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4월의 자연은 부드러운 솜털 같습니다. 하늘의 햇살도 여름날의 뙤약볕같이 따갑지 않으며, 물기 머금은 연록의 잎사귀들로 몸치장에 분주한 길거리의 가로수들도 보드라운 솜이불 같이 포닥포닥합니다. 그래서 진초록이 무성한 한여름보다 이 4월의 자연이 제 맘을 설레게 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학교라는 울타리에 속해 있는 사람이기에 자연이 불러내는 소리에도 쉽게 마음을 내진 못합니다. 그래서 4월은 잔인한 달인 것 같습니다.
우리 학교는 참 좋은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그 중에 다른 학교에선 쉽게 흉내내기 힘든 프로그램 중 하나가 가정방문입니다. 같은 교사로 사는 제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대가 어느 시댄데 가정방문이고? 고발당할 일 있나. 너희 학교 간도 참 크다. 와 사서 고생 하노?” 맞습니다. 이 대단한 시대에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오전에는 학생들을 자기 차에 태우고 용감하게 하양과 영천뿐만 아니라 의성, 군위, 청송, 포항 등을 다니며 가정방문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새벽같이 학교에 등교해 오전 내내 열심히 수업하고 점심을 먹자마자 학생들을 태우고 먼 길을 다니는 선생님들은 피곤할 만도 한데 하나같이 다음날 교무실에 들어서면 전날 있었던 일들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특히 차를 타고 먼 거리를 가면서 아이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담임이 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친해졌다며 자랑을 널어 놓습니다. 학년부장으로 선생님들의 힘겨움을 어떻게 해드리지 못하는 제 마음이 무겁기만 한데도 선생님들은 피로에 지친 얼굴 위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하루하루 학생들의 가정으로 신나게 날아갑니다. 이래서 우리 학교가 농어촌 지역에서 별다른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데도 명문고라 불리는 것이란 생각을 하며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가정 방문 중 부모님을 만나보면 학생들의 숨겨진 다른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가정 사정이야기를 듣거나 가정환경을 눈으로 목격하고 나면 그 학생이 많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들과 함께 아이들에 대해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어 정말 좋습니다. 가끔 마음 불편한 소리를 하시는 부모님도 계시지만 대부분 부모님들은 정말 우리 학교 모든 선생님들에게 감사한다며 손을 잡아 주시고, 이렇게 다닌다고 힘드시겠다며 위로의 말씀도 잊지 않으십니다. 가정의 부모와 학교의 부모가 함께하는 공간 속에서 우리 아이들의 얼굴도 환해집니다. 그래서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행복합니다.
이야기를 적다보니 우리 반 학생 한 명이 불현듯 눈앞에 다가섭니다. 지난 일 년간 다른 반 학생이었던 그 학생은 평소 수업시간에 만나도 입을 꼬옥 다물고 질문하는 것에만 간단명료하게 답하는 아이였습니다. 한 반이 된 후에도 환한 미소를 별로 보내지 않는 아이라 저도 선뜻 친한 척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학생의 집을 방문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학생의 어머니께서 얼마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불현듯 아이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르더니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당황스러워 하는 저를 보며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 아이와 한 방을 썼습니다. 할머니께서 오래 아프셨는데도 우리 아들은 군소리 하나없이 할머니를 잘 돌보며 늘 곁을 지켜 주었습니다. 할머니가 그리워 저러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수능 만점을 받아 전국 일등이라며 매스컴에서 떠들썩했던 그 학생보다 우리 반 아들이 더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너희 할머닌 하늘나라에서도 참 좋으시겠다. 이런 사랑을 받고 계시니….”라고 한 마디를 거들었더니 그 녀석은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그 따뜻한 마음이 제 눈가도 붉어지게 했습니다. 서로 손잡고 나중에 할머니 만나면 자랑할 것 많은 손자가 되어보자며 다짐을 나눈 뒤, 밤 11시가 다 되어 집으로 가면서 이번에도 참 좋은 우리반 아들을 얻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서당에서 회초리를 든 훈장선생님 앞에서 바지를 둥둥 걷어 부치고 체벌을 기다리는 학동의 모습을 담아 놓은 그림이 있습니다. 날카로운 매 속에 제자를 제대로 가르치고자 하는 스승의 애처로운 사랑의 마음이 담겨져 있어 저는 그 그림을 볼 때 마음이 불편하기보다는 따뜻합니다. 요즘은 수많은 언론과 매체들이 학생들의 인권을 강조하다보니 오히려 지켜줘야 할 교권이 시궁창 속으로 던져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슬픕니다. ‘촌지’란 불편한 단어 하나 때문에 ‘인정’을 나누기도 힘들 때가 많습니다. 옛날엔 밭에서 무 몇 개를 뽑아 신문지에 둘둘 말아 선생님께 선물로 들고 오는 학부모도 있었다며 옛날 이야기를 추억거리로 삼아 이야기하시는 나이 드신 선배님들은 그 시절이 그래도 행복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가정방문을 다니다 보니 세상이 아무리 매몰차게 해도 아직 인정은 곳곳에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모두 일 나가셔서 자기밖에 없다며, 열여덟 남자아이가 서툰 손으로 끓여서 내놓는 커피 한 모금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늦은 시간 먼 곳까지 와 주신 선생이 배고플까봐 낡은 상 위에 구운 찰떡 몇 조각, 금방 구웠다는 은행 몇 알, 다 식어 맛이 어떨지 모르겠다며 손에 쥐어주는 삶은 고구마는 고급 요릿집 상차림보다 더 귀하고 맛있었습니다. 어떤 집은 오늘 아들 생일인데 기숙사에 살고 있어 생일 밥도 못 챙겨주는데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먹이고 싶다는 어머니의 바람에 얻어먹은 간짜장 한 그릇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제 배를 풍요롭게 해줍니다. 아들 반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며 차에 기어이 실어주신 사과 한 상자는 그 다음날 우리 반 아이들의 맛있는 아침 간식이 되기도 했습니다. 금방 캐낸 달래라며 신문에 말아주시는 어머니의 거친 손에서 흙내 나는 사랑이 아직까지 코끝에 전해져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인데 왜 이 사회는 몇몇의 잘못된 사람들의 이야기로 학교를 삭막한 곳으로 만들어 갈까요? 저 혼자만 행복할 수 없어 이렇게 글로 적어봅니다.

선생님들 용기를 내세요. 우리가 교사이고 담임인 것은 사랑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사랑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합시다. 세상이 뭐라 하든지 뭔 상관있습니까? 진실된 사랑은 마음으로 알겠지요. 그리고 이 글을 보고 계신 많은 학부모님들 교사들도 집에 가면 아버지이고 어머니입니다. 저희 교사들이 아이들을 마음껏 사랑하도록 좀더 따뜻한 시선으로 봐 주세요. 길지 않은 이 세상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맘껏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 이유정 선생님은 계산주교좌성당 신자로,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무학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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