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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렉시오 디비나 영성수련을 마치고 ③
성경은 “집어서” 읽는 이와 함께 자란다


이우석(요셉)|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원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나에게도 영성수련을 해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솔직히 육체적·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던 상태라 큰 기대보다는 푹 쉬러 간다는 생각이 더 컸다.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가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었고 학교에서도 나름대로 지속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떤 목적이나 각오를 갖고 임하기보다는 그저 그냥 하던 대로 하되, 남는 시간에는 책이나 좀 읽고 쉬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영성수련에 임했다.

영성수련 초반에는 늘 하던 대로 거룩한 독서의 순서에 따라서 1시간이라는 정해진 시간에 충실하고자 했다. ‘성령청원기도’에서부터 ‘세밀한 독서’, ‘묵상’, ‘기도’, 그리고 ‘실천’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시간을 갖고 머물고자 했다. 환경의 침묵과 내적인 침묵이 함께 이루어지다보니, 나름대로 느끼는 것도 제법 많았고 빈 종이에 적을 것도 많았다. 그래서 하루에 주어진 거룩한 독서를 다 마치고 나서는 흐뭇하게 해놓은 결과물들을 보며 스스로 만족감을 느낄 때도 많았다.

그런데 무언가 허전했다. 여백은 채우고 있었지만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친히 이끌어주고 계신다는 느낌보다는 내 지성으로, 내가 가진 신학적 지식들과 그동안 귀동냥으로 들어왔던 이야기들을 말씀에 투사해서 얻어낸 결과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스스로 만족은 했을지 모르지만 가슴까지 내려오는 울림은 없었다. 그리고 이런 내 느낌은 매일 적어오던 영적일기에도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말씀에 대한 갈증과 갈망이 영적일기장에도 그대로 표현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말씀에 좀더 깨어있고 그 시간 충실하자는 생각으로 내적·외적인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내적으로는 다시 각 단계들에 충실하되, 특히 ‘성령 청원기도’를 더욱 정성껏 바치고자 했고 ‘세밀한 독서’에서 ‘묵상’단계로 넘어갈 때에도 결과를 도출한다는 생각보다는 말씀이 나에게 건네고자 하시는 바가 무엇일까를 물으면서 거기에 머물고자 더욱 노력했다. 그것이 그저 침묵뿐이라 할지라도 그저 그렇게 말씀 안에서 머물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외적으로는 우선 거룩한 독서를 하는 시간을 조정했다. 전에는 내가 편한 시간으로 거룩한 독서 시간을 계획하고 실천했다면, 이제는 거룩한 독서가 가장 잘 될 수 있는 시간으로 조정해서 실천하고자 했다. 그리고 거룩한 독서의 장소 또한 4시간 모두 성당에서 하는 것으로 변화를 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몸부림을 쳤을까? 서서히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만난 사이처럼 서로 어색해서 한 시간의 그 어색함을 타파하고자 나만 일방적으로 말씀께 말을 걸다가 끝나버렸던 거룩한 독서 시간이었지만 놀랍게도 말씀께서 나에게 말을 걸어오시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조금씩 서로 나누는 대화들이 많아졌고 말씀 안에서 예수님과 내가 만나고 있고 내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내가 감추고 싶어 했던 상처들에게도 말을 걸어오시기 시작하셨다. 부끄러워서, 머리만 아프고 더 복잡해질 것 같아서 내 마음 속 깊숙이 감추어 두었던 것들…. 때로는 고해성사를 보면서도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로 피하기 바빴던 그 상처들에 예수님께서는 말을 걸어오셨다. 그리고 나 역시 다가오시는 예수님께 용기를 내어 조금씩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 드렸다. 나의 작은 용기에 베풀어주신 예수님의 치유는 실로 놀라웠다. 때로는 영적동반 신부님의 입을 통해서, 때로는 그날 할당된 말씀을 통해서, 때로는 산책 중에 말씀의 비추임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내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셨고 그것이 아물어 새살이 돋도록 해주셨다.

말씀 안에서 예수님과 대화를 하게 되자, 기도는 머릿속에서 굳이 짜내지 않아도 저절로 나올 때가 많았고 기도가 자연스럽게 되다 보니, 실천으로 옮기고 싶은 열망이 불타오르기 일쑤였다. 내 안에서 말씀을 살고 싶다는 열망이 샘솟아 오름을 여러 번 느꼈다. 이렇게 예수님과 말씀 안에서 대화하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했다. 영적동반 신부님께서 언젠가 말씀하신 것처럼, 자주 만나는 사람끼리는 할 말도 많다는 그 말씀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제야 왜 영성수련이 중요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말씀의 소중함, 결국 내가 죽을 때까지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말씀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시간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말씀처럼 나에게 이 시간은 말씀께서 사람이 되시어 진정으로 내 곁에 계셨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시간이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계셨던 말씀을 잊고 살았던 지난날의 과오를 깨닫고 내 삶 안에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나와 함께 계시면서 함께 아파하셨던 그분을 체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분명히 영성수련에 임하기 전의 나의 모습과 지금 나의 모습은 많은 부분에서 달라져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 무엇보다도 ‘말씀’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을 내 삶의 변두리가 아니라 중심에 놓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시종직·부제품·사제품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세상의 지혜를 다 담고 있는 많은 서적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집어 들고 읽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셋째,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이제 말씀을 삶으로 살고 싶다는 열망이 내 안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감동, 울림, 말씀의 부추김을 지속으로 이어가기 위해서 실천적인 대안들을 마련하여 이행해 나갈 생각이다. 집에서, 본당에서, 그리고 못자리에서도 이 작업을 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내가 시간을 내어서 거룩한 독서에 투자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시간을 돌려 드린다는 생각으로 거룩한 독서에 임할 것이다. 대부분의 방학생활이 스스로의 게으름과 나태로 말미암아 거룩한 독서를 지속하지 못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각오로 거룩한 독서에 임할 것이며 실패하더라도 이 수련기간 동안의 작업들과 영적일기를 떠올리며 거룩한 독서를 시도할 힘을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이 영성수련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나에게 듣고자 하셨던 진정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한 달간의 영성수련 동안 내게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말씀을 상기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