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월이 되면 온 세상은 아름다운 물감으로 채색해 놓은 그림이 됩니다. 그래서 즐겁고 신나는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고, 너도 나도 앞 다투어 산과 들로 여행을 떠나나 봅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이 오월은 가족을 떠올리며 가족과 함께하는 가정의 달이라 더욱 아름답습니다. 공지영 작가가 딸에게 자신의 마음을 쏟아낸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처럼 대부분 어머니들은 세상 어느 한 구석에서 하염없이 하늘로 자식들을 위한 화살기도들을 지치지도 않고 계속 쏘아 올립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하느님이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어 인간에게 엄마를 보냈다.”라는 말을 한 것 같습니다. 매일 매일이 무섭게, 그리고 급격하게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이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뒤에는 늘 엄마라는 천사가 있어 그 울타리 속에서 잠시 기대어 쉬기도 하고 그 날개 밑에 잠시 숨기도 하며 위로와 안식을 얻는 것 같습니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 하나를 풀어봅니다. 남편과 이혼한 후 아들을 가까이에서 보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하는 어머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모르는 그 아들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고는 어머니를 참 많이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알코올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매일 술을 드시고 허구한 날 자식을 무릎 꿇리고 몇 시간씩 술주정을 하시는 아버지는 심한 경우 아이에게 손찌검까지 하셨기 때문에 아버지도 이 학생에겐 위안처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이는 더더욱 가슴 속에 어머니에 대한 미움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들이 걱정이 되어 담임인 제게 아들 몰래 찾아와 자신이 주면 받지 않는다며 제가 주는 것처럼 아들에게 전해 달라며 틈틈이 용돈을 맡기실 정도로 멀리서 아들바라기만 하셨습니다. 이 안타까운 현실을 그대로 두고만 보기에 너무 마음이 아파 하루는 이 학생에게 어머니의 마음과 현실을 전해줬습니다. 남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를 하시며 밥상을 차릴 때마다 아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시는 어머니가 자기를 버린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안 아이는 어머니 품에 안겨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랑 나란히 교무실을 나섰습니다. 그 뒷모습이 보기 좋았지만 너무 슬퍼 보여 한동안 제겐 아픔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사실 학생은 그 뒤에도 늘 불만투성이의 표정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한두 달이 지난 후부터 그 학생의 얼굴에 미소가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끔 소리내어 웃기까지 했으며 공부에 대해 질문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저는 야간자습 중인 이 학생을 불러 다시 상담을 했습니다. 이 학생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쌤! 저도 이제 꿈이 생겼어요. 저 성공해서 돈 많이 벌어야 돼요. 나중에 엄마랑 같이 살기로 약속했는데 그렇게 되려면 제가 성공해야 돼요.”라는 말을 하며 점점 양 뺨이 상기되는 그 아이를 지켜보며, ‘그럼 너희 아버지는 누구랑 사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저는 단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가까스로 꿈이 생긴 그 아이에게 얼마나 절망적인 말일지 알기에…. 이 글을 쓰면서 연락이 끊긴 그 아들 생각이 많이 납니다. 그래서 조만간 찾아보려고 합니다. 아마 참 잘 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어머니의 사랑이 언제나 그 아들 곁에 머물고 있을 테니까요.
며칠 전 야간자습 감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저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텔레비전 뉴스를 틀었습니다. 늦은 밤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며 무심히 텔레비전을 보던 저는 익숙한 멜로디에 끌려 화면에 눈을 고정시켰습니다. 암에 걸린 엄마가 암 치료를 거부한 후 딸아이의 탄생을 본 후 생을 마감한 이야기였습니다. 미국 뉴욕에 사는 엘리자베스 조이스라는 산모는 암 치료 후유증으로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의사들로부터 듣고 절망했지만 얼마 후 임신되었음을 알고 무척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임신 1개월 후 조이스는 다시 암이 재발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전신 MRI를 촬영하지 않고서는 암이 어떻게 전이 되었는지를 알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뱃속의 생명에게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조이스는 MRI를 촬영한다는 것은 아기의 생명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란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자신의 목숨과 아이의 생명 중 기꺼이, 즐겁게 이 어머니는 딸에게 생명을 주는 쪽을 선택한 것입니다. 결국 암이 심해져 제왕 절개로 예쁜 딸아이를 낳은 후 아름다운 그녀는 하느님 곁으로 떠났습니다. 코에, 양손에 호스를 꽂은 채 포대에 싸인 자그마한 아이를 안고 그윽하게 내려다보는 그 어머니의 맘은 어땠을까요? 이 장면에 나온 음악이 바로 “You raise me up,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입니다.
When I am down and, oh my soul, so weary / When troubles come and my heart burdened be / Then, I am still and wait here in the silence / Until you come and sit awhile with me /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내 영혼이 힘들고 지칠 때 / 괴로움이 밀려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할 때 / 당신이 내 옆에 와 앉으실 때까지 / 나는 여기에서 고요히 당신을 기다립니다. /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산에 우뚝 서 있을 수 있고 /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폭풍의 바다도 건널 수 있습니다. / 당신이 나를 떠받쳐 줄 때 나는 강인해집니다. / 당신은 나를 일으켜,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

어머니는 그런 존재인 것 같습니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 곁에 계시는 것만으로 힘이 되시는 분, 우리 하느님같이! 곁에 없는 것 같지만 언제나 고개 돌리면 제 가까이 머무시는 분. 그래서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또 모든 것 다 내놓으신 그 희생을 알기에 떠올리면 눈물나게 하는 분, 수없이 불렀고 또 부르고 싶은 이름 “엄마”, “어머니”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성모 어머님이 계셨기에 우리에게 오실 수 있었습니다. 그림자처럼 아들을 따르셨지만 언제나 아들에게 순종하셨던 우리 성모님도 그 위대한 ‘어머니’이셨습니다. “친정 엄마와 2박 3일”이란 연극에서 딸 미영이가 엄마에게 느끼는 미안함과 감사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 말을 제 엄마와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어머님들께 바칩니다. “다음 생애엔 엄마가 내 딸로 태어나주면 그때는 엄마가 나에게 한 것처럼 잘 할 수 있을까? 엄마! 다음 생애엔 엄마가 내 딸로 태어나줘.”
* 이유정 선생님은 계산주교좌성당 신자로,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무학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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