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공동체 복음나누기 자료제공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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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6일, 사순 제5주일 : 요한 11,1-45. 또는 11,3-7.17.20-27.33-45.
3그리하여 그 자매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4예수님께서 그 말을 듣고 이르셨다.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5예수님께서는 마르타와 그 여동생과 라자로를 사랑하셨다.
6그러나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도,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르셨다.
7예수님께서는 그런 뒤에야 제자들에게, “다시 유다로 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17예수님께서 가서 보시니,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벌써 나흘이나 지나 있었다.
20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33마리아도 울고 또 그와 함께 온 유다인들도 우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셨다.
34예수님께서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하고 물으시니, 그들이 “주님, 와서 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35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36그러자 유다인들이 “보시오, 저분이 라자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하고 말하였다.
37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몇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저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해 주실 수는 없었는가?” 하였다.
38예수님께서는 다시 속이 북받치시어 무덤으로 가셨다. 무덤은 동굴인데 그 입구에 돌이 놓여 있었다.
39예수님께서 “돌을 치워라.” 하시니,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타가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였다.
40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41그러자 사람들이 돌을 치웠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셨으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42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여기 둘러선 군중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43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44그러자 죽었던 이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45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요한복음 11장 1절~45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병을 앓고 있는 이가 살고 있는 마을은 어디입니까?(1절)
-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의 병이 어떠한 것이라고 하십니까?(4절)
- 예수님께서 도착하셨을 때는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며칠이나 되었습니까?(17절)
-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41-42절)
- 죽었던 라자로는 어떤 모습으로 무덤에서 나왔습니까?(44절)
-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45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일상 안에서 나의 부활 신앙을 흔들리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그 장애물을 뛰어 넘을 수 있도록 주님께 청하고 각자 노력해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227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사순 제5주일 복음묵상 마성우(세례자요한)|경산성당 보좌신부
이제 사순시기도 막바지에 와 있습니다. 사순시기 동안 주님과 약속하신 것들을 잘 지키고 있는지 점검해보시고 부족한 점이 있다면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어서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주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사순 제5주일에 이 복음이 봉독되는 이유는 라자로의 소생이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의 부활을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라자로의 소생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지배하시는 분이심이 드러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점은 라자로가 다시 살아난 일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일과는 다르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라자로의 소생은 죽음을 건너 새롭고 영광스러운 단계로 건너간 것이 아니라 그가 전에 살았던 같은 종류의 삶으로 되돌아간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부활에 비하면 이 사건은 말 그대로 작은 하나의 예표에 불과한 사건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라자로 본인에게는 다시 살아난 일이 참 고달픈 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라자로를 사랑하셨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라자로는 병으로 고통 받다가 결국 안식을 얻게 되었는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상태에서 다시 살아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기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죽음을 지나서 예수님처럼 영광스럽게 부활하는 것이 기쁜 일이지, 단순히 죽었다가 다시 죽음 이전의 허약한 육신으로 되돌아가 소생하는 일은 기묘한 일이지 기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라자로는 다시 살아나서 나이들수록 허약해지고 다치기 쉬운 육신과 함께 삶의 고통과 죽음을 한 번 더 겪어야 하는 고단한 인생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났다고 해서 무슨 큰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예수님과 더불어 대사제들의 암살표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즉 라자로는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다시 살아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살아난 인생길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처럼 영광스럽고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했던 라자로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이 겪어내야 하는 일을 보여주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일에 쓰여야 하고 라자로처럼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수고까지 감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싶으십니까? 라자로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그분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 복락을 더 많이 누리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늘 라자로 이야기에서 보듯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죽음을 한 번 더 반복해야 할 만큼 큰 희생과 고통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의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오로 사도 말씀처럼, 그분과 함께 누릴 영광과 희망을 생각하면 세상에서의 이러한 시련들을 이겨내고도 남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하는 수고를 각오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러면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4월 13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 마태 26,14-27,66. 또는 27,11-54.
11예수님께서 총독 앞에 서셨다.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총독이 묻자, 예수님께서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12그러나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당신을 고소하는 말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3그때에 빌라도가 예수님께, “저들이 갖가지로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들리지 않소?” 하고 물었으나,
14예수님께서는 어떠한 고소의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총독은 매우 이상하게 여겼다.
15축제 때마다 군중이 원하는 죄수 하나를 총독이 풀어 주는 관례가 있었다.
16마침 그때에 예수 바라빠라는 이름난 죄수가 있었다.
17사람들이 모여들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내가 누구를 풀어 주기를 원하오? 예수 바라빠요 아니면 메시아라고 하는 예수요?” 하고 물었다.
18그는 그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자기에게 넘겼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19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아 있는데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당신은 그 의인의 일에 관여하지 마세요. 지난밤 꿈에 내가 그 사람 때문에 큰 괴로움을 당했어요.” 하고 말하였다.
20그동안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군중을 구슬려 바라빠를 풀어 주도록 요청하고 예수님은 없애 버리자고 하였다.
21총독이 그들에게 “두 사람 가운데에서 누구를 풀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오?” 하고 물었다. 그들은 “바라빠요.” 하고 대답하였다.
22빌라도가 그들에게 “그러면 메시아라고 하는 이 예수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오?” 하니, 그들은 모두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였다.
23빌라도가 다시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하자,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쳤다.
24빌라도는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폭동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받아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하였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소. 이것은 여러분의 일이오.”
25그러자 온 백성이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26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다.
27그때에 총독의 군사들이 예수님을 총독 관저로 데리고 가서 그분 둘레에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28그분의 옷을 벗기고 진홍색 외투를 입혔다.
29그리고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분 머리에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들리고서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하며 조롱하였다.
30또 그분께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분의 머리를 때렸다.
31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나서 외투를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나갔다.
32그들은 나가다가 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을 보고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
33이윽고 골고타 곧 ‘해골 터’라는 곳에 이르렀다.
34그들이 쓸개즙을 섞은 포도주를 예수님께 마시라고 건넸지만, 그분께서는 맛을 보시고서는 마시려고 하지 않으셨다.
35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제비를 뽑아 그분의 겉옷을 나누어 가진 다음,
36거기에 앉아 예수님을 지켰다.
37그들은 또 그분의 머리 위에 죄명을 붙여 놓았다. 거기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 예수다.’라고 쓰여 있었다.
38그때에 강도 두 사람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하나는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못 박혔다.
39지나가던 자들이 머리를 흔들어 대며 예수님을 모독하면서
40이렇게 말하였다.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는 자야,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41수석 사제들도 이런 식으로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과 함께 조롱하며 말하였다.
42“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시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을 터인데.
43하느님을 신뢰한다고 하니, 하느님께서 저자가 마음에 드시면 지금 구해 내 보시라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으니 말이야.”
44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마찬가지로 그분께 비아냥거렸다.
45낮 열두 시부터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46오후 세 시쯤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이는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
47그곳에 서 있던 자들 가운데 몇이 이 말씀을 듣고, “이자가 엘리야를 부르네.” 하고 말하였다.
48그러자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와 신 포도주에 듬뿍 적신 다음, 갈대에 꽂아 그분께 마시게 하였다.
49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가만,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해 주나 봅시다.” 하고 말하였다.
50예수님께서는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나서 숨을 거두셨다.
51그러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땅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졌다.
52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되살아났다.
53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다음,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 많은 이들에게 나타났다.
54백인대장과 또 그와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이들이 지진과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보고 몹시 두려워하며,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하고 말하였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27장 11절~54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고소하는 말에 어떻게 반응하십니까?(11절-14절)
- 군중은 두 사람 중에 누구를 풀어주기를 원합니까?(21절)
- 군중은 예수님을 어떻게 하기를 원합니까?(22절-23절)
-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무엇입니까?(46절)
- 예수님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던 이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54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각자 삶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어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돌아보고, 예수님의 수난에 더욱 일치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22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복음묵상 박상욱(라우렌시오)|복현성당 보좌신부
교회는 사순 제6주일을 ‘주님 수난 성지 주일’로 하여 성주간을 시작하며 전례력에서 가장 거룩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성지(聖}枝) 주일’이란 말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할 때 군중이 흔들었던 ‘나뭇가지’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의 미사 전례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데, 특히 수난 복음이 전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수난 복음은 가장 긴 주일 복음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요약하면 간단합니다. 죄 없는 분이신 예수님께서 죄인으로 몰려 십자가를 진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했을까요?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주동하였고, 이에 동참한 많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군중은 예수님을 “호산나 다윗의 후손”이라고 외쳤지만, 이제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칩니다. 사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또한 기적도 보았던 이들입니다. 그들의 180도 달라진 행동은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은 어떠한 변명없이 침묵으로 일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신한 제자들과 군중들을 위해서 사랑의 길인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그분은 사랑으로 죽음을 이겨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살해되신 진짜 이유는 그분께서 진실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반대자들은 진실을 말하는 그분의 입을 막기 위해서 그분을 살해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시나리오를 아주 잘 준비했습니다. 재판도 절차를 갖추어서 일사천리로 진행했고, 여론몰이도 아주 잘 했습니다. 이러한 사기극은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수난 복음은 과거의 이야기, 또는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픕니다.
오늘 복음에는 수석사제들과 원로들, 빌라도, 군중, 제자들, 살인자들, 거짓 증인들 등등 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오늘의 이야기인 예수님의 수난 복음에서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등장인물에 해당할지 깊이 성찰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용기있게 진실을 증언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 또한 익명의 군중에 싸여 거짓에 침묵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동조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오늘 미사에 참례해서 손에 들었던 성지 가지를 각자의 집으로 가지고 돌아와 십자가 뒤에 걸어둘 것입니다. 이 가지는 예수님을 환영했던 가지이고, 동시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지 가지를 바라보면서, 거짓과 죽음이 가득 찬 세상에 진실과 생명을 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 보았으면 합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이번 한 주 우리는 거룩한 성주간을 보내게 됩니다. 전례의 정점의 시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이들을 사랑하시어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친 것을 기억하며, 이번 한 주간은 다른 시기보다 더 희생하고 더 사랑하고 더 나누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시작하는 성주간 전례에 적극 참례하도록 합시다. 주님의 거룩한 부활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모두 힘내십시오!
4월 20일, 예수 부활 대축일 : 요한 20,1-9.
1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9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요한복음 20장 1절~9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마리아 막달레나는 언제 무덤으로 달려갔습니까?(1절)
-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즉시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누가 먼저 무덤에 도착했으며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3절-5절)
- 시몬 베드로는 무덤에 들어가서 무엇을 보았습니까?(6절-7절)
- 제자들은 예수님의 어떤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까?(9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 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 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예수님을 만나고 사랑하기 위해 나는 어떤 신앙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각자가 일상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 말씀을 듣는 시간을 만들어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30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예수 부활 대축일 복음묵상 강호동(마티아)|성동성당 보좌신부
예수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무엇인가를 향해 달려가는 이들의 모습을 한 번쯤 보셨나요? 오늘 복음에서는 달려가는 이들이 셋이나 등장합니다. 그들은 마리아 막달레나와 두 제자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갑니다. 그리고 빈 무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달려가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알립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주님의 시신이 없다는 사실 앞에서 슬픔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고, 다급히 달려야 했습니다.
그 말을 전해들은 제자들도 달려갑니다. 과연 제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외젠 뷔르낭이라는 화가는 무덤으로 달려가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의 모습을 사실적이며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급하게 달음질치는 두 제자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두 손을 움켜진 요한, 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있는 베드로, 그리고 두 제자의 간절한 시선, 그들의 시선 너머로 주님께서 없다는 불안과 빨리 도착하고자 하는 간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두 제자가 무덤을 향해 달음질친 것도 ‘주님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난히 한 제자의 달음질이 더 급해 보입니다. 분명 예수님께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제자였기에 더 빨리 달려 확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아마포와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 그리고 빈 무덤을 보았습니다. 먼저 무덤에 갔던 마리아 막달레나도, 급하게 달려온 베드로도 빈 무덤을 보고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주님의 시신이 없다는 사실만을 바라 보았을 뿐,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요한 20,9)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 요한은 무덤에 들어가 보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죽음의 어둠 속에, 빈 무덤 속에 계시지 않습니다. 어둠을 밝히시어 빛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계십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보고 안 것이 아니라 보고 믿었습니다. 빈 무덤이 부활에 대한 증거가 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르신 그 말씀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믿지 못합니다.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졌습니다. 제자들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달려갑니다. 그러니 우리도 우리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달려갑시다. 주님을 찾는 그 간절한 마음은 우리를 달음질치게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어둠과 죽음의 빈 무덤으로 달려오게 하지 않으십니다. 살아계신 당신을 향해 달려오도록 초대하십니다. 우리는 빈 무덤이 아니라 살아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향해 나아갈 때 우리는 분명 살아계신 말씀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주님 부활의 빛이 우리 마음의 어둠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러 달려갑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도다.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알렐루야! 알렐루야!
4월 27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 요한 20,19-31.
19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0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요한복음 20장 19절~31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제자들은 누가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습니까?(19절)
-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20절)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마다 하신 첫 번째 말씀은 무엇입니까?(21절, 26절)
- 예수님을 직접 본 토마스는 어떻게 대답합니까?(29절)
- 저자는 이 책을 기록한 목적이 무엇이라고 합니까?(31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 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신 예수님께 참된 믿음을 가지게 해 달라고 청하고, 삶 안에서 예수님의 참 평화를 전하기 위해 무엇을 실천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35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부활 제2주일 복음묵상 한승호(베드로)|원평성당 보좌신부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제자들은 스승의 십자가 죽음에 충격을 받고 유다인의 위협과 보복이 두려워서 한데 모여 문을 꼭꼭 잠가 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두려움에 문을 잠가 놓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죽음을 이기신 분의 영광스러운 모습 앞에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 던지고 기쁨으로 가득 차올랐습니다. 이어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어 주시며 죄를 사하는 권한을 주십니다. 이제 제자들은 자신들이 체험한 이 순간의 평화와 기쁨을 온 세상에 선포하고자 세상 속으로 뛰어듭니다.
하지만 열두 사도 중 토마스 사도는 이러한 제자들의 반응에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고 말하며 의심을 품게 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여드레 뒤에 토마스 앞에 나타나셔서 그가 원하던 대로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 말씀은 토마스를 나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토마스가 원하던 대로 해주시면서, 그 자신 스스로 의심을 뛰어 넘게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마침내 토마스 사도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간결하면서도 가장 훌륭한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남다른 실망과 좌절 속에 잠긴 토마스를 남다른 방법으로, 즉 책망과 질책이라는 세찬 바람이 아니라 더 큰 사랑과 자비라는 햇볕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토마스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속에 감추어진 그 너머의 것을 보지 못한 채 자기 시야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토마스 사도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체험하고 기대하고 있습니까? 사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부활 신앙이 반드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며 확인함으로써 비로소 가지게 되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깨달아야 합니다. 신앙 안에서, 그리고 주님의 거룩한 전례 안에서, 더불어 말씀 안에서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만나고 부활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화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사랑받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제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처럼 세상에 대한 두려움 없이 주님을 선포할 수 있는 은총을 간청해 봅시다. 아울러 우리 역시 주님처럼 다른 이들에게 거센 바람이 아닌 따뜻한 햇볕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청해 봅시다. 모든 것을 하느님 중심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삶과 세상을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 가고자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삶의 자리에서 “저는 주님을 뵈었습니다!”라고 기쁨에 넘쳐 외치게 될 것입니다. 삶의 수많은 두려움 속에서도 평화를 주시며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꼭 기억합시다. 그리고 이제는 그분 사랑을 느끼며, 토마스 사도처럼 뒤늦게라도 예수님을 알아 뵙고 외쳐야 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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