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3 담임을 오래하다 보니 2월은 제겐 늘 ‘이별의 달’이라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짐을 맛보는 달입니다. 하지만 이번 해는 1년간 같이 지낸 우리 학년 아이들과 같이 2학년에 진급하게 되어 이별의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올 2월은 편안하게 제게 다가옵니다. 사실 제게 1년간 행복감을 줬던 우리 반 아이들과 다 같이 한 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학년이 바뀌면 ‘누가 제 반이 될까?’ 라는 궁금증과 기대감도 큽니다. 그리고 올해보다는 더 나은 교사가 되기 위해 제자신의 여러 면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도 갖고 있습니다.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까?, 뭘 가르치는 선생이어야 할까?’ 사실 가르치는 길을 20년 가까이 걸어왔지만 해가 가면 갈수록 그 답은 더더욱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지적인 부분이야 제가 더 열심히 준비하고,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한다면 더 나아지겠지만 적어도 ‘지적으로는 최우수생이지만 사회성이나 인성면에서 열등생’은 사회에 내놓지 말아야 한다는 개인적 교육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제게 이 질문들은 큰 고민거리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 가지 학급활동들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러 활동 중의 하나로 저는 반 아이들과 지난 10월부터 12월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마니또 놀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교실에서 12월 크리스마스 이브에 성탄 파티를 했습니다. 성탄 파티 그 자체도 즐거웠지만, 아이들이 두 달 동안 자신이 뽑은 어떤 한 친구의 천사가 되어 꾸준히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준 것이 참 잘한 일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어 더욱 뿌듯했습니다.
남자 아이들끼리 ‘마니또’가 제대로 되겠냐는 일반적 편견을 깨고, 행사가 끝난 후 많은 아이들은 학급일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놓았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좋았고, 누가 날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니 행복했다.”, “너무 의외의 친구가 날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마니또의 손편지를 받고 나서 나는 무척 감사했다. 이 편지는 나에게 오랫동안 간직할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이런 글들을 읽으며 저는 타인을 위해 기도하는 행위가, 감사하다는 말이 얼마나 위대한 힘을 갖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파티의 끝자락에 “우리는!”이라고 외치는 제 말을 받아 일제히 “가족!”이라고 외쳐주는 우리 반 아들들 덕분에 저의 성탄 자정 미사는 더욱 따뜻했습니다.

2014년 새해 첫날 우리 교황님께서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올 한 해 가족구성원들끼리 많이 해야 하는 단어 세 개를 제시하셨습니다.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여기서 이 단어들은 아래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교황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부탁합니다.”라는 말은 가족 구성원 서로를 존중한다는 의미,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미,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자신의 잘못을 깨달음을! 새해 첫날 뉴스를 보던 저는 이 말들을 메모해 두었습니다. 정말 가족 구성원이 이런 말들만 많이 한다면 가정은 저절로 행복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방 컴퓨터에 이 단어들을 써서 붙여놓았습니다. 올 한 해 집에서 이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며….
겨울 방학 중 금요일 저녁엔 “다독이(학력 부진아) 야간수업”을 하고 있던 제게 10년 전 제자 두 명이 방문했습니다. 전화로 뭐 하시느냐고 묻기에 “밥도 못 먹고 수업하고 있다. 배고파 죽겠네. 너희끼리 맛난 것 먹고 있으니 좋으냐?”라며 장난스런 말을 건네는 제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긴 이 두 명은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밥 버그와 음료수>를 20개 정도 들고 와서 저와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줬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맛있게 그 밥을 먹으며 우린 지난 추억의 자락들을 더듬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두 명 다 1학년 땐 공부를 거의 하지 않고 지내던 아이들로 그 중 한 명은 제게 많이 맞았다며, 정말 그 당시 선생님 힘이 너무 셌다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연이어 그 덕에 지금 이렇게 자기가 제자리에 설 수 있었다며 고맙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 당시 벌 설 때 만약 조금 더 빨리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했더라면 안 맞았을 텐데, 자존심 때문에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저는 10년 전 그날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정말 미안했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 줄걸. 그 자존심도 헤아려 볼 걸.

저는 학교에서 교사는 학생들의 부모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집에 계신 부모님들보다 저희들이랑 함께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습니다. 또 대부분 교사들이 담임을 맡으면 자기반 학생을 애지중지 하십니다. 다른 교사에게 꾸중을 듣고 있으면 마치 제 아이가 다른 집 부모에게 꾸중을 듣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주는 상처도 만만치 않습니다. 교사들 역시 학생들에게 의도하지 않은 생채기를 낼 때도 많습니다. 저는 학교도 또 하나의 가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올 한 해 학교에서, 학급에서 이런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죄송합니다. 미안하다.” ♥ “감사합니다. 고마워.”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이런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자고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아마 착한 우리 아들들은 이 학교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주리라 생각합니다. 올 한 해는 작년보다 조금 더 행복한 학교와 학급이 될 수 있기를 자비로우신 우리 주님께 기도드리며 이 글을 마칩니다.
* 이유정 선생님은 계산주교좌성당 신자로,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무학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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