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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음으로 세상보기
124위 시복을 앞두고


전재천(암브로시오)|제4대리구장, 주교대리 신부

 

 3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세월호의 침몰과 함께 우리의 마음도 함께 침몰하고 있다. 고귀한 생명들이, 특히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된 어처구니없는 참변도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프지만 우리 사회가 결국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구나, 하는 허탈감에 가슴이 무너진다. 언제 어디서든 우리 자신도,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허망하게 희생될지 모르기에 모든 사람들이 잘 살고 안전한 선진국 대열에 곧 합류하게 될 거라는 기대감으로 품어왔던 희망도 함께 무너진다.

일본사람들은 1등 국민이고 우리는 2등, 3등 국민이냐고 푸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사람들은 안전한 배를 타고 다니는데 우리는 왜 낡고 위험한 배를 타야 하느냐고…. 국내에서조차 우리 국민은 그런 대접을 받고 있으니 불만이 나올 만도 하다. 세월호 참사가 엄청난 충격이었던 만큼 그 여진도 크다. 언론에서 귀가 따갑게 지적하고 있는 표현처럼 그야말로 ‘총체적인 부실’, ‘탐욕이 부른 참사’이고 그 암적인 뿌리가 우리 사회 곳곳에 넓고 깊게 뻗어 있어서 파면 팔수록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다. 온갖 비리와 부패, 그리고 탐욕으로 뒤범벅이 된 총체적 부실 덩어리들이 드러나고 있지만 과연 그것이 고쳐질 수 있을지, 이 기회에 바로 고쳐질 수만 있다면 값진 교훈을 얻었다고 할 수도 있으련만….

이 자리에서 누구를 탓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매사 남을 탓하기보다는 먼저 자신의 부족함을 찾으라는 게 주님의 가르침이니 말이다. 다만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리고 탐욕이 클수록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다는 걸 이번 참사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뼈아픈 교훈으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욕심이 이번 참사의 근본 원인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어떻게든 돈만 벌고 보자는 탐욕스런 일부 악덕기업가들과 인허가 권한이란 칼을 휘두르며 기생하는 부패한 관리들의 욕심이 적었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적은 돈으로 큰 수익을 내는 게 경제적인 논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국민의 안전과 고귀한 생명을 무시해가며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면 이런 참사는 계속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우리는 일본에서 사들인 낡은 배를 타야하고 안전하지 못한 지하철을 타고 다녀야 할 것이다.

세상에 몸담고 사는 사람이 어찌 욕심이 없을 수야 있겠냐만 욕심이란 그때그때 애써 제어하지 않으면 칡넝쿨처럼 왕성하게 뻗어나가는 괴물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고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게 인간의 욕심이라 하지 않던가! 문제는 과도한 욕심이 남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게 된다는 것과 우리 신앙인들 역시 이러한 욕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겸손하고 그래서 더 가난한 교황님이 이 땅에 오신다.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시러 오시지만 우리에게 더 기쁜 것은 오랫동안 기도해왔던 우리 124위 순교자들의 시복식을 거행하러 오신다는 것이다.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신 장한 순교자들의 영광스런 시복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큰 기쁨이 되겠지만 단순히 행사로만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세상의 욕심이 무서운 것이기에 목숨까지 바치신 순교자들의 장한 정신을 되새기며 헛된 세상의 욕심, 그 무서운 욕심을 비우면서 참된 신앙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