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번 영성수련을 시작하면서 별다른 기대도, 그리고 각오도 없었다. 거룩한 독서는 이미 해봤고, 해오고 있었던 것이라서 거룩한 독서를 통한 영성수련이 나에게 큰 변화와 은총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단지 단순한 각오가 있었다면 ‘그냥 가서 한 달 동안 잘 버티자.’ 정도였을까? 그런데 나의 이런 생각과 달리 하느님께서는 이번 영성수련을 통해 너무나도 큰 은총을 허락하셨다.
영성수련 초기에는 나의 지난 삶의 모습들을 조명 받았다. 말씀 안에서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기 바쁘고, 남과 나를 비교하며 남이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을 느끼며 그것을 채우기 위해 아등바등거리는 나를 보았다. 그래서 나는 이 열등감을 없애줄 다른 것들을 추구하기 바빴지, 정작 이 길을 걸어가면서 제일 소중한 ‘믿음’을 잊고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께서는 말씀 안에서 지속적으로 나에게 ‘믿음’을 요청하셨다. 나는 이 요청으로 앞서 언급하였던 나를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여 믿음을 잊고 무감각하게 하던 내 안의 장벽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런 발견과 동시에 나는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였다. 이는 내가 책으로만 알고 말하던 사랑과 무게가 다른 사랑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믿음을 두지 못하고 다른 것에 매달리는 나를 떠나거나 외면하지 않으셨다. 내가 당신 마음에 상처를 주어도 그분께서는 당신 상처는 생각하지도 않으시고 오히려 나를 걱정하시며 끊임없이 부르고 계셨다. 이런 그분의 사랑이 내 가슴 속에 닿는 순간 나는 고개를 들고 성체를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었고, ‘왜 이렇게 당신께 상처를 준 저를 사랑하십니까?’라고 끊임없이 물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내가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너무 크게 느껴져 예수님께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라고 청하는 베드로의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참을 울었다. 울음을 멈추고 나니 그분의 사랑에 너무나도 감사드리는 마음과 기쁨이 솟아났다. 그리고 이렇게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 나의 ‘희망’이 되어 주시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처럼 나는 내가 정말 믿음과 희망을 두고 사랑해야 할 분이 예수님임을 깨달았다. 아니,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그분이 바로 나의 믿음, 사랑, 희망 그 자체이심을 깨달았다. 이렇게 나는 내 안에서 부활 사건이 일어났음을 느꼈다. 예수님께서는 그동안 내 안에서 예수님을 가두던 무덤에서 나오셔서 나의 믿음, 사랑, 희망, 그리고 기쁨이 되어 주신 것이다.
이번 수련기간 동안 내 안에서 일어난 부활 사건은 정말 예수님께서 늘 나와 함께 하시는 ‘살아 계신 분’이심을 알려주었다. 단순히 머리에 머무시는 분도 아니고, 책 속에 머무시는 분도 아니며, 다른 이들 안에 머무르시는 분도 아닌 내 안에서 살아 계신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분께서는 정말 나의 삶을 이끌고 계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기쁨을 나의 개인적인 만족에 국한시키지 않고 전하기를 요청하셨다. 내가 느낀 그분의 사랑, 그분의 생명력, 그분이 주시는 믿음, 희망, 기쁨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전하는 것이 기쁜 소식, 곧 복음을 전하는 일임을 느꼈다. 정말 부활하신 분께서 우리 안에서 살아계시며 우리에게 믿음, 사랑, 희망, 기쁨을 전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전하는 일, 바로 이 일을 위해 당신께서는 나를 도구로 택하셨고, 이를 위해 이번 영성수련을 통해 나에게 이런 체험을 주셨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그분의 섭리에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세상 안으로 가서 그분의 도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씀’에 다가가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말씀을 통해 받은 이 은총의 기쁨을 늘 기억하며 전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 원천이 되어준 말씀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말씀에게로 다가가고 말씀 안에 머무는 삶을 살 때, 나는 세상 안에 있지만 세상에 동화되지 않으면서 예수님의 도구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말씀으로 살아갈 때, 곧 말씀을 가까이 하며, 말씀을 듣고, 말씀을 실천으로 살아갈 때, 예수님께 대한 나의 믿음, 사랑, 희망이 간직되고, 이를 통해 세상의 어떤 즐거움이 아니라 예수님께 속하게 되며 예수님의 도구로서 이 세상 안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정말 이번 영성수련을 통해 나의 나약함만을 바라보며 그것에 매달리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시고 불러주신 살아 계신 예수님을 믿으며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언제나 말씀을 가까이 두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말씀은 살아계시며 나에게 말씀을 건네시며 나를 이끄시는 나의 믿음, 나의 사랑, 나의 희망이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