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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를 살다
감사기도(IV)


최창덕(프란치스코 하비에르)|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신도신학교육원 원장

 

미사의 제사성

이 기회에 우리는 미사의 제사성과 관련하여 제사의 본뜻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적어도 우리가 미사를 가리켜 제사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먼저 제사의 참된 의미부터 밝혀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제사를 의미하는 말로 라틴어 사크리피치움(Sacrificium, 희생)이 있는데, 이 말에는 세상의 어떤 물건을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그것을 아주 없애 버린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가장 원초적(原初的) 제사로 보이는 번제(燔祭)에서는 제물로 바친 짐승이나 음식을 완전히 태워 없애 버리고 하나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제사 개념은 네 단계에 걸쳐 발전했습니다. 첫째, 족장시대에는 제사 때 신(神)에게 직접 음식을 제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판관기의 “신들과 사람들을 흥겹게 해 주는 포도주”(9,13)라는 표현은 신에게도 술을 드릴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알려줍니다. 시편에서도 비슷한 개념이 나타납니다. “나는 네 집에 있는 수소도, 네 우리에 있는 숫염소도 받지 않는다. … 내가 황소의 고기를 먹고 숫염소의 피를 마시기라도 한단 말이냐?”(50,9.13)

두 번째 단계로 정신화 된 제사 개념입니다. 곧 신은 제물을 직접 먹고 마시지 않지만 번제단의 냄새를 맡고 흐뭇해 하며 제사를 기쁘게 받아 들인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향기로운 제사”란 표현이 그것입니다. 창세기의 “주님께서 그 향내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8,21)라는 표현이나 레위기의 “너희가 바치는 향기도 맡지 않겠다.”(26,31)와 같은 표현들은 이 같은 개념을 반영합니다.

셋째 단계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에는 물질적인 제사를 바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이른바 ‘찬미’의 제사 개념이 나타납니다. 특히 회당에서 바치는 아침 예배와 저녁 예배는 찬미의 제사였습니다.

이런 제사 개념을 시편 141장 2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의 기도 당신 면전의 분향으로 여기시고 저의 손 들어 올리니 저녁 제물로 여겨 주소서.”, “주님,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제 입이 당신의 찬양을 널리 전하오리다.”(51,17)에서도 그 개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신약의 히브리서는 바로 이런 사상을 받아들여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하여 언제나 하느님께 찬양 제물을 바칩시다. 그것은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입니다.”(13,15-16)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완전히 정신화 된 제사 개념이 나타납니다. 곧 “감사하는 마음”, “찢어지고 터진 마음”이 바로 제물로 간주됩니다. 구성경 시편 50장 23절에서 이런 제사 개념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제물로 바치는 자, 나를 높이 받드는 자이니, 올바르게 사는 자에게 내가 하느님의 구원을 보여 주리라.”, 시편 51장 19절에서 20절의 “하느님께 맞갖은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하느님, 당신께서는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호의로 시온에 선을 베푸시어 예루살렘의 성을 쌓아 주소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어 성부께 바치신 제물도 그 찢어지고 터진 성심이었습니다. 집회서는 고도로 정신화 된 제사 개념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제물을 많이 바치는 것이고, 계명에 충실한 것이 구원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은혜를 갚는 것이 고운 곡식 제물을 바치는 것이고, 자선을 베푸는 것이 찬미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다. 악을 멀리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고, 불의를 멀리하는 것은 속죄하는 것이다. 주님 앞에 빈손으로 나타나지 마라.”(35,1-6)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제사는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기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제사는 단순히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만이 아니고 출생과 공생활(公生活), 수난, 죽음, 부활을 포함하는 그의 전 생애(全生涯)를 하느님께 바치신 것을 의미합니다.

미사는 이러한 의미에서 제사이며 또 제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사를 바친다고 할 때 우리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분과 함께 우리 자신의 전 생활(全生活)을 하느님께 바치고 그분을 위해 생활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도 남기지 않으시고 온전히 바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 자신의 삶을 온전히 희생하며 바칠 때 우리의 제사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제물은 단순한 헌금이나 미사예물만이 아니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포기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제물이 됩니다. 히브리서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일을 ‘찬미의 제사’라고 불렀으며 선한 일을 하고 서로 사귀고 돕는 일이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물’이라고 가르치듯이 우리가 미사 때 바치는 빵과 포도주는 그것 자체만으로는 제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표시하는 빵과 포도주와 결합할 때 비로소 그 빵과 포도주는 합당한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서 자신을 “거룩하고 산 제물”로 하느님께 봉헌해야 합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자신을 남김없이 하느님 뜻에 맡기고, 하느님과 이웃 사랑 안에서 자기 삶의 십자가를 지고 가며, 그리스도의 자기 헌신을 배워 사는 일입니다.(참조. 에페 4,22-24) 우리나라에서는 조상숭배 사상이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제사라고 하면 자꾸만 좁은 의미로 이해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미사의 제사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미사를 제사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조상숭배를 위한 제사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미사를 지낼 때 예수께서 세우신 미사의 본 의미를 생각해야 하며 결코 죽은 이를 위한 기도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오해를 씻어야 하겠습니다.

 

전구(轉求)

전구란 개인이나 공동체가 다른 사람이나 단체를 위하여 바치는 기도를 말합니다. 미사 중에 믿는 이들은 이미 보편지향기도에서 전구를 바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전구를 바치는 이유는 이 간청들은 전체 공동체와 성찬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보다 깊은 내적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 기도의 일반 규정인 “그리스도인은 깊이 신뢰하는 간청을 하느님께 향하지도 않으면서, 더 나아가서 그분의 도우심에 의존하지도 않으면서 긴 감사의 기도를 하느님께 올릴 수는 없다. 따라오는 간청이 없는 감사기도는 단지 하나의 의무를 해치운 것처럼 교만한 마음을 생기게 할 수 있다.”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전구자로서 성부 곁에 현존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제는 항상 성부 곁에서 우리를 위해 중재하시는 그리스도의 직무를 대리하는 대리자입니다. 감사기도 안에 있는 전구들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전구에 교회가 참여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거행하는 제사는 그리스도의 제사이듯이 교회의 전구도 그리스도의 전구인 것입니다. 미사는 인류 구원의 제사이자 일치와 사랑의 잔치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신뢰의 마음으로 구원에 초대받은 교회 자신을 비롯하여 모든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 기도하며 성인 성녀들의 도움을 간청합니다. “주님,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교회를 생각하시어, 교황 ( )와 저희 주교 ( )와(과)….” 모든 산 이와 죽은 이를 함께 기억합니다.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교우들과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도 모두 생각하시어….”(제2양식) “세상을 떠난 교우들과 주님의 뜻대로 살다가 떠난 이들을….”(제3양식) 유의할 것은 이때 주례 사제가 서품, 세례, 견진 등 예식 미사와 장례미사와 같이 죽은 이를 위해 마련된 별도의 기도문을 외지 않을 때는 개별적으로 받은 미사 지향자의 단체나 개인 이름을 거명하지 말아야 합니다. 굳이 그들을 거명하려면 보편 지향 기도 때 말할 수 있습니다.

 

마침 영광송

감사기도 마지막에 바치는 영광송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를 마침 영광송이라 부릅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유다인들의 기도 관습을 본 받아 주요기도 끝에는 흔히 영광송을 바치곤 했습니다. 미사의 감사기도는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기념하고 재현하면서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가장 중요하고 대표적인 기도입니다. 그래서 감사송으로 시작하여 영광송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으로 하나되어 성부께 영광을 드리는 형식의 이 영광송은 가장 오래된 영광송 형식의 하나입니다. 공동체는 이러한 영광송뿐 아니라 감사기도 전체에 동의하며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마음으로 “아멘.”하고 성대하게 환호합니다. 공동체가 외치는 ‘아멘.’은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이 ‘아멘.’ 또한 가장 중요한 환호이자 노래입니다.