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만물이 하늘과 땅이 뿜어대는 맑은 물방울들과 만나 새 생명을 토해내는 3월은 제겐 늘 연록의 빛으로 살아 꿈틀거립니다. 새벽 일찍 기지개를 켜며 베란다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는 풀과 나무들은 하루가 다르게 연록의 치장을 조금씩 더 넓히며 세상이 겨울로부터 탈출했음을 확인시켜줍니다. 그래서 그 많은 옛 시인들은 “춘흥(春興)”을 이기지 못하고 산으로 들로 세상 구경을 다녔나봅니다. 그런데 이 꿈같은 계절을 창밖에 두고 학교에서 교사로 사는 저희들은 십대 “청춘(靑春)”들의 눈을, 몸을 억지로 잡아 당겨 책상에 놓인 활자들의 세상으로 붙들어 맵니다. ‘너희들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해가면서.
요즘 사회가 다 아는 그 힘든 고시 중의 하나가 “교사임용시험”입니다. 갈수록 학생들의 수는 줄어들고 있는데 교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매년 늘어만 가니 임용고시는 해가 가면 갈수록 더 치열해질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고3 입시지도를 하다보면 여전히 교사가 되고픈 학생이 많습니다. 우리 학교는 고3 교사들이 학교에서 면접 준비를 시킵니다. 사범대를 지원한 한 학생에게 “어떤 교사가 되고 싶냐?”라고 물었더니, “학생들을 잘 이해해주고 눈높이를 맞추어 그들의 입장에 서서 말하는 교사가 될 것”이라며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펼쳤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교사들이 이 학생처럼 학생들을 위해,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며 살겠다고 결심하고 교단 위에 섰습니다. 그러나 교단에 선 우리들은 얼마가지 않아 이 “청춘(靑春)”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자신을 직면하게 됩니다. 규칙준수를 외치는 자신을 마주보게 됩니다. “학교”라는 전체의 틀 속에선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교육이 안 되는, 또는 그런 교육을 못 하는 현실 속에서 교사들은 조금씩 슬퍼져갑니다. 그래도 매년 교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쉼 없이 세상 속으로 쏟아집니다.
음력설이 있던 지난 2월, 여러 제자들의 새해 인사를 받으며 교사로 살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꽤 오래된 제자라 장가를 가 자식을 둔 녀석들도 있었고, 또 몇몇은 장가간다고 청첩장을 들고 인사를 왔습니다. 그들과 만나고 돌아온 뒤 앞으로 10년 뒤, 20년 뒤에도 이들과 만날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방금 헤어진 한 녀석이 문자 한 통을 보내왔습니다. “더 늙지 말고 지금처럼 그대로만 사십쇼. 제 아들 무학고 갈 때까진 그대로 계셔야 합니다. 그때까지 계셔야 우리 아들도 쌤한테 제대로 배울 거 아잉교? 오랫동안 건강하이쇼.” 몇 번을 반복해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또 행복해졌습니다.
얼마 뒤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서울에서 명절 쇠러 내려온 김에 아내와 아들과 함께 선생님을 만나러 학교 기숙사까지 왔는데 못 뵙고 올라가게 되어 못내 아쉬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며 “서울에 한 번 오셔서 꼭 저희 집에 주무시고 가십시오.”라는 제자 녀석의 말 선물을 받으며, 보지 않았는데도 이미 본 것처럼 마음이 한껏 따뜻해졌습니다. ‘너희들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이라고 공부해야 하는 당위성을 외치며 엄하게 규칙준수를 말하는 제 자신에게 가끔씩 화도 났지만, 이런 교육의 현실 속에선 이럴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해가면서 살아가는 제게 그래도 이렇게 고맙다고 인사해주고 믿는다고 말해주는 이들이 있어 ‘선생님’으로 사는 삶이 큰 기쁨으로 제 안에 자리잡습니다.
몇 주 전 3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선생님’으로 사셨던 선배교사 한 분이 정년퇴임을 하셨습니다. 형설반 앞 사진 속에선 젊은 시절 말쑥한 청년의 모습으로 여전히 서 계신 대선배의 모습은 이 교정 안, 어느 교실에도 지금은 뵐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비워줘야 하는 자리가 ‘교사’입니다. 30년이 훨씬 넘는 시간들을 한결같이 아침만 되면 꼭 가야만 했던 이 정든 교정을 똑같은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이 되어도 예전처럼 찾을 수 없는 선배님의 마음이 되어보니 왠지 서글퍼집니다. 혹시나 오늘 아침에 습관처럼 무심결에 이 교문 앞에 발들이 선생님을 이끌지 않으셨는지 염려도 됩니다.
눈을 감으면 / 어린 때 선생님이 걸어오신다. / 회초리를 드시고 // 선생님은 낙타처럼 늙으셨다. / 늦은 봄 햇살을 등에 지고 낙타는 항시 추억한다. / 옛날에 옛날에 // 낙타는 어린 시절 선생님처럼 늙었다. / 나도 따뜻한 봄볕을 등에 지고 금잔디 위에서 낙타를 본다. // 내가 여읜 동심의 옛 이야기가 / 여기저기 / 떨어져 있음직한 동물원의 오후. //
문득 이한직님의 “낙타”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어린 시절 자신의 삶을 회상해보면 누구나 만날 수밖에 없는 스승의 모습을 떠올리는 시인의 마음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가까이 와 닿습니다. 그리고 이젠 자리를 비우신 그 선배님이 제 눈앞에서 늙은 낙타와 하나가 됩니다. 언젠가 그 자리가 제 자리도 되겠지라며 혼잣말도 되뇌어봅니다. 슬픔 하나가 제 곁에 자리잡습니다. 그래도 저는 ‘선생님’이라 행복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교단에 설 꿈을 꾸며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 중 몇 명은 여러 해 임용시험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전 정말 교단에 서고 싶습니다.”란 간절한 외침을 담은 커다란 눈망울로 저를 한없이 쳐다보던 그들을 떠올리며, 이 귀한 자리에 서 있는 우리들은 더더욱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제 스스로에게 세차게 채찍질을 합니다. 모든 힘을 다 소진한 뒤 말없이 뒷모습만 남기고 떠나가신 그 선배 선생님을 떠올리며 남아 있는 제 자리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가슴에 되새깁니다.
2014년 올해 우리반 아이들과 저 또한 열심히 1년을 사랑하고 살 것입니다. 일곱 분의 2학년 선생님들과 “파이팅!”을 외치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교단에 서는 것이 너무나 간절했던 그 옛날의 “내”가 첫 교단에 서던 그 떨리고 설레던 첫 마음으로 저는 오늘도, 내일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먼 훗날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그리고 이 성직(聖職)을 갈망하는 수많은 젊은 청춘들에게 미안하지 않게…. 늘 처음처럼! 파이팅! - 3월을 시작하며 제 자신에게 바치는 다짐
* 이유정 선생님은 계산주교좌성당 신자로,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무학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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