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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통독피정 10차수를 마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남희정(희정 데레사)|수녀, 대구대교구 사목국성서사도직

속도에로의 강요

지금 이 시대의 특징 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속도’를 꼽고 싶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든 것이 자신의 속도감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 정신없이 달리고 있고 그와 동시에 잠시라도 멈춰 서있는 시간을 어려워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요. 우리의 신앙생활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힐링’, ‘멘토’가 대세어가 된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빠른 힐링과 멘토를 찾아 헤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영적인 것처럼 보여도 공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라.”(시편 46,11)

영적여정에 빠른 길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 속에서 자신의 어려움을 받아들이며 스스로 자신을 찾아가고 하느님을 만나는 길을 함께 걷고 싶은 마음에 신부님(성서사도직 담당 박상용 요한 신부님)과 함께 1년에 걸친 성경통독피정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피정 방식은 한 시간 정도의 길잡이와 수녀원 저녁기도를 포함한 기본적인 공동기도 이외에 홀로 성경을 읽는 것. 사막 한가운데를 걷는 듯한 밋밋함을 견디어 내면서 조용히 성경을 읽는 가운데, 아니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바람, 지진, 불이 아니라 조용한 침묵 가운데 엘리야에게 나타나신 하느님(1열왕 19,11-13 참조), 그 하느님을 말씀 안에서 만나는 여정에 많은 이가 함께 하기를 원했습니다. 1박 2일씩 10차수에 걸쳐 역사 순으로 구약과 신약을 다 읽을 수 있도록 송재준(마르코) 신부님의 도움을 받아 범위를 배정하고, 길잡이 강사를 섭외하고, 용감하게 베네딕도 영성관에 10차례를 예약을 하고 나니 곧바로 두려운 맘이 따라왔습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신부님과 함께 9일 기도를 하며 피정을 준비했습니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히브 4,12)

성경통독피정을 진행하면서 놀라웠던 점은 각자 여러 경로를 거쳐 오신 분들이 침묵하며 잠심하는 모습, 시간과 질서를 척척 지켜나가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신부님과 제가 오리엔테이션 시간 외에 침묵하라는 말이나 다른 주의사항을 이야기 하지 않아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말씀이 우리를 침묵으로 이끄심을, 그리고 말씀이 사람의 말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힘이 있음을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보며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차수가 거듭될수록 꾸준히 오시는 분들에게서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그들의 내적인 힘과 영혼의 생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열 번을 진행하는 동안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참가자들이 적을 땐 힘이 빠지기도 하고, 찬양시간을 넣어 달라고 하거나, 공동 성체조배때 음악을 틀어달라고 하는 분들이 있을 땐 갈등이 생기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의 취지대로 하느님 말씀만 붙들고 진리를 찾는 여정을 고수하기로 했지요. 때때로 별미를 먹긴 하지만 매일매일 살게 하는 것은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밥이듯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은 어떤 감성을 자극 하는 것들이 아닌, 그렇게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말씀이라는 확신으로요.

 

“말씀은 읽는 이와 함께 자란다.”(성그레고리우스 대교황, 에제키엘서 강해)

성경통독피정을 진행하면서, 그리고 10차수를 다 마치고 나서 많이 듣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10차에 다 참여하면 성경을 한 번 다 읽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한 번 다 읽는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열 번을 다 오신 분들도 처음부터 기쁨에 넘쳐서 피정을 오시진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일단 해보자는 맘으로 꾸준히 오다 보니 ‘내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나를 읽고 있음’을 문득 발견하고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는 귀한 체험들을 들으며, 함께 하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말씀은 읽는 이와 함께 자란다.”고 합니다. 읽고, 묵상하고, 기도한 말씀은 삶 안에서의 실천을 통해 더 잘 알아들을 수 있고, 그 말씀이 자라면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내 안에서 점점 커지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새해에 다시 말씀 읽기에 도전해 봅니다. 그리고 이 도전에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자,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이사 55,1)

보다 자세한 내용은 성서사도직 카페 cafe.daum.net//biap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