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새로운 노래를 주님께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
-1827) 교향곡 제9번 〈환희의 송가〉


박수원(프란치스코 하비에르)|교수, 오르가니스트

  

우리가 지나간 일을 돌이켜 볼 때, 좋았던 일들이 먼저 머리에 떠오르곤 한다. 남자 서넛이 모여 술판에서 나누는 군대 이야기나 젊은 시절 자수성가한 이야기, 또 엄마들이 아이를 낳으면서 겪었던 이른바 출산 무용담과 같이 설령 힘든 일이었다 하더라도, 각자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추억으로 바뀌어져서 결과적으로는 좋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를 성경(창세기 5장)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는 사람의 이름을 빌어 무드셀라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과거의 역사 속의 인물이나 사건을 바라볼 때에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체험하게 된다. 가령 독일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했던 베토벤, 그는 어떻게 살았을까? 왠지 모르게 그 때가 지금보다 더 좋았을 것 같고, 더 멋진 공연장에서 정숙한 청중과 빼어난 연주자들이 빚어내는 천상의 하모니가 울렸을 것 같지 않은가? 그러나 당시 사회의 실상과 베토벤에 관한 기록들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상상과는 너무 다르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된다.

우선 19세기 초반 유럽이 그다지 살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남성들의 평균 수명은 서른다섯 살 정도였고 산업혁명에 즈음하여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가에 들어서기 시작한 공장에서는 별 대책 없이 폐수를 내보내 강물을 오염시켰으며, 겨울은 습하고 추운 데다가 거리의 마차들은 간혹 보행자를 치어 죽이기도 할 정도로 위험했다고 한다. 베토벤의 일상적인 삶도 그다지 매력적이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직업상 상류층 사람들을 자주 만났던 탓에 의상과 구두는 최고의 명품으로 번듯하게 챙겼지만 남들 다 자는 한밤중에 곡을 쓴다고 마룻바닥을 쿵쿵 울리며 돌아다니는 통에 층간 소음의 원흉으로 낙인 찍혀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집을 옮겨 다녀야 했다. 감수성을 예민하게 하기 위해서 담배를 피우고, 천천히 와인을 마시면서 정신의 밑바닥부터 깊숙이 취하는 것을 즐겼다고 하니 건강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늘 위장병으로 고생했고, 스물여섯 살 되던 해부터 귀가 조금씩 들리지 않다가 마흔네 살이 되면서 청력을 거의 잃어버릴 지경에 이른다.

죽기 두 해 전인 1824년 5월 7일 저녁, 베토벤은 마지막 제9번 교향곡을 연주회에서 선보였다. 교향곡에 합창이 곁들여져서 서양음악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기악음악 양식과 성악음악 양식이 합쳐진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유명한 대 작곡가라서 편안하게 일이 진행되었을 것 같지만 실상은 작곡부터 공연장 섭외, 연주자 섭외 모두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했다. 드디어 연주 당일,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귀부인들의 재잘대는 수다 소리와 더불어 누군가가 데리고 온 애완견들이 낑낑대는 난장판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연주가 시작되니 악장 사이에 몇몇 흥분한 청중은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렀고, 그 때마다 사람들은 귀가 들리지 않아 어리둥절해 하는 베토벤을 청중을 향해 돌려세워 인사하게 했다. 마침내 마지막 악장, 성악가는 몇몇 어려운 음을 빠트리기도 하고, 오케스트라는 연습이 부족했던 탓에 어긋나 주춤하기도 했지만 프리드리히 쉴러의 시를 가사로 한 〈환희의 송가〉는 세상에 처음으로 울려 퍼지게 된다.

“… 형제들아, 별들의 저편에는 사랑하는 주님께서 계신다. 수많은 사람들아, 주님 앞에 엎드리겠는가? 온 세상아, 창조주 살아계심을 알겠는가? 하늘의 별들 위에 계신 그분을 찾아보아라! 바로 별들 저편에 하느님께서 계신다.” - 프리드리히 쉴러 〈환희의 송가〉에서

인류 최고의 걸작 중 하나가 너무나도 불완전한 모습으로 빛을 본 순간이었다. 결국 이 연주는 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아 재정적인 실패를 맛보아야 했고, 베토벤은 보기 민망할 정도로 큰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