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 (요한 8,12-59)
초막절의 또 다른 특성은 빛의 예식으로, 이는 여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성전 뜰에 금으로 된 네 개의 등잔에 등불을 켜는 예식이다. 그 뜰에 서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했다. 이제 나는 초막절의 빛과 물의 예식을 대체했다. 나는 빛이었다. 나를 따르는 이는 누구나 생명의 빛 안에서 거닐 것이다. 바리사이들은 나 자신에 대한 증언은 무효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나는 내 증언은 참되고 진실하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리고 내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모르고 나를 심판할 자격이 없다. 또한 그들은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하며 처벌했지만, 나는 어느 누구도 판단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라도 나에겐 증인이신 나의 아버지가 있다. 바리사이들은 “당신의 아버지가 어디 있습니까?”하고 내게 물었다. 그들이 나를 알았다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니 그들은 나도, 아버지도 알지 못했다. 내가 일찍이 살아있는 물을 제시했듯이 그들에게 빛을 제시했다. 이어서 죄와 불신과 나를 거절했기 때문에 곧 멸망할 것이라고 그들에게 경고하면서 그들이 올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있다고 일러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내가 자살을 한다는 말이 아니냐고 술렁거렸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위로부터 나도록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생명을 주는 능력을 가진 내가 바로 “그(야훼)”라는 사실을 믿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나를 믿지 않고 생명 자체를 거부하는 아주 심각한 죄를 범하고 있었다. 그들이 내게 “당신은 누구요?”라고 물었다. 그들에게 나는 “당신들이 인자를 높이 올리게 될 때 그제야 당신들은 내가 그(야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또 내가 내 스스로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이런 일들을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라며 전적으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말했다.
나는 진리가 그들을 자유롭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의 구원 계획을 구체화하는 진리라는 의미였다. 그들은 자유로워져야 할 종의 처지에 놓여있지 않다고 대들면서 아브라함의 자유로운 후손들이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죄의 노예라고 다시 말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 왜 나를 죽이려하는가? 이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할 처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은 그들 아버지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하느님이 우리 아버지”라고 말했다. 그들의 말대로 정말 그렇다면 그 아들인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나는 “당신들은 악마의 자손”들이라고 말했다. “당신들은 진리에 등을 돌리고 거짓말을 품고 있습니다. 누가 나에게 죄가 있고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습니까? 당신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났다면 내가 말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할 것입니다.”
그들은 나에게 소리쳤다. “이 사마리아인, 미쳤군!”나는 말했다. “나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공경합니다. 나 자신의 영광을 위하지는 않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아버지께서는 나를 영광스럽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나는 진실히 말합니다. 누구든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들이 응수했다. “당신은 미쳤음이 분명하오! 당신이 우리 예언자들과 조상 아브라함보다 더 훌륭하다는 말이요? 그들도 다 죽었는데 당신은 ‘누가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는 말까지 했소. 당신은 도대체 누구라고 자처하오?” 나는 “당신들의 조상 아브라함은 내 날을 보겠기에 신명이 났습니다. 과연 그는 보고 기뻐하였습니다.”하고 답했다. 그들은 “당신이 아브라함을 보았다니, 아직 쉰 살도 되지 않았는데?”하고 반박했다. 나는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나는 있습니다.”라는 결정적인 말로 못 박았다. 그리고 강력한 어조로 영원한 천상 세계에 속해 있다고 주장했다. 하느님의 계획에 살고 있다는 나의 주장은 그들에게 신성모독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들은 돌을 들어 나를 치려고 했고, 나는 성전을 빠져 나왔다. 이로써 나와 그들과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소경의 빛 (요한 9,1-41)
얼마 후 우리는 그곳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을 만났다. 그는 하나의 표징이 될 것이다. 나는 세상의 빛으로 나를 드러낼 것이다. 나는 진흙을 물로 개어 그의 눈에 바르면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령했다. 그는 그렇게 해서 눈을 떠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를 아는 이들이 어떻게 해서 그가 보게 되었는지를 궁금하게 여겼다. 그는 예수라는 이가 그를 보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그 일은 안식일에 일어났다. 바리사이들은 흙을 개는 것을 노동으로 보아 안식일 규정을 어긴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즉시 어떤 이들은 그런 나를 하느님으로부터 온 이가 아니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죄인이 그런 기적을 행할 수는 없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 치유 받은 소경은 나를 예언자로 여겼다.
바리사이들은 누구든지 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면 회당에서 추방하도록 조처했다. 그들은 치유 받은 이를 추궁했다. 그는 바리사이들도 나에게 관심이 많아 제자가 되려는 것이 아닌가하며 빈정거리는 투로 대답했다. 그러자 그들은 불같이 화를 내며 “너는 그 자의 제자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자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도 당신들은 그분이 어디서 오셨는지 모른다니 그거 참 놀라운 일입니다. 이런 일은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이 하느님으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분명합니다.”라고 대꾸했다. 바리사이들은 그를 회당에서 쫓아내었다.
그가 추방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를 찾아 만나 인자를 믿느냐고 물었다. 그는 정색을 하며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인자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바로 그”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주님, 믿습니다.”고 말하며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나는 보지 못하는 이를 보게 하고 본다는 이를 보지 못하게 하려 왔다고 말했다. 즉 눈 먼 ‘죄인’이 나를 믿게 되고, 눈 밝은 ‘의인’은 나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일부 바리사이들은 내 말의 의미에 눈치를 채고 “우리가 소경이란 말인가?”하고 술렁거렸다. 나는 그들이 정말 소경이었다면 죄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볼 수 있다고 말하면서 나를 믿지 않았으니 불신의 죄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 사건이 앞으로 어떤 일을 불러일으킬 것인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나를 따르기로 작심한 유다인들이 회당과 나를 두고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결단의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진 목자 (요한 10,1-21)
나는 바리사이들에게 ‘양 우리’라는 개념을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우선 나는 양 우리 안에 모여 있는 양떼에게로 접근하는 적절한 방법을 예로 들었다. 그것은 문지기가 열어 놓은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목자이다. 그러나 다른 곳으로 들어가는 이는 도둑이다. 여기에 목자가 있다.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 목자가 부르면 양들은 그를 그대로 따라간다. 양들은 낯선 이를 따라가지 않는다. 양들은 낯선 이의 목소리를 모른다.
바리사이들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나는 계속 말했다. “나는 양 우리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인 문입니다.” 나는 구원으로 가는 길이다. 나는 영원한 생명을 충만히 주기 위해서 왔다. 나는 어진 목자이다. 어진 목자란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려고 준비되어 있는 목자의 모델이다. 나는 위험이 닥치면 양을 버리고 도망하는 삯꾼이 아니다. 나는 내 양들을 속속들이 잘 알고 양들도 나를 잘 알기 때문에 나는 어진 목자이다. 나는 아버지와 서로 아는 것과 같이 내 양들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양을 치는 것은 다른 양들 - 이방인들 - 을 영원한 생명의 양 우리로 데려오는 것에까지 이른다. 나아가 나는 내 목숨까지도 내어놓는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나에게 맡기신 일을 수행하기 위해 목숨까지도 바치는 것을 보고 나를 사랑하신다. 나는 생명의 근원이요 수여자인 아버지와 온전히 하나가 되기 때문에 내 생명을 내어놓을 수도 있고 다시 얻을 권리도 있다.
유다인들은 내가 한 말을 듣고 어쩔 줄 몰랐다. 어떤 이는 “그는 미쳤다!”고 말했다. 또 어떤 이는 “미친 이의 말이 아니오. 미친 이는 소경을 치유할 수 없소.”라고 신중하게 말하기도 했다.
봉헌절 축제 (요한 10,22-40)
성전 봉헌절 축제인 하누카(Hanukka)를 지내기 위해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다. 유다인들은 마음이 조급해져서 “우리를 조바심이 나게 만들지 마십시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하시오.”하고 나를 몰아세우며 추궁했다. 나의 대답은 이미 거듭 언급했던 그대로였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과 권능으로 행한 일들이 내가 누구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계속해서 나는 “그러나 당신들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내 양들은 내 말을 알아듣고 나를 따라옵니다. 나는 어진 목자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고 보살펴 줍니다. 누구도 한 마리의 내 양을 잘못되게 할 수 없고 나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나에게 양을 빼앗아 가는 것은 아버지의 것을 빼앗아 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유다인들은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였다. 나는 “내가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돌을 던지겠다고?”라고 말했다. 그들은 “네가 사람인 주제에 하느님이라고 주장해서 신성을 모독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나는 하느님이 거룩하게 만드시고 보내신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호칭에 대한 성서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분명 아버지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고 진정으로 주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일을 전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그들이 나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나는 요한이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던 요르단으로 갔다. 이곳은 요한이 나에 대해서 증언했던 것이 사실로 드러난 것을 상기시켜주었던 곳이다. 이곳 사람들은 나를 믿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