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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가 더 좋다.”


박성대(요한)|2대리구장, 주교대리 신부

 “다치고 상처받고 더렵혀진 교회가 더 좋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최근에 발표하신 『복음의 기쁨』에서 교회의 쇄신과 개혁을 강조하시면서 하신 놀라운 말씀이다. 필자는 소공동체 사목을 하면서 교회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왜냐하면 소공동체는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기 위하여 ‘교회의 새로운 존재 방식’ 대하여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대로는 교회의 미래가 없으므로 ‘새로운 열정’ ‘새로운 방법’, 그리고 ‘새로운 표현’ 찾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금의 교회를 ‘소공동체가 안 되는 교회’ 진단하고 싶다. 소공동체가 되느냐 안 되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복음화 실현 가능성이다. 만일 교회가 이 복음화를 이룰 수 없다면 그것은 절망적이다. 소공동체를 추진하다보면 교회 복음화에 많은 문제와 장애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교회의 안일한 태도, 혹은 안주하는 모습이다. 많은 사목자들을 비롯한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안일한 의식(意識) 때문이다. 그 옛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광야의 여정을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은 어려움과 장애물 때문에 이집트로 돌아가려는 유혹을 받았던 것처럼, 오늘의 교회도 자꾸만 ‘이집트로 돌아가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거나, 아직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상태’ 안주하고 있는 한심한, 그리고 변화되지 않는, 그리고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거부하는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이 지상의 교회는 나그네 교회이다. 천상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가는 광야의 여정 중에 있는 교회이다. 완성된 교회가 아니다. 완전한 사회도 아니다. 많은 한계와 결함을 안고 있고 많은 장애물과 위험을 안고 있는 나그네 교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 나그네 교회는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을 향하여 끝없는 전진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교회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모험도 따르기 마련이다. 여정 중에서 치루지 않으면 안 되는 모험과 도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안일한 태도나 안주하는 모습은 안 된다. 더욱이 후퇴를 하거나 정지해서도 안 된다. 그러다 보면 교회는 변화를 게을리 하거나 변화를 두려워하는 교회, 변화를 거부하는 교회가 되어 버린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말하는 나그네 교회는 ‘항상 쇄신되어야 하는 교회(Semper Reformanda Ecclesia)’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재의 교황께서 즉위 첫날 첫 말씀으로 “회개하지 않는 교회는 인심 좋은 NGO에 불과하다.”(2013.3.16 동아일보)고 하셨다. 그러면 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읽지 못하는 교회가 되고 결과적으로 세상을 위한 교회의 정체성을 잃어 버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교회는 자신의 사명을 잘못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교회가 되어 교회의 목소리를 잃게 되며 교회가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다행히, 천만다행으로 성령의 기막힌 선물로 새로 선출되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성령의 세찬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계신다. 참으로 놀랍고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최근에 발표된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은 대박 중의 대박이다. 이 권고에서 교황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음을 가톨릭신문은 전하고 있다.(2013.12.8)

우선 이 교황 권고는 선교적이고 관대하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가톨릭교회 공동체의 모습’ 대하여 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현대 교회와 사회의 요청에 부응하는 ‘선교적’ 교회와 전망을 제시하고, 전통적인 교회 제도와 구조의 변화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쇄신과 개혁의 노력을 촉구하면서, 심지어 교황의 권위 행사에 있어서 합의체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건실한 분권화’를 포함한 ‘교황직의 전환’까지도 고려하는 ‘교회 조직의 개혁’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쇄신의 과정에서 교회는 비록 오랜 역사적 뿌리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복음의 핵심에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일부 관습을 두려워 말고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저는 선교적 선택, 즉 교회의 관습, 관행, 시간과 계획, 언어와 구조 등 모든 것을 교회의 자기 보존이 아니라 현대 세계의 복음화에 적절하도록 변화시킬 수 있는 선교적 열정을 꿈꿉니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꿈,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였다.

“자신의 안위만을 신경 쓰느라 폐쇄적인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더 좋아한다. 교회는 쇄신과 변화 때문에 ‘길을 잃을까봐’ 걱정하지 말고, ‘잘못된 안도감을 주는 구조 안에, 가혹하게 남을 판단하게 만드는 규율들 안에, 그리고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습관들 안에 갇혀 있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씀에 힘찬 박수와 환호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교회의 사목 일꾼들이 겪는 개인주의, 실용주의, 패배주의에 대해서도 경계하고 ‘특정한 가톨릭 양식에 완고하게 집착’하거나 ‘화려한 전례와 교리 또는 교회의 특권에 집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려한다.”고 말씀하면서 “껍데기뿐인 영성이나 사목으로 치장한 세속적인 교회에서 벗어나기를 촉구하시면서 ‘지나친 성직주의’ 때문에 의사 결정에서 밀려나 있는 평신도들과 여성들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인다.”, “예수를 ‘진부한 도식’ 안에 가두지 말고 ‘복음 본연의 참신함’을 되찾기 위한 ‘새로운 길’과 ‘창조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오늘날의 교회, 사회적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사목적이고 선교적인 회개’를 촉구한다.”(가톨릭신문, 2013.12.8) 참으로 가슴 벅찬 감동적인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또 교황은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과 같아선 안 된다.”(평화신문, 2013.12.8)고 말하면서 오늘날 우리 교회의 생동감과 역동성의 상실을 가장 잘 지적하였다.

‘교구 설정 100주년’을 기념하여 ‘제2차 교구 시노드’를 개최하였고 또 많은 돈으로 ‘100주년 기념 대성전’을 지으면서 새로운 복음화를 고민하고 있는 우리 대구대교구의 모든 성직자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평신도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놀랍고 획기적인 가르침인 이 ‘복음의 기쁨’ 귀를 기울여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며 ‘이집트로 돌아가려는 교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안주하고 있는 교회’에서 하루 빨리 탈출하는 ‘EXODUS’ 이루어지기를 빌고 싶다. 그러면 우리 대구대교구의 미래가 지금보다 훨씬 더 희망차고 밝아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