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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를 살다
감사기도(Ⅱ)


최창덕(프란치스코 하비에르)|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신도신학교육원 원장

 감사기도의 역사와 발전, 그리고 그 변천에 대해서는 엄청난 양의 지면이 필요하기에 여기서 살펴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감사기도 안에서의 변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꼭 알아두어야 할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부분이란 바로 최후만찬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행동에 관한 부분인 성찬 제정과 축성문 부분입니다. 미사에 대한 수많은 잘못된 편견과 오해, 오랜 세월에 걸쳐 신앙인의 삶을 일방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던 해석, 그리고 편협함과 일방적인 이해 등은 거의 모두 성찬 제정과 축성문에서 기인하였습니다.

실제로 중세 중·후기에는 미사의 이해에 있어서 극단적인 폐해가 백성들 사이에 널리 유포되어 있었습니다. 그 대부분이 감사기도가 중심을 이루는 성찬 전례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한때 신자들이 거양성체에 맞추어 성당을 옮겨 다니기도 했습니다.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만 해도 사제가 등을 돌리고 미사를 집전하던 시절, 사제가 빵과 포도주 위에 성찬 제정 축성문을 발함으로써 성변화된 성체와 성혈을 들어 올리면 이때 복사는 종을 쳤습니다.(오늘날에도 이 풍습은 여전히 그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예수님의 몸과 피를 보여주는 이 거룩한 순간을 몇 번이나 보려고 이 성당, 저 성당을 찾아 다니기도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은혜와 축복을 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신자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전례 언어인 라틴어 때문이기도 했지만 근본에 있어서는 미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마술적이고 미신적인 해석이 근저에 자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미사는 모든 것, 모든 이를 위한 마술지팡이였습니다. 미사 도중에 사람은 더 이상 늙지 않는다고 믿었으며, 연옥 영혼은 세상에서 자기를 위한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연옥의 단련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고 보았고, 임산부에게 미사는 원하는 착한 아이를 낳게 해주고, 심지어 미워하는 누군가를 없애 버리고 싶으면 그를 위해 위령미사를 봉헌하면 곧 죽을 것이라는 등의 해괴하고 그릇된 편견이 널리 퍼져 있기도 했습니다.

거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미신과 마술적인 해석이 미사와 관련되어 있었고 미사를 가능한 모든 원의를 바칠 수 있는 그러면서 그 보답을 얻어 낼 수 있는 요술방망이도 만들었습니다. 미사의 효과를 일방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사람들은 미사 한 대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알아듣게 했습니다. 미사예물을 많이 내면 낼수록, 미사를 지불하기 위해 기금을 유산으로 많이 남기면 남길수록 영혼이 보다 빨리 천국에 올라간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제 감사기도의 기원과 종류 및 특성, 구조와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감사기도의 기원

감사기도의 기원은 예수께서 최후만찬 때에 빵과 잔을 들고 바치신 감사와 찬양의 기도에서 출발합니다. 감사기도는 사제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전 공동체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는 기도인데, 먼저 성부께 장엄한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바치고 하느님의 과거 구원 역사를 제시합니다. 이처럼 감사기도는 내용과 가치 등 모든 면에서 미사 전례의 중심과 절정을 이루는 장엄한 기도입니다. 미사 전례 총지침은 이 기도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 기도는 감사와 축성의 기도이다. 사제는 백성에게 기도와 감사로 주님께 마음을 올리도록 초대하고 자신의 기도에 그들을 참여시켜 전 공동체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를 바친다. 이 기도의 뜻은 신자들이 이룬 회중 전체가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하느님의 위대하신 업적을 찬양하며 제사를 봉헌하는데 있다. 감사기도는 모두가 존경심을 가지고 침묵 가운데 들어야 한다.”(총지침 78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 쇄신과 이해에 따라 교회는 로마의 전통뿐 아니라 동방의 전통도 모두 중시하고 교회의 값진 유산인 귀중한 기도문을 현대에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종래의 「로마 전문」 외에 세 가지의 새로운 감사기도문을 도입하였습니다.

현재 사용되는 네 가지 감사기도문의 공통되는 본질적인 요소는 감사(대화와 감사송), 환호(거룩하시도다), 연결기도, 축성기원 성령 청원기도(Epiclesis), 성찬 제정과 축성문, 기념 환호(신앙의 신비여), 기념과 봉헌, 일치기원 성령 청원기도, 전구, 마침 영광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감사기도는 예수님의 인격을 따라 바치는 대사제의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감사기도는 본성상 오직 사제 홀로 바치도록 되어 있고, 신자들은 믿음 안에서 침묵을 지키며 감사기도에 규정되어 있는 참여를 통하여 사제와 일치하여 기도를 바칩니다. 신자들의 참여 부분은 감사송 대화에서 응답, 거룩하시도다, 축성 다음의 환호, 마침 영광송 다음의 아멘 환호입니다.

 

감사기도의 양식을 살펴보면, 현행 로마 전례의 감사기도에는 네 가지 양식이 있는데, 제1양식은 1,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로마 전문(典文)이고, 다른 2·3·4양식은 1968년에 도입된 새 감사 기도입니다.

제1양식 : 이 양식은 로마 전문(Canon Romanum)이란 명칭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 오늘날에도 로마 미사 전례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양식은 감사기도의 특징인 감사와 찬양의 요소가 빈약하고, 미사의 식사 특성을 잘 드러나지 못하는 반면, 제사 성격이 매우 강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쉽게도 거룩한 변화의 주체이신 성령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감사기도 자체가 하느님을 찬미, 감사드리는 기도인데 이 전문(典文)에는 그보다 청원의 내용이 많으며 구조도 복잡합니다. 그렇더라도 제1양식은 항상 사용이 가능하며 특히 주님 대축일(성탄, 부활, 승천, 성령 강림 대축일)에 사용하도록 권장합니다.

제2양식 : 가장 널리 애용되는 이 양식은 3세기의 히폴리투스 감사기도를 모범으로 삼아 만든 것이라 흔히 ‘히폴리투스 양식’이라고 합니다. 이 양식은 제1양식의 결점을 보완하여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에 대한 기념과 찬양을 강화했습니다. 그러므로 주일이나 특별 축일이 아닌 연중 평일이나 특수한 환경에 적합한 기도입니다. 보통으로 사제들은 이 양식을 선호하는데, 이유는 네 양식 가운데 가장 짧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학적으로는 상당히 어려운 내용이 많습니다.

제3양식 : 이 양식은 현대의 신학자들이 제1양식의 특징을 살리면서 동시에 제1양식의 결점과 부족한 점을 보충하여 로마 전례의 감사기도로 완성시킨 양식입니다. 제사와 봉헌의 요소를 많이 표현하는 로마 전문의 내용을 담으면서도 감사기도에 필수적인 식사 의미도 강화했습니다. 이 양식은 고유감사송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감사송과도 함께 사용할 수 있으며, 단순하고 쉬운 내용 때문에 신자들에게 잘 맞는 사목적인 양식으로 특히 주일, 축일, 성인 기념일 등에 사용하기를 권합니다.

제4양식 : 이 양식은 동방 교회의 전례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생긴 전통을 이어 받은 바실리오의 감사기도를 문장과 표현에 있어 서방 교회에 맞게 정리한 감사기도입니다. 구세사가 잘 정리되어 있으며 그 중심에 그리스도의 신비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서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어서 피정이나 소공동체 미사전례에 적합합니다.

사제들은 이들 네 가지 감사기도의 특징과 의미를 잘 새겨 가급적 여러 양식을 골고루 사용하는 것이 기도나 사목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