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人間)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지향한다. 그러나 현실은 행복의 범주에서 멀리 떨어져 우리의 마음을 꽁꽁 에워싸고 있다. 이런 삶은 스스로 선택했든 또는 외부 환경에 의한 선택이든 현실 안에서 결정되고 자신 삶의 한 모양을 이루며 흘러간다. 중요한 것은 삶의 설계와 형태를 결정하는 인간 행동에는 반드시 이유와 원인이 존재함을 사정해야 한다. 흔히 우리는 상황에 대한 우연적 일치와 어쩔 수 없는 환경을 말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원인이 반드시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불행과 아픔, 고통을 나의 삶의 방식으로 받아 들이는 이들(노숙인)의 마음 안에는 무엇이 존재하는지 같이 나누어 보고자 한다.
사회복지 실천 철학의 우선 가치는 인간 존엄성을 바탕으로 둔 ‘생명의 존중’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생명은 인간의 목숨과 연결되어 있는 신체기능에 대한 육체적인 생명을 뜻한다. 이와 함께 우리는 인간의 신체 기능(몸) 수행에 있어 ‘관제탑(Control Tower)’ 기능을 관장하는 정서(마음)적 영역이 어떤 빛깔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생명의 지속은 정신적인 삶의 긍정적인 욕구와 그 내용물의 희망적 존재로 인하여 유지된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의 정서적 빛깔은 개인의 삶을 이루는 생명의 중요한 질적 표본이 된다.
인간의 몸은 선한 당신(God)의 뜻이 이루고 있다. 하느님과 같은 선한 마음과 행복하고 평안한 느낌의 정서적 빛깔은 엔도르핀과 같은 물질로 인하여 자신의 몸에 긍정세포(NK)를 증가시키고 신체적 면역력을 높이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반대적 의미를 내포하는 인간의 정서적 빛깔 가운데 어두움은 신체 기능 중 가장 약한 부분이 노출되고 면역력을 저하시켜 몸을 ‘병적 상태’로 만든다. 그러므로 신체영역(Psychosomatic)에서 신체화(Somatization)라고 부를 정도로 정서적 빛깔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노숙인의 삶 속에는 기쁨과 환희보다는 슬픔과 좌절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행복의 울타리를 향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보지만 또 다른 삶의 모습을 쉽게 용납하지는 않았다. 인간이 갖는 고통과 고뇌, 그리고 아픔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은 인간의 상호관계를 통한 ‘따뜻함’이다. 그것은 그들이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아픔을 치유하여 예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도록 지원하는 ‘명약’이라 확신한다.
우리가 함께 사는 삶의 현장에서 체험하는 따뜻한 경험은 낮은 곳의 어려운 이들에게 개인의 존재 가치성을 높여 주고 진정한 새 생명의 출발선을 마련해 주는 것이라 믿는다.
노숙인의 정신 건강에 있어 알코올의 남용과 의존, 현실거래의 왜곡 등 다양한 생활상의 문제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분명 따뜻한 관계의 경험이 부족해서 초래된 현상이며, 또 다른 측면에서는 그들이 공동체의 상호관계 속의 피해자라할 수 있다.
진정한 삶의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것은 육체적 생명의 건강성을 도모하는 환경을 제공함과 더불어 상호관계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삶의 희망을 이루는 따뜻한 에너지를 그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2014년 신년교례회를 통해 우리는 ‘노숙자 예수님’은 낮은 곳에 계시는 당신임을 알고 따뜻한 손을 내미는데 주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당신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서로 나누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좋은 일을 하고 선행으로 부유해지고, 아낌없이 베풀고 기꺼이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시오. 그들은 이렇게 자기 미래를 위하여 훌륭한 기초가 되는 보물을 쌓아, 참생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1티모 6,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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