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가? 자꾸만 바라보게 되고, 함께 있고 싶어지고, 내 것을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멍하게 그리워하면서 혼자 낄낄대는 설익은 감정을 비롯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숭고한 희생에 이르기까지, 가슴 두근거리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온갖 충동적인 열정에 휩싸여 괴로워하게 된다. 사랑을 이루기 위한 도전과 모험, 좌절과 희망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은 비교적 차분하게 이래저래 훈수를 두기도 하겠지만 대개의 경우 덩달아 그 열정에 감염되어 황홀함과 안타까움을 함께 느끼게 된다.
바로 여기서 낭만(浪漫)이라는 말이 나왔다. 원래 이 말은 로맨스(Romance)라는 단어를 발음이 비슷한 일본식 한자어(흐를 낭+흩어질 만)로 표기한 것으로 이리저리 변덕스럽게 흘러가고, 잡힐 듯 말 듯 손에 쥐려면 흩어져 버리는 극적인 사랑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음악가 중에 본인 스스로가 가장 낭만적인 작곡가가 되기를 원했던 이가 있었다. 바로 로버트 슈만이다. 출판업자인 아버지덕분에 문학과 음악적 소양을 일찍부터 쌓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자녀교육에 헌신적이었던 집안 분위기 속에서 밝게 자라날 수 있었다.그러나 슈만이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사랑하던 아버지와 누나, 형과 형수가 연이어 세상을 떠나면서 상황은 끔찍할 정도로 뒤바뀌게 된다. 암울한 생각 속에 늘 사로잡혀 살았으며, 특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어머니의 뜻에 따라 법대로 진학하지만 나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당시 피아노 선생으로 명성을 떨치던 프리드리히 비크의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자리잡고 음악 공부에 매진하게 되었다.
당시 음악계에서 프리드리히 비크 선생의 피아노 교수법은 혹독하기로 소문나있었다고 한다. 제자들을 엄격한 틀 안에서 반복 훈련시킨 까닭에 엘리트 연주자를 양성하는 데는 효과적이었겠지만 인간적으로나 인격적인 차원에서는 문제의 소지가 다분히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딸이었던 클라라를 이 같은 방법으로 가르쳐서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만들고, 그럼으로써 이 교수법이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려는 욕심이 지나쳤던 것 같다. 클라라는 열 살이 될 때까지 피아노는 잘 쳤을지 모르나 기본적으로 이름을 쓰거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에도 어려움을 느낄 정도였다고 하니 다들 그 폐쇄적인 상황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큰 일이 벌어졌다. 많은 문제를 지닌 이 두 남녀가 마침내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슈만은 클라라보다 아홉 살 연상이었으니 어린 시절부터 10년 넘게 오빠처럼, 선생님처럼 따르다가 마침내 심각한 연인 사이가 되어버린 것! 항간에는 슈만에게 이미 약혼녀가 있었다고도 전해지지만, 어느 순간부터인지 몰라도 클라라의 적극적인 태도가 밑받침이 되어 이 둘은 모험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결혼을 극구 반대했던 프리드리히 비크 선생, 장차 장인이 될 클라라의 아버지는 온갖 방해 공작을 집요하게 펼쳐 왔지만 슈만은 법대 출신답게 법원에 소송을 걸어 3년간의 법적 공방을 벌인 끝에 결혼에 성공하였고, 이 와중에 클라라의 아버지는 18일간의 금고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이제 서른 살이 된 슈만은 클라라와 얼마나 행복했을까? 사랑의 열정은 그로 하여금 수많은 명곡을 나날이 쏟아내게 했고 바로 이 무렵에 남긴 곡이 하이네의 시를 가사로 한 가곡집 〈시인의 사랑〉이다. 얼마나 험난한 사랑인가! 삶의 지혜를 지닌 독자라면 이 사랑의 끝이 비극이 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슈만은 원하던 대로 가장 낭만주의 정신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그대 눈을 바라보면 / 모든 고통과 고뇌가 사라지네 // 그대 입술에 입 맞추면 / 나는 삶의 원기로 충만해지고 / 그대 가슴에 기대면 / 천상의 기쁨이 밀려오네 // ‘사랑해요.’ 라고 그대 내게 말하면 / 나는 하염없이 울 수밖에” - 슈만 <시인의 사랑> 제6곡(번역 : 정만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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