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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이월이 되면


박영순(엘리사벳)|성정하상성당

이월은 겨울이 마무리 되는 달이다. 두꺼운 옷을 입고서도 지나간 봄을 생각하며 추위를 깎아 내려 놓는다. 봄을 생각하면 이때처럼 마음이 부풀어지는 때가 또 있겠는가 싶다. 겨울을 견뎌온 나무를 유심히 바라본다. 물이 오르고 있고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꽃나무들은 겨울 동안 아기를 밴 여인처럼 꽃망울을 맺기 위해 몸을 부풀리고 있었다. 봄꽃은 혹독한 추위가 있어 더욱 아름답게 피어나는가 보다.

그랬다. 우리들도 꿈을 가질 때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절실한 간절함으로 꾸지 않았던가. 세상에 나를 내보인다는 것이 내 힘만으로 되지 않는다 해도 끊임없는 자신의 갈증없이는 참한 모습을 이루어 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연마하고 애쓰는 노력의 결실이기에 누구라도 정성을 다하는 듯하다.

움트는 이월은 내 가슴도 부풀어진다. 새 봄을 맞으려면 무얼 할 것인지도 생각해 보고 어디로 가볼까도 생각해 보며 겨울옷을 서서히 세탁하고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청소도 해 보고 게을리 한 화분들도 손질하며 봄을 기다린다. 해마다 이즘은 늘 마음이 부풀고 어디선가 반가운 사람들이 나를 찾아올 것만 같은 그런 설레임을 주었고 그저 행복한 세계가 나를 이끌어 갈 것 같은 꿈길을 스스로 만들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새봄에 꽃을 피우는 꽃나무인들 나처럼 마음이 부풀지 않았으랴. 새봄엔 새 사람이 새로 핀 내 모습의 꽃을 보아줄 것이라는 기대에 그 무서운 찬바람도 맞설 수 있었다. 온 몸으로 땅속의 온기를 뿜어 올리며 몸을 부풀려 냈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이월이면 사람도 꽃도 그 모양대로 보여 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새삼 느끼게 된다.

이월이 되면 방앗간에서 갓 나온 시루떡이 먹고 싶어진다. 금방 찐 시루떡에서 올라오는 김을 들이마시며 고사리 손으로 조금씩 뜯어 먹었던 어린 시절의 음력 이월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지난해 농사 지은 쌀로 떡을 하고 다가오는 한 해의 풍년을 기약하는 의식일 수도 있고, 봄이 오면 일을 많이 하기 위한 힘의 충전일 수도 있겠다. 동네 사람들끼리 새봄을 맞이하기 위한 하나의 축제였는지도 모른다. 묵은 것보다 새 것에 대한 기대감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며 기쁨으로 맞고자 하는 그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봄은 우리 신앙인에게 부활의 징조를 맛보게 하는 체험 같았다. 겨울은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 같았고 봄은 예수님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꽃들의 향연으로 눈부셨다. 꽃이 피기에 이른 나무들은 연록의 새싹으로 가지 위에 나부낀다. 그 틈으로 비춰지는 색색의 꽃을 보고 아름다워 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겨울을 이겼다는 것은 마라토너가 완주하여 월계관을 받는 것처럼 우린 새봄에 화관을 받는 것이리라.

이월이 되면 죽은 나무가 아니라면 모두가 축축한 몸으로 부풀어져 겨울을 견딘 만큼 맞갖은 모습으로의 새로운 탄생을 꿈꾼다. 누구라도 겨울을 이긴 사람이라면 작년과는 다른 새봄의 새사람으로 탄생하고픈 꿈을 꿀 것이다. 희망이 있는 한, 새로운 탄생 그것은 부활이다.

나 또한 꽃과 같이 꿈꾸고 있는 겨울의 막바지 이월이 되면, 작은 숨결이지만 삶의 힘이 되는 움직임으로 마음을 부풀리고 있을 것이다. 이월의 추위가 때로는 한겨울보다 더 힘들게 나를 엄습해 온다 해도 이월의 문턱을 넘어야만 오는 봄을 겨울로 밀어내진 않으리라. 그 산을, 그 들을, 그 강을 넘어설 수 있는 나의 봄이 되게 해야지. 이월엔 어서 봄이 오도록 겨울을 녹이는 작은 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겨울은 이제 멀리 가야 하고 봄은 이제부터 와야 하는 그 경계가 희미해지는 달, 이월이 되면 봄은 이미 사람들의 마음에 조금씩 내려 앉아 있을 것만 같다. 

 

  * 약력 : 한국수필 등단, 문학예술동화부문 등단, 대구수필문학회원, 영남아동문학회원, 대구가톨릭문인회원, 대구문인협회원, 한국문인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