니다. 즉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에게도 공통적입니다. 동물이건 인간이건 스트레스를 받으면 CRF와 코르티졸 등의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하게 되고, 이는 자율신경계를 자극시켜 신체적인 변화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그러면 왜 생물체에게 스트레스라는 반응이 존재하느냐 하는 궁금증이 또 생깁니다. 괴롭고 질병을 유발하기까지 하는 스트레스 반응이 굳이 생명체에게 필요한가 하는 의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인간들끼리 갈등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왜 걱정거리에 대한 반응으로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고 그 영향으로 신체적인 질병까지 발생하게 만드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증가하는 물질이 스트레스 호르몬만은 아니었습니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물질로 널리 알려진 엔도르핀 또한 스트레스 이후에 증가하는 것이 최근 알려진 재미있는 사실입니다. 자극을 즐겁게 받아들이라 이거죠. 또한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인한 자율신경계의 변화가 사실은 스트레스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체내에 저장되어 있던 에너지를 꺼내서 이용하도록 하는 데 원래의 목적이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하면 일에 대한 집중력이 증가하고, 외부 자극에 대한 대응능력이 증가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힘든 걱정거리 때문에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라는 반응은 단순히 해롭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아! 스트레스 받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그 스트레스 요인을 극복하기 위한 우리 내부의 대응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힘든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하라고 하느님이 인간에게 선물하신 일종의 내부 신호인 것입니다.

 

하지만 신호를 받고 가만히만 있으면 안되겠지요. 가만히 있으면 알아차릴 때까지 더 강한 신호가 올 것이고, 이것은 질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외부 자극에 대해 재빨리 대응하고, 강력한 스트레스 신호 때문에 놀란 우리 몸을 편하게 풀어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혹자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잠을 잔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고, 노래방에 가서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부른다는 분도 계시더군요. 그 외에도 과도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명상, 음악 감상, 근육이완 체조, 요가와 같은 스트레칭, 라벤더와 같은 향기 요법 등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정신과에서는 스트레스 정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기도 하고, 정신과적 면담을 시행하기도 하고, 생리적인 반응을 조절하는 약을 처방해 드리기도 합니다.

 

지금 현재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하시는 많은 분들, 스트레스에 담긴 오묘한 인체의 신비에 대해 되새기면서 스트레스를 즐기심이 어떠실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