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남자들은 왜 말을 안 듣는 거죠? 왜 늘 자기 마음대로죠? 진정으로 저를, 아이들을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요? 저는 우리가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저희 집에 큰일이 생겼어요. 남편이 저랑 상의도 없이 사업하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었어요. 단지 빌려 준 것만이 아니라 명의까지 넘겨줘서 친구의 빚까지 다 갚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설상가상 그 친구는 잠적해 버렸고요. 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액수라서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요. 이런 큰일이 생기니까 남편은 술에 의지하고 우리 부부사이는 자꾸만 나빠지고 싸우게 되요. 아이들은 더 말을 안 듣고 밖으로만 나돌며 나쁜 친구들을 만나는 것 같고…도무지 탈출구가 보이지 않아요. 간절히 기도를 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고,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걸까요? 이제는 가정을 유지하고 지키는 일조차 의미없이 느껴지고 만사가 다 귀찮고 이 모든 일을 감당할 자신도 없고 그냥 죽고만 싶네요.…도와주세요.
‘찬미예수님’이라는 인사가 쉽지 않군요. 얼마나 힘드시겠어요…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잠시 눈을 감고 자매님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아니 위기 앞에서 이런 지면 상담이 과연 얼마나 위로가 될지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우선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을 해보기로 해요. 단 몇 초라도 좋으니 나 자신의 긴장과 걱정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나서 함께 고민해 봅시다. 이 난관을 극복하고 이겨내고 버텨내기 위해서 일단 지금의 어려움들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해요.
자, 지금 자매님과 가정에 닥친 위기들을 하나씩 나열해보는건 어떨까요? 예를 들면, ① 남편이 빚을 졌다. ② 부부사이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③ 아이들의 문제. ④ 삶의 의미가 없고 죽고 싶은 생각뿐이다. 이렇게요. 참 어려운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나열한 후 써 놓은 문제를 하나씩 들여다봅시다. 그 가운데 지금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물론 모든 것들이 얽혀서 복합적으로 힘들지만 그냥 그렇게 치부해 버리면 지금 이 어려움을 견뎌내기가 더 힘들답니다.
자매님의 어려움에 대한 본질적인 촉발 원인은 바로 ‘빚’이라는 경제적 문제인 것은 맞아요. 그것이 해결되면 나머지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회복될 것 같군요. 그러나 현재 매일의 삶이 고통인 것은 내가 그렇게 느끼는 일이잖아요. 그렇다면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경제적 문제보다 ‘나’의 내면이나 혹은 나와 직결되어 있는 관계들, 즉 ‘남편과 아이들’, ‘가정’이라는 현실이 내게 직접적으로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닐까요? 분명 경제적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경제적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흘러가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잖아요. 그러나 부부간의, 부모와 자녀간의 신뢰와 사랑은 깨어지면 되돌리기 힘든 일이 아닐까요? 지금 자매님께서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살기 싫은 것은 이미 내 손을 떠나 버린 경제적 문제보다 지금 내 손 안에 있는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결국 가족입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우선순위는 바로 부부간의 신뢰와 사랑이 아닐까요? 이런 어려운 시기에 아이들이 말을 좀 더 잘 듣고, 열심히 지내주면 좋겠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이잖아요. 그렇기에 부부간의 신뢰 회복이 가장 우선되어야 합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부모가 더 큰 사랑으로 결속될 때 아이들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된다고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부부간의 신뢰는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요? 우리는 흔히 남자들은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여자들은 함께 해결하려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힘든 일이 생겼는데 부부가 함께 견뎌내려 하지 않고 술에 의지하거나 대화를 하려고 하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면서 자매님이나 아이들보다는 그 친구를 두둔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남편의 모습들…이런 것들이 두 분의 신뢰를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은 태생적으로 각자의 성격이나 성향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혹시 형제님께서 감정이 풍부하고 친구를 좋아하고 의리를 중요시하는 성품은 아니신지요? 형제님이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각자의 개성은 부부간에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남자들이 논리적이고 이성적일것 같지만 오히려 비논리적이고 생존력이 약하기도 하답니다. 지금 자매님께서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형제님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용서하고 품어 주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이런 어려움에서 내 가정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내이며, 엄마이며, 여성인 바로 자매님만이 해내실 수 있습니다.
무의미하게 들릴수도 있겠지만 ‘힘’을 내세요. 그리고 법적 자문이나 현실적 자문, 혹은 더 많은 상담을 원하신다면 저희 ‘소람 상담소’로 연락주세요.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 속에서 자매님은 늘 ‘소(중한 사)람’입니다. 아멘.

* 여러분의 고민을 보내주시면 채택하여 김종섭 신부님께서 지면상담을 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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