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공동체 복음나누기 자료제공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053) 250-3082 cafe. daum.net/biap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 루카 2,22-40(또는 2,22-32.)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2장 22절~40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아기의 부모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친 이유는 무엇입니까?(23절)
- 시메온은 어떤 사람입니까?(25절)
- 시메온이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미한 말씀을 다시 읽어봅시다.(29절~32절)
- 시메온은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아기에 대해 뭐라고 예언합니까?(34절) 또 어머니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 합니까?(35절)
- 한나는 어떤 사람입니까?(36절,37절)
- 시메온과 한나는 무엇을 기다렸으며, 또 무엇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까?(25절, 38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성모님께서 아기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셨습니다. 주님 봉헌 축일을 맞이하여 우리에게 예수님을 봉헌하신 성모님처럼 나의 삶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이웃과 나누도록 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210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주님 봉헌 축일 복음묵상 사공병도(베드로)|동촌성당 보좌 신부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노인 한 명을 소개시켜 줍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시메온입니다. 복음은 이 시메온에 대해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을 코앞에 둔 어느 독실한 늙은이의 일상, 그것은 아마도 집과 성전을 반복하는 단조로움의 연속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어느 늙은이의 단조로운 삶은 살기 바쁜 당시의 젊은이들에게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눈에 쓸데없어 보이는 시메온의 단조로운 일상은 동시대의 그 누구보다도 충만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일상 전체가 그리스도의 구원을 기다리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언젠가 성령께 들었던 약속, “죽기 전에 그리스도의 구원을 보리라.”는 약속에 사로잡힌 그는 분명 다른 무엇인가에 매달릴 여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느님을 향한 집중이 오늘 복음이 전하듯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그리스도를 알아 뵙고, 축복하는 영광을 누리게끔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참으로 분주합니다. 마치 바쁘게 살아가야만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고 여기는 듯도 합니다. 이러한 생각의 저변에는 바쁘지 않는것을 무능력함으로 여기거나 게으름으로 오인하는 생각이 자리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어디에서도 “바쁜 사람이 천국을 간다.” 하지 않습니다. “바빠야 행복하다.”는 말도 없습니다. 오히려 잡다한 것에 묶여 분주한 일이야말로 우리에게서 하느님을 잊게 하고, 하느님의 세심한 은총에 민감할 시간을 앗아가며, 하느님과 교감할 수 있는 기도를 빼앗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에게 말씀을 건네시는 성령께 한 토막의 시간을 잘라내어 봉헌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쫓기듯 바쁜 가운데서도 하늘을 우러러 크게 심호흡을 하며 “주님!”이라 조용히 읊조려보시길 바랍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언제나 어김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감실 안 주님께로 차분히 걸음을 옮겨 보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눈에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거나 빈둥거리며 성당만 찾는 게으른 사람으로 보이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모든 것을 바쳐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참된 보화는 우리 밖이 아니라 우리 속 그분 안에 오롯이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2월 9일, 연중 제5주일 : 마태 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복음 5장 13절~16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들은 어떤 존재라고 말씀하십니까?(13절, 14절)
- 소금이 쓸모없어질 때는 어떤 때입니까?(13절)
- 등불은 어디에 놓여야 하며 왜 그렇습니까?(15절)
- 우리의 생활 모습은 어떠해야 합니까?(16절)
-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는 우리들의 구체적인 행동들을 생각해봅시다.(이사 58,7-10 참조)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1독서 이사 58,7-10절을 천천히 읽어보고 그 중 한가지씩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보도록 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21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연중 제5주일 복음묵상 고태권(그레고리오)|동천성당 보좌신부
천주교 신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천주교 신자는 성사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성사라는 말의 어원을 따라 가면 이렇게 됩니다. 성사라는 말의 라틴어는 ‘사크라멘툼’이라는 말인데 이 말의 어원을 따라 그리스말로 이야기하면 ‘미스테리온’이 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잘 아는 영어 미스테리와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다시 말해 ‘성사생활을 한다는 것은 신비로운 생활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신앙생활은 신비로운 생활을 하는 것인지, 신기한 생활을 하는 것인지 분별이 안 될 때가 더 많습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도 없는 성당에서 감실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천주교 신자의 모습은 신비로운 모습입니다. 성당에 오고 가면서 묵주기도를 하는 모습은 신비로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눈앞의 이익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거나,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도로를 무단으로 횡단하는 모습을 볼 때는 신비로운 모습이 아니라 어떻게 신앙인이 저럴 수 있나, 하는 마음으로 신기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의 모습은 신비로운 모습이십니까? 신기한 모습이십니까?
오늘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주 쉬운 비유로 가르쳐 주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너희는 소금이다. 너희는 빛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세상이라는 말을 먼저 사용하신 이유는 우리가 교회 안에서만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는 그런 폐쇄적인 모습이 아니길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사를 마치며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라고 파견을 받아 이리떼가 우글거리는 세상으로 파견되며 복음의 사도가 됩니다. 그러니여러분! 우리가 우선 잘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우리 신앙의 모습은 준비되어 있는 곳에서 뿐만 아니라, 늘 복음의 모습이 구현되기를 바라는 준비가 덜 된 곳이라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드러나게 살아가는 것이 최고이고, 튀어야 산다고 하는데 우리 스승께서는 그렇게 하지 말고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라 하십니다. 성사생활을 하는 신비로운 삶에로 초대 받은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자세는 튀어야 산다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때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보며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천주교 신자인 우리는 신기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에서 주님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신비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2월 16일, 연중 제6주일 : 마태 5,17-37(또는 5,20-22ㄴ.27-28.33-34ㄴ.37.)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27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33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복음 5장 17절~37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완성하러 오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20절)
-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 작은 사람이라 불리는 기준은 뭐라고 제시되어 있습니까?(19절)
- 예수님께서는 옛 율법들 가운데 어떤 것들을 언급하고 계십니까?(21절, 27절, 31절, 33절)
- 각각의 옛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요구는 어떻습니까?(22-24절, 28-30절, 32절, 34-37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 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 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나에게 있어 잘 지켜지지 않는 계명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실천해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64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연중 제6주일 복음묵상 황은모(요한)|반야월성당 보좌신부
아주 어렸을 적에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보면 한 번씩 유혹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직 초록불이 되지 않았지만 차도 오지 않는데 그냥 건널까? 보는 사람도 없는데 괜찮지 않을까?’라는 유혹이었지요. 그런데 한번은 성당에서 교리시간에 ‘혼자 있을 때라도, 그러니까 아무리 보는 사람이 없는 경우라도 나쁜 짓을 하거나 죄를 지으면 안 돼요.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항상 지켜보시기 때문이에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린 마음에 얼마나 뜨끔했던지요.
누가 보던지 보지 않던지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들의 심리가 좀 더 발전되면 계명을 결과론적으로만 지키려는 심리가 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과정이나 속내가 어떻든지 간에 결과적으로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만 잘못된 게 없으면 괜찮다는 심리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여러 가지 계명들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살인을 하지 말라는 계명을 더 발전시켜서 성을 내거나 욕을 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마음으로도 음욕을 품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또 이혼에 대해서도 더 완고하게 반대를 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거짓맹세를 하지 말고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키라는 계명에 대해서는 하늘을 두고 아예 맹세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원래의 율법을 좀 더 완고하게 바꾸시는 듯한 느낌이지요. 그런데 계명을 그저 더 완고하게 지키라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이는 계명 준수의 기준과 시선을 바꾸라는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하느님의 기준으로 판단하라는 것이지요. 남의 눈에 보이는 것만 잘 지키면 된다거나 과정이나 동기야 어떻든 드러나는 결과만 나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은 하느님이 배제된 사람들만의 기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생각과 마음까지도 모두 꿰뚫어 보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우리 모두는 순수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하느님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계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 계명 실천을 위한 행동 하나하나가 바로 참된 사랑의 계명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2월 23일, 연중 제7주일 : 마태 5,38-48.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복음 5장 38절~48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옛 율법의 어떤 것들을 언급하고 계십니까?(38절,43절)
- 오른뺨을 치는 이에게,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는 이에게, 달라는 자와 꾸려는 자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39절~42절)
- 원수와 박해하는 자들은 어떻게 대하라고 하십니까?(44절)
-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어떤 분이라고 가르쳐 주십니까?(45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 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기 힘든 누군가가 있는지 생각해 보고 그들을 떠올리며 주모경 한 번을 바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6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연중 제7주일 복음묵상 마성우(세례자요한)|경산성당 보좌신부
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제 마음 속에 원수 같은 사람이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다행히도 원수 같이 미운 사람은 없었지만 받은 상처가 커서 용서하기 참 힘든 몇 사람의 얼굴은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주님 말씀대로 이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겠나 생각해 보니 참 힘들었습니다. 그냥 안 보고 살 수는 있겠는데 떠올리면 그 때의 상처들이 또다시 떠올라 좋은 마음이 잘 안 생겼습니다. 때문에 아직 속이 좁은 저는 예수님처럼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자신이 없고, 그저 안 미워하려고 노력하면서 주님 도우심에 희망을 두는 것이 최선이 아니겠나, 하면서 살고 있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오늘 복음말씀은 저한테도 참 불편하게 들리는 말씀이지만 제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늘 기억하게 하고 겸손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불가능한 것을 시키시는 분이 아니시고 직접 사람이 되셔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가르치시고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가르침을 완전히 따르기에 아직 갈 길이 한참 먼 저 같은 사람들도 지금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예수님 말씀을 믿고 꾸준히 수련하면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이 어려운 일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그 원수를 위한 일도 되지만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미움이나 분노나 원한 같은 것을 품고 사는 것은 마치 아름다운 꽃밭에 제초제를 조금씩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악한 마음을 계속 품고 살면 암이나 고혈압, 위궤양처럼 육신이 고장 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더 안 좋은 것은 이런 미움이나 분노가 눈에는 안 보이지만 분명히 우리 영혼을 점점 오염시키고 말라 죽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떤 방법으로 무슨 대가를 치르든지 간에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지만 하느님의 완전하고 무한한 사랑에 잠길 수 있습니다. 천국에 가려면 지옥의 가장 작은 흔적까지도 아낌없이 던져 버려야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답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바뀔 일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랑의 계명 앞에서 타협하거나 협상하려는 마음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합니다. 다만 주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하루 아침에 그런 성인이 되라는 요구는 아닙니다. 일생을 거쳐 조금씩 천천히 그런 사람으로 변해가도록 하루하루 할 수 있는 만큼 힘껏 노력하라는 주님의 명령으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저는 살아가면서 용서가 힘들 때면 부족한 저 자신을 늘 용서해주시고 계신 주님을 생각합니다. 저처럼 형편없는 사람을 참아주시고 기다려주시고 키워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저도 당장은 속이 좁아서 용서가 힘들지만 꾸준히 노력해서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원수가 예뻐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이 고맙고 그분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님 안에 모여 영원히 살게 될 때, 거기서 제가 아파하고 용서하기 힘들어 했던 사람을 만나게 되면 주님의 사랑으로 미움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서로 한바탕 웃으면서 인사하고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임을 믿고 삽니다.
아무쪼록 오늘 복음말씀과 함께 자기가 그어놓은 선에서 벗어나시고 마음을 활짝 열어서 주님의 무한한 용서와 사랑의 가능성을 닮아 가는 하루가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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